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eces of me

by. radiogaga33







"이름이 뭐야."

토미의 목소리는 잔뜩 가라앉아 찢겨져버린 천조각마냥 너덜너덜해진 채로, 몇 시간이고 비명을 내지른 것처럼 들렸다. 아니, 어쩌면 긴 시간동안 울었던 걸지도. 빨갛게 충혈된 갈색의 두 눈동자가 그에 대한 답을 내려주고 있었지만, 그건 그에 대해 신경쓰는 사람이 있었을 때의 일이었다. 아담은 그의 눈을 피해, 뒤를 돌았고, 검은 메니큐어가 칠해진 손끝이 가죽바지의 은색 벨트 버클을 더듬고 있었다.

"뭐?" 반만 돌아서서는 아담이 말했다. 그의 그 한마디엔 심란함과 괴로움이 묻어 있었다.

시계 바늘은 토요일과 일요일 그 사이 어딘가의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창밖으론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평범함과 특별함의 그 사이, LA엔 거의 비가 내리지 않았었다.

"그녀석 이름이 뭐야. 알고 싶어."

전보다 조금 커진 소리로, 아담의 주의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크게, 벨트 위에서 손을 뗀 그의 몸이 자신을 향해 전부 돌아서기에 충분할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그제서야 그는 토미가 외투까지 전부 입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토미는 그의 이마 위로 깊어지는 주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은 한 밤중이었고, 평소라면 토미는 침대에 있어야 했다. 오늘의 인터뷰로부터 아담이 돌아올때를 기다리며.

"무슨 소리 하는거야."

아담의 이마 위로 주름이 더욱 깊어지는 것과 그의 푸른 눈동자가 그 넓이는 더해가는 것을 토미는 바라보았다. 마치 결백하다는 듯이,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처럼 물어보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토미는 그가 상처받길 바랬고, 동시에 그를 가까이 붙잡아두길 원했다.

"네가 방금 만나고 온 녀석의 이름. 알고 싶어."

그의 푸른 눈이 조금 더 커졌다.

"만나고 왔다니? 말했잖아. 공연이 늦게 끝나서-"

그 순간 데자뷰가 토미의 머리속을 씻겨내리고, 지금까지 그와 같은 변명으로 모든 걸 덮으려 해온 그의 모습 하나 하나가 머리 속에 떠올랐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같은 변명을 해왔던 걸까. 한번? 열번? 언제나?

"넌 모르지? 매일마다 전화가 걸려와. 언제나 모르는 목소리 뿐이야. 이 곳으로, 여기로 매일마다 전화가 걸려와. 그리고 난 매일마다 전화를 끊어. 사실이 아니라고 그럴리 없다고 수없이 마음 속으로 되뇌었어. 아담이 내게 이럴리 없다고, 그가 내게 이럴리 없다고. 하지만 내가 틀렸던거야. 넌 날 속이고 있었어.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어. 넌 날 스스로까지 속여버린 거짓말쟁이로 만들었어."

"토미-"

"나한테 거짓말 하지마."

그들은 침대를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 서 있었다. 아담은 침실 문 가까이에 위치한 옷장 바로 옆에, 토미는 그곳으로부터 먼 끝에. 마치 모래 위로 그어진 전선 사이에 선 적군들처럼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무기를 들어올린 것은 토미였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고, 마치 지옥불과도 같이 밝게 빛을 발하는 커다란 스크린 위로 그 곳에 있어서는 안될, 있을리 없는 사진이 비춰지고 있었다. 절대 그럴리없는.

그 순간, 아담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거짓들이 더 이상 쓸모없어 진 것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그는 유일하게 주어진 한가지 길을 택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전부 다 설명할테니까- oh, god, I'm sorry, baby."

아담은 침대의 반대편으로 돌아가려 발걸음을 떼어냈다.

"가까이 오지마! 이름을 말해. 이름을 알고 싶다고!"

아담은 침대의 반 정도 다가선 채로 멈춰섰다.

"제이슨," 그는 말했고, 지금 그의 목소리 또한 낮아진채로 잔뜩 헤어져 있었다.

토미는 그대로 무너졌다. 그 세음절의 단어가 그의 입에서 소리가 되어 나온 이상, 더이상의 다른 말은 필요없었다. 가슴을 꽉 움켜쥔채로 침대 위로 쓰러지듯 주저 앉았다. 떨리는 무릎으로는 더이상 몸을 지탱할 수 없었다. 꽉 막힌 심장의 비명이 눈물이 되어 터져나왔다. 허리를 숙여 울음을 토해냈다. 아무리 움켜쥐어도 아픔은 가시지 않았다. 오열에 몸이 떨리고, 상처받은 목소리가 입술 사이로 세어나왔다. 지난 몇시간 내내 울고 또 울었지만, 이번과는 전혀 달랐다. 심장의 핵을 꿰뚫는 아픔. 그 세음절이 감당할 수 없는, 견딜 수 없는 이미지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아담의 입에서 나온 시인의 그 한마디가 낯선이로부터 받은 그 이미지들과 함께 어느덧 귓가에 못박혀 버린 낯선 목소리들로 가득 채워진 전화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 수많은 전화들..

토미는 옆으로 아담이 무게를 실어오는 것을 느꼈다. 커다란 손이 등을 쓸어주는 걸 느꼈지만, 그 온기에서 바로 벗어나며 침대에서 일어섰다.

"나머지도 전부 말해. 이름이 뭐였어?"

"토미, 제발."

"그 많았던 전화들. 그리고 난 거짓말일거라고, 다 거짓말일거라고 수백번이고 되뇌었어. 목소리는 전부 달랐어, 아담. 한번도 같은 사람인 적이 없었어. 몇 명이나 있었던 거야, 아담? 두명? 열명? 오십명?! 몇 명이었어?! 몇 명의 제이슨과 카일과 바비와 마이크와 크리스가 있었냐고!! 몇 명이나!!"

토미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들은 이제 분노로 떨리고 있었고, 닦아낼 생각조차 그는 하지 않았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토미."

그의 목소리는 미안함을 담고 있었다. 가라앉은 목소리와, 아래를 향한 시선과, 그의 무릎 위로 꽉 쥐여진 손가락. 언제나처럼 용서해버리려하는 자신의 마음에 토미는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아담을 위로하고, 그를 돌보고, 그를 사랑하라는 목소리. 하지만 토미는 스스로에 채찍을 가하면서도 그 고통을 삼켜 넘겼고, 동정어린 시선을 거두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첫날밤 기억해? 공연이 끝나고나서 함께 했던, 그 날 기억해? 그날 밤,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해 왔는지 처음으로 난 고백했었어. 너와 함께 있고 싶다고, 너의 곁에 있고 싶다고, 그러고 싶다고 너에게 말했었어. 그리고 침대에서 네가 말했어. 네 마음을 부서뜨리지 말아달라고. 그리고 난 너에게 약속했어, 기억나?" 토미는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때, 나도 너에게서 같은 약속을 받아냈어야 했던 거였어."  

그 순간 아담은 침대에서 일어섰고, 팔을 뻗었지만 이는 곧바로 거절당하고 말았다.

"건드리지마!"

토미는 뒤로 물러섰고,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듯 가슴앞으로 팔을 둘러 감았다. 그리고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난 내 약속을 지켰어," 조용한 공기 속에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3년 내내, 난 내 약속을 지켰어. 하지만 넌 네 약속을 어겼어. 말로 하지 않았다고 해도 넌 내게 약속했었어, 아담. 이 침대 위에서 우리가 사랑을 나눌때마다 넌 약속했었어. 내가 널 위해 다릴 벌릴 때마다, 네 아래에서 네 이름을 부를때마다, 내 안에 널 받아드릴때마다 넌 내게 약속했었어."

토미는 눈 앞으로 흘러 내린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네가 이 곳을 걸어 나갈때마다, 나도 너와 함께 였다는 거 알아? 넌 내 마음을 팔 안에 가져가서는 이 곳으로 돌아올때면 언제나 신발 끝자락에 매달고 돌아왔어. 필사적으로 너에게 매달리려는 내 마음이 어땠을지, 갈기갈기 찢겨진 채로 이 도시 어딘가에 버려져버린 내 마음이 어땠을지 알려고나 해봤어? 산산히 부숴져버린 채로 클럽 화장실에, 호텔방에, 알지도 못하는 녀석의 침실에, LA 곳곳 마다, 이 나라 곳곳마다, 세계 곳곳마다 버려져 길을 잃은 내 마음을 넌 알기나 했냐고!!"

토미는 대답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대신 바로 몸을 틀어 침실을 나갔고, 층계를 내려가 현관을 향해 다가갔다. 아담은 불러본들 소용없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뒤쫓아 내려갔다. 그리고 조용한 침묵이 찾아왔다.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건 아마도 몇 시간전에 놓쳐버린 것을 이제와서야 깨달아버린 데에 대한 미안함과 자기혐오 때문일 것이다. 현관 앞 커다란 화분 옆으로 놓여져있는 두 개의 여행가방. 그건 토미의 가방이었다. 두 시간 전에 싸놓았던, 목적지는 불분명한 채로.

"이러지마," 아담이 속삭였다. "가지마. 다시 되돌릴 수 있을테니까. 미안해,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 더이상 하지마. 너랑 너의 그 미안이라는 말들. 그 빌어먹을 미안하다는 말들, 숨막혀 죽을 것 같아. 더이상 하지마. 그 말에 쓰이는 숨소리조차도 듣고싶지 않아."

그리고 그 순간, 아담이 도착하기 몇분 전에 불러놓았을 차의 엔진소리가 밖으로부터 두 사람의 귓가에 들렸다.

"가지마. 내가 잘 할테니까, 맹세해. 내가 되돌려 놓을테니까. 정말 미안해, 토미. 미안해. 제발, 믿어줘."

토미는 한동안 그를 바라보았고, 그리고 말했다. "난 너에게 내 모든 걸 줬어. 전부 다. 너에게.. 너에게 맞추려 내 세계를 전부 정리하고 내 삶을 전부 바꾸어 버렸어도, 널 내 인생의 전부로 받아드렸어도 난 그저 행복했어. 내 전부를 너에게 주었어도 난 기뻤어. 오늘밤까지도 난 몰랐어. 그 생각들이 날 이렇게 망쳐버릴 줄 그땐 미처 몰랐던거야. 누군가의 손에 내 전부를 맡긴다는 것. 내 가슴안에 단 한조각의 마음이라도 남겨두지 않은 채 전부를 맡긴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다 주고나서야 깨달았어. 넌 내 모든 걸 가져가 버렸고, 난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뒀어. 하지만 더이상은 아냐."  

토미는 몸을 숙여 가방의 손잡이를 끌었다. 그리고 그는 문을 열었다.

"지낼 곳은 있어?"

"몰라."

"어떻게 할 생각이야."

"몰라. 네가 산산조각 낸 내 조각들을 찾을거야."

처음이었다. 아담의 눈물을 보는 것은. 토미는 그의 뺨으로 흘러내리는 그 눈물을 보았다. 그는 지켜보았고, 다시금 흔들리려는 그의 마음을 묵살시켰다.

몇 분 뒤, 가방들은 검은색 타운카의 트렁크안에 있었고, 토미는 뒷좌석에 앉아 작은 몸을 늘어뜨린채 부드러운 검은 가죽 시트에 몸을 파묻었다. 차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길가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목적지는 없었다.

두 사람의 첫날 밤을 그는 생각했다. 그날의 아담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워 보였는지, 피부 위로 중얼거리는 그 목소리가 얼마나 작았는지. 침대 시트 사이로 몸을 얽은채, 아담의 허리에 다리를 감고, 그의 어깨위로 손을 얹어, 힘줄이 불거진 근육위로, 뜨거운 열로 뒤덮힌 그 피부위로 손끝을 미끄러트렸던 기억들.

아담의 목소리, 몸을 움직이며 거친 숨사이로 부탁해 오던 그 목소리. 허리를 강하게 붙잡아오던 그의 커다란 손.

"내 마음에 상처 주지 말아줘. 내 심장을 부숴뜨리지 말아줘."

그리고 토미의, 갈라지고 쉬어버린,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진실함이 그 목소리엔 담겨 있었다.

"약속해, 약속할게."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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