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aration anxiety

by. thrace_adams







방안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돌아다니는 아담을 보는 토미의 마음은 그닥 즐겁지 못했다. 이렇게 서두를 이유따윈 아무데도 없었다. 아직도 두 사람 사이엔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고, 굳이 평소와는 다르다는 생각을 이런 식으로 심어놓을 이유가 그에겐 없었다. 언제나처럼,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답게 행동했어도 충분했다. 옷장으로, 침대로, 서랍장으로, 또 다시 침대로, 그리고 다시 돌아서서는 옷장으로, 그는 눈가를 찌푸리며 전쟁이라도 터진것 마냥 정신없이 움직여대고 있었다. "분명 빼놓은 게 있을텐데." 그가 중얼거렸다.  

"필요한 건 가서 사면 되잖아. 유럽은 치약도 안파는 제 3세계가 아니라구."

아담은 무슨 뜻이냐는 듯 그를 바라보았지만 토미는 그에 반응해 줄 그 어떤 말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침대 위에 엎드려 침울해진 표정으로 손톱 끝을 잘근잘근 씹어물며 가방안으로 물건들을 집어넣는 아담을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괜찮겠어?" 아담이 걱정스레 물었다.

토미는 그에게서 눈을 돌렸다. "애 취급 하지마. 괜찮을 거니까."

아담은 고개를 돌려 토미의 얼굴 위로 드러난 그 표정을 읽어보려 했지만, 그 곳엔 아무런 감정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는 이제 곧 유럽으로 갈 것이다 - 물론 혼자서. 그렇기에 조금 정도는 실망했다거나 화가 난 표정을 예상했었지만 토미는 평소와 같았다. 아담은 만족한 듯 다시 뒤돌아 짐을 싸기 시작했다. 토미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무감각한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았다.

그들이 알고 지냈던 수개월 동안, 이게 무엇이건 간에 그들사이엔 언제나 존재했다. 지금도 그건 여전히 새롭기만 한 것이었다. 서로의 마음을 정말로 읽을 수 있는 기회는 보기보다 적었다. 그들이 처음 만났던 그때, 토미는 이미 그에게 흠뻑 빠져있었던 상태였고, 아담은 그저 그런 사랑스러움을 마음껏 즐기곤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카보로의 휴가 그 이후, 토미는 아담의 화려한 라이프 스타일에 완벽하게 휩쓸려버렸고, 단 한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에 발을 들여놓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이미 인터넷 상에선 그들의 사진들로 와글와글 떠들어대고 있었고, 그 당시 토미는 자신이 벌인 일에 충격을 받았더랬다.

그 일들로부터 몇달이 지난 후, 두 사람은 개인적인 공간과 직업적인 공간 안에서 미묘한 균형을 맞춰가는 척 주변을 속이기 시작했고, 모든 것들이 제 자리를 찾아 안정되어 가려는 지금, 아담은 토미를 이곳에 남겨둔 채 프로모 투어를 가려하고 있었다. 토미는 어쩌면 반정도는 안도했을 지도 몰랐다. 아담을 향한 이 감정들의 진짜 의미를 깨닫기에 어쩌면 지금이 적절한 타이밍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으니까. 하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론, 그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아 매달리며 함께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고 싶기도 했다.

"두꺼운 옷으로 챙겨. 올해 유럽은 완전 춥다니까."

"알고 있어. 그건 레인이 알아서 할거야."

토미는 몸을 일으키며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잠깐, 레인한테 쇼핑 맡긴거야?"

아담은 어깨를 한번 으쓱할 뿐이었다. "뭐 코트뿐이니까. 내 취향이 어떤지는 그녀도 잘 알고 있고." 그는 토미의 앞으로 걸어와 눈높이를 맞추어 앉았다. 그의 따뜻한 손가락이 뺨을 감싸 안았다. 토미는 두 눈을 감고 그의 손길에 기대었다. "뭣보다 덕분에 너와 이렇게 함께 할 수 있으니까."

감고 있던 눈을 뜨자, 아담의 깊고 푸른, 흔들림없는 강한 눈동자가 바로 앞에 있었다. 그 푸름의 농도는 지나칠 정도로 짙었다. "고마워," 꽉 막힌 속삭임이 거칠어진 목구멍 사이로 흘러나왔다.

아담은 그를 향해 웃어보였고, 엄지로 가만히 뺨을 쓰다듬는,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버린 그 손길이 가만히 고동하는 토미의 심장을 꽈악 움켜죄었다. 눈 앞으로 흘러내린 앞머리를 뒤로 넘겨주며, 입술 위로 다정한 키스가 내려앉았다. "눈치챌 틈도 없이 돌아와 있을게, baby."  

토미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목구멍이 막혀와 괜찮은 척 말을 꺼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아담을 향해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를 지어보이려 애썼다. 아마도 그럭저럭 통한 것 같았다. 아담의 두 눈동자에 조금 기쁨의 빛이 보였다랄까. 그리고 그는 다시 옷장을 향해 걸어갔다.

토미의 시선은 다시 아담이 짐을 싸는 내내 그의 움직임을 쫓아 돌아다녔다.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며, 떠나야함에 조그만 소음을 내뱉았다. 아담은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조용한 눈으로 바라보았고, 그를 향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짐을 챙기는 자신의 모습과 오고가는 모든 작별의 말들이 토미에게 있어선 그 어떤 고문보다도 아플 것이라는 걸 그는 이미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여행가방에서 손을 떼고, 현관문 앞에 서 있는 토미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서로를 마주한 그 순간, 토미는 아담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그의 가슴에 고개를 묻자, 익숙한 가죽의 내음과 디올 옴므의 향기가 느껴졌다. 아담의 팔이 그를 둘러안았다.

손바닥 아래로 느껴지는 그의 셔츠를 꽉 움켜쥐었다. 그를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수많은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 들어왔다. 이미 알고 있는 몇가지의 감정들과, 알고 싶지 않은 몇가지의 감정들. 심장은 짓눌리고, 목구멍은 틀어막혀, 두 눈이 아플정도로 따끔거렸다. 깊게 숨을 삼켰다. 아담의 그 향기를 기억하고 싶었다. 그것만이 지금 이 순간 그를 이곳에 잡아둘 수 있는 유일한 구속의 끈이었으니까.

"잠깐만," 아담이 그의 머리 위에서 조용히 속삭였다. "잠깐 기다려."

그는 토미의 손을 붙잡아 떼어놓았고, 발걸음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다. 폐 속으로 방안의 차가운 공기가 차오르고, 다시 숨을 내뱉았을 때, 마치 화상과도 같이 목구멍이 따끔거렸다. 깊게 쉼호흡을 하며 가슴앞으로 팔을 둘러 감은채, 아담이 빨리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그는 돌아왔고, 손 안엔 작은 종이가방 하나가 들려있었다. 그는 토미에게 가방을 내밀었고, 토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 보았다.

"받아. 그리고 집에 가서 열어봐."

토미는 가방을 한 번 내려다 본 후 고개를 들어올렸고, 마주한 아담의 진지한 시선에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응, 집에 가서 열어볼게."

아담은 그를 끌어당겨 힘껏 품에 껴안았고, 토미는 팔을 들어 그의 허리를 꽉 붙들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렇게 서 있었는지 두 사람 모두 알 수 없었지만, 토미는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열어 먼저 말을 꺼낼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목소리는 아담의 가슴에 파묻힌 채, 깨어질듯 약하게 흘러나왔다. "난 이제 가보는 게 나을 것 같아. 짐 마저 싸. 비행기 시간에 늦기라도 하면 레인이 날 죽이려 들테니까."

마지못해 아담은 한발짝 물러섰고, 토미의 얼굴을 조심스레 들여다 보았다. 토미는 그를 향해 웃어보였다. 그 미소가 앞으로 있을 그의 일에 힘이 되어줄 수 있길 바랬다. 밝고 즐거운 미소로 보여지길 바랬다. 가슴 안으로 또아리를 트는 또 다른 아픈 감정들이 그의 앞에 드러나지 않길 애쓰며. 그렇기에 아담이 고개를 끄덕였을 때, 토미는 조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아담의 손이 그의 뺨을 감싸고, 토미는 그의 손길에 기대었다. 고개를 돌려 그의 따뜻한 손바닥 위로 입술을 맞추었다. 목 뒤로 그의 손이 미끄러지고,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의 입술이 부드럽게 맞물렸다. 아쉬운 듯 떨어지는 입술 사이로 서로의 얕은 한숨이 흩어졌다. 이마를 맞댄채로 아담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거야, baby."

토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그리고 아담은 그를 놓아 주었다. 백미러로 보이는 그의 모습이 희미해질 때까지, 그는 그 곳에 서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토미는 아담이 준 종이가방의 존재와 가슴 깊은 곳을 휘젓는 감정들을 무시하려 애쓰며 오직 운전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거실에서 비디오 게임을 즐기고 있는 데이브와 마이크에게 인사 한마디 건네지 않은 채 방안으로 곧장 걸어 들어갔다. 신발을 벗어 던지고 침대 위로 잔뜩 웅크리고 누워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아담이 준 종이가방을 품에 꽉 끌어안고 그렇게 누워 있었다. 끊임없이 머리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두려운 감정들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어느샌가 방안엔 새까만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고, 하루 종일 비워뒀던 뱃 속은 배고픔을 호소하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고 앉아, 떨리는 호흡을 가만히 내쉬며 종이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아담의 향기가 순식간에 그를 감쌌다. 궁금한 시선으로 가방 안을 들여다 보았을 때, 그는 호흡을 멈췄다. 그 안엔 아담이 가장 좋아했던 티셔츠 한장이 들어있었다. 토미는 가방으로부터 티셔츠를 꺼내들고 부드러운 옷감 위로 얼굴을 파묻었다. 그의 향기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그리움을 향한 잔뜩 고인 눈물에 눈가가 따끔거렸다.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종이 봉투로부터 하얀 종이 조각 하나가 눈 앞에 나타났다. 토미는 허리를 숙여 집어들었다.

알아, baby. 알고 있어. 곧 돌아갈게.

티셔츠와 함께 그가 남긴 메세지를 품안에 끌어안고 침대 안에 파묻히듯 다시 웅크리고 누웠다. 휴대폰의 진동이 느껴졌을 때야 비로소 몸을 움직였다. 주머니로부터 휴대폰을 꺼내들어 문자 메세지의 주인이 아담이라는 것을 확인했을 때, 그는 웃을 수 있었다. 시계가 가리키고 있는 시간으로 보건데, 아담은 지금쯤 막 비행기에 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메세지의 내용을 확인했을 때, 그의 미소는 더욱 짙어져 있었다.

맘에 들었어? 벌써부터 보고싶다 빨리 돌아갈게♡

재빨리 답장을 보내고, 토미는 그의 티셔츠를 품에 안고 몸을 웅크렸다.

"빨리 돌아와, 아담," 그의 작은 목소리가 조용한 방 안으로 흩어졌다.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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