Change in the wind

by. spoileralert1







그건 가을에 시작되었다. 책장의 페이지를 넘기듯 바람을 따라 시간은 점점 더 빨리 흘러갔다. 푸르렀던 잎파리들은 어느새 뒤바뀌는 감정의 변화처럼 여러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주변은 잔잔해졌고, 사람들은 고요해졌다. 수많은 인터뷰와 화보촬영, 스튜디오 작업 끝에, 아담은 그와 토미만을 위한 일주일간의 휴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걸 재쳐두고 뉴욕으로 떠났다. 그 곳엔 조용한 감정들이 있었다. 그건 서로의 온기에 기대며, 소파 위에 앉아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일 년에 몇 안되는 시간이었다. 과거를 되돌아보며, 좋았던 일들과 서툴렀던 일들을 회상하고 황홀했던 꿈들과 악몽같았던 일들을 되새겨보는 시간. 그 곳엔 핫초콜렛과 희미하게 흔들리는 촛불이 있어야 했고, 사과 과수원의 향기와 같은 상큼함과 아직은 이른 할로윈 캔디와 같은 달콤함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엔 균형을 잃은 긴장감만이 감돌고 있을 뿐이었다.  

그건 정말로 아무렇지 않은 일들로 시작되었다. 아담은 파티에 참석해야 했고, 그는 토미와 함께 그 곳에 가길 원했었다. 토미는 이미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었고, 그 약속은 그에게 있어선 중요한 것임을 아담에게 몇 번이고 설명해야만 했다. 하지만 아담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끝까지 그를 밀어붙이기만 할 뿐이었고, 결국엔 엉망이 되어버린 감정 그대로 혼자 파티장을 향했다. 토미는 그날 밤, 단 한 숨도 잠들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날이 첫 시작점이었다.

그 두번째는 밖에서 저녁을 먹고 싶다 토미가 말을 꺼냈을 때 시작되었다. 아담은 기자 회견이 있었다. 이번주에만도 그는 이미 5번의 기자 회견을 가져야 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 다투기 시작했다. 아담이 소리를 질렀을 때, 토미 또한 그의 말을 받아쳤고, 아담은 그대로 자켓을 집어들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쾅소리와 함께 거세게 닫히는 문에, 홀에 걸려 있던 액자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요란스런 소음을 만들어냈다. 토미는 움찔 몸을 떨었고, 거실 바닥으로 산산히 흩어진 유리 파편들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다가가, 그 곳에 몸을 웅크린 채 한조각 한조각 깨어진 유리 조각들을 주워 담아야만 했다.

그 후에도 작은 다툼들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발단은 언제나 대수롭지 않은 일들로 시작되었다. 토미는 미아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 사이의 일을 모두 털어놓았고, 그녀는 그들의 다툼에 대해 멍청한 짓이라고 덧붙였다. 그건 토미의 기분을 나아지게 할만한 답은 아니었지만, 어쨋든 그에게 제대로 된 생각을 할수 있는 디딤돌을 얹어 주는 역할을 하기엔 충분한 것이었다. 지금 그는 마치 연기 속에 피어오르는 무언가를 잡으려 애쓰고 있는 것 같아 보였고, 그 기분은 두려운 것이었다. 그렇기에 고개를 숙이고 언제나 한 발 물러서서 아담이 하고자 하는 일들과 말들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피하려 하면 할수록 두려움과 함께 외로움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아담은 길고 길었던 스튜디오에서의 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그에게 뉴욕으로 떠나자 말했고, 토미는 그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바로 뉴욕으로 떠날수는 없어." 팬 위의 야채와 파스타를 휘저으며 그는 말했다.

"뭐 어때서? 이맘때 쯤엔 원래 다들 그렇게 한다고." 입고 있던 얇은 코트를 벗으며 아담이 말했다.

"우린 둘 다 바쁘잖아." 토미는 대답하며 스토브의 불을 껐다. "넌 이제 곧 앨범을 내야 하고, 난 너랑 녹음 작업에 들어가야 하잖아. 발매일은 정했어? 네가 앨범 발매할 거 준비하는 동안, 난 몬테랑 이번 공연-"

"그만!" 아담은 그의 말을 잘랐고, 손을 들어 미간 사이를 문질렀다.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해. 너도 알고 있고,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야. 난 더 이상 여기서 이렇게는 못 견디겠어. 우린 떠날거야." 그는 단호하게 말을 끝냈다.

"알았어." 토미는 조용히 말했고, 그릇에 파스타를 담았다. 잠시동안 아담은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곧 소매를 걷어 올리고 싱크대 쪽으로 다가가 손을 씻었다.

타월에 손을 닦은 후, 와인 한 병과 와인잔 두 개를 꺼내 들었다. 토미는 테이블을 차렸고, 초에 불을 붙이고 자리에 앉아 아담을 기다렸다. 가져온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아담은 와인의 마개를 열어 잔에 부었다. 토미는 그를 올려다보지도 않은 채, 잔을 잡았다. 아담 또한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우리의 여행을 위해." 아담이 말했다. 토미는 잔을 들어올렸고, 서로의 잔이 맞부딪히는 맑은 유리 소리가 고요한 방안에 크게 울렸다. 그리고 그는 그대로 잔에 담긴 와인의 반을 목 안으로 흘려보냈다.




***


그렇게 지금, 그들은 이 곳에 와 있었다. 아담은 펜트하우스를 빌렸고, 토미는 그와 함께 이 곳에 왔다. 주변을 걸어다니며 그들은 하루 하루를 보냈고, 관광을 하고 쇼핑을 했다. 하지만 그건 말에 불과했을 뿐, 모든 건 보기 좋게 꾸며놓은 거짓말들이었다. 다툼은 점점 더 빈번해지기만 했다.

아담은 부엌에서 잔걸음으로 돌아다니는 토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점점 더 외소해져갔다. 물론 지금 그 이상이 가능하다면의 얘기였지만. 붙들면 바스라져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그는 가냘프고 약해보였다. 하지만 아담은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토미는 작고 말랐어도, 강하고 아름다웠었다. 일이 이렇게 되어버리기 전에는. 후회라는 감정이 날카로운 가시처럼 심장을 찔러댔다. 최근 몇 일 동안 그 감정은 계속 되었다. 그건 더 이상 토미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지금도 그를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가끔씩은 둘 사이의 관계가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진 그 점에 대해 그는 후회하곤 했다. 처음 데이트를 했던 날, 토미를 데리러 그의 집을 향했을 때의 그 감정을 지금도 기억할 수 있었다. 환희와 즐거움으로 현기증까지 날 것만 같았던 그 살아있던 감정들. 그 날, 토미가 얼마나 예뻤었는지,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지금 얼마나 빨리 사라져가고 있는지. 시간이 흘러, 달이 바뀌어 갈수록, 아담은 스스로가 점점 더 멀어져버린 듯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결국엔 토미도 그 이유를 묻는 데에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그렇게 이 관계에 갖혀있었다. 두 사람 모두 더이상 서로를 원하지 않음에도, 둘 중 누구도 그저 이대로 헤어지자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토미는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사치스럽기만한 검은색 천의 의자 위로 몸을 앉혔다. 아담은 그 곳에 앉은 채 TV의 전원을 켜는 토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 숨과 함께, 침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욕실로 들어갔을 때, 토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해?"

"양치." 아담은 대답했다.

몇 분 후, 아담은 욕실에서 걸어나왔고, 토미는 그를 올려다 보았다. 타이트하게 달라붙는 바지와, 비싸보이는 자켓으로 아담은 완전히 차려입고 있었다. 멋드러지게 뒤로 넘긴 머리와, 눈가의 검은 아이라이너. 토미는 꾹 한 번 침을 삼켰고,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어디 나가게?" 아무렇지 않은 듯 그는 가볍게 물었다.

"밖." 아담의 답은 그게 전부였다.

"밖?" 토미는 그의 말에 되물었다. 목소리는 단조로웠지만, 마치 뺨이라도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Yeah, 클럽에." 아담은 말했고, 토미의 반응을 살피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잔뜩 흐려진 갈색의 눈동자가 아담의 시야에 들어왔지만, 토미는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알았어." 그의 목소리는 죽어있었다.  

"그래." 아담은 그 한마디를 끝으로 그대로 나가버렸다.

토미는 더이상 TV에 집중할 수 없었다. 방 한가운데에 위치한 작은 나무 탁자 위에 커피를 내려놓고, 복도 벽장 위에서 담요를 가져왔다. 쇼파 위에 잔뜩 웅크리고 누워, 손 안의 담요를 꼭 움켜쥐었다. 이렇게 혼자 남겨져 있을 때면, 그는 언제나 울음을 터뜨렸다. 지난 몇 주간, 울고 또 울었다.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면서도, 감정을 추스리려 무던히도 애써야만 했다. 이제는 우는 것조차 너무 힘들어서 할 수 없었다. 그저 두 눈을 감고, 게워내고 싶을 정도로 지쳐버린 이 감정이 사그라들기만을 바랬다.  




***


"헤어져." 전화기 반대편으로 미아가 말했다.

"난.. 난 못해. 처음엔 다 좋았었어.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어. 내가 조금만 참으면.. 그냥, 그냥 그는 조금 바쁘고 힘들 뿐이야, 우리 둘다 그러니까."

"토미 조, 난 널 사랑해. 그러니까 제발 바보같은 짓 하지마. 그가 널 버리기 전에 네가 먼저 버려. 이 이상 네가 상처받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 그리고 무엇보다 제발 내 통화 요금 좀 생각해주지 않을래? 그와 얘기해." 그녀는 힘주어 말했다.

"알았어." 토미는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고, 인사를 건낸 후,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생각에 잠긴 채, 아담이 집에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그 시점을 그는 회상했다. 이미 무대 위에서 몇 번이고 입술을 맞대어 왔음에도, 아담이 그의 앞에서 얼마나 조심스럽고 다정했었는지를 기억했다. 꽃다발과 함께 그에게 데이트를 신청해 왔을 때, 그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었는지를 기억했다. 플릿 마켓을 함께 돌아다니며, 여러가지 희귀한 물품들을 구경하기도 하면서 그 마지막에 나누었던 섹스까지도. 언론이 그 사실을 눈치채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터넷은 그 일로 들썩였지만, 사실상 달라진 것은 없었다. 모든 게 불안할 정도로 너무나 잘 흘러갔다. 적어도 그들이 서로 바빠지기 전까지는. 서로를 보는 시간이 줄어들면 들수록, 오해와 다툼은 점점 더 심해져갔다. 하지만 토미는 이대로 끝낼 수 없었다. 아담과의 이 관계를 위해 오랜 시간을 참고 기다려야만 했으니까. 그렇게 힘들게 얻게 된 것을 이렇게 쉽게 버려버릴 수는 없었다. 그 관계에 금이 가고 상처에 핏방울이 맺힌다해도,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새벽 1시가 조금 넘어서야 아담은 문을 열고 들어왔고, 그는 어딘가 어두우면서도 신중해보였다. 아직까지 소파에 앉아있는 토미의 모습에 조금 놀란 눈치였다.

"어서와." 토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직 안자고 있었어?" 그의 목소리엔 놀라움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너랑 이야기하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었어." 토미는 말한 직후,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래." 그리고 그들은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조금 후, 아담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하지 않았어, 아무것도."

"알아." 그게 토미가 대답할 수 있는 전부였다.

"내 말은, 할 수 없었다는 거야. 많은 사람들이 다가왔지만 하지 않았어."

"왜?" 토미는 물었다. 곧 다가올 상처에 대한 두려움들이 스멀거리며 솟아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원치 않았으니까." 아담은 말했고, 토미는 고개를 숙여 발끝을 내려다 보았다. "아마도.. 너 때문이겠지."

"나?" 토미는 거의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내가 무슨 상관인데?"

아담은 이미 말을 섞는 것에 지쳐버린듯 방을 가로질러 걸어갔지만, 홀에서 멈춰서서 토미를 향해 다시 돌아섰다.

"난.. 지금까지 이렇게 신중히 생각해 본 적 없었어." 그는 말을 이었다. "이전엔 언제나 집중할만한 어떤게 정해져 있었으니까. 그게 섹스였건 기대어 쉴 수 있는 어깨였건 간에. 지금까지 한 번도 이렇게.. 이렇게 안정된 관계는 없었어."

토미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알수 없었지만, 어쨌든 아담은 아직 말을 끝마치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아마도 그게 난 두려웠던 것 같아. 우리 관계가 얼마나 평범하고 편안한지, 그게 내겐 익숙하지 않았던거야. 그리고 그게 지금까지 내가 병신처럼 굴었던 이유였고. 알아, 네가 얼마나 힘들어 했는지. 너에게 털어 놓았어야 했지만, 네가 날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말할 수 없었어."

토미는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정말 내가 널 떠날거라 생각ㅎ-"

"끝까지 들어봐." 아담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클럽에서는 아무일도 없었어. 그리고 무엇보다 네게 약속하고 싶었어. 앞으론 이런 일 없을거라고. 그 어떤 일도." 그는 토미를 바라보았고, 시선은 확고했다. "약속할게. 이 약속은 네가 처음이고 마지막일 테니까."

토미는 아담의 말을 모두 다 이해하기까지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고, 잠시 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담은 안도한 것처럼 보였고, 긴 한 숨이 그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단번에 긴장이 사라진 것 같아 보였다. 그는 토미에게로 다가왔고, 손을 뻗어 뺨을 감쌌다. 그리고 몸을 숙여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 입술을 떼어냈을 때, 아담은 그를 향해 조용히 미소짓고 있었다.

"사랑해."

"나도, 나도 사랑해." 토미는 대답했고, 아담은 방으로 들어갔다.

모든 것들이 완벽하지는 못할 지라도, 점점 더 나아질 것이라는 걸 토미는 알 수 있었다. 희미한 밤 하늘 아래로 비치는 뉴욕의 가을처럼 앞으로는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창 밖으로 희망을 안은 달빛이 커텐 사이로 파고들었다.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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