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unge

by. gypsy-scribbles







처음 물에 빠져 죽을 뻔 했던 건 7살 때였다.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Marina del Ray의 크루즈에 올랐을 때, 다른 가족들이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 있는 동안, 토미는 선박 위를 돌아다녔다. 난간에 기대어 물속을 들여다보았을 때, 무언가가 있는 것을 발견했고, 그는 정말로, 정말로 그게 상어이길 바랬다. 뭐 돌고래여도 좋았을 것이다.

분명 그 기대 때문에 그는 난간에 너무 기대었던 게 틀림없었다. 눈 깜짝할 순간에 그는 풍덩 작은 소리와 함께 바다 속으로 끌려들어갔고, 그 나이 또래의 애들이라면 누구나 매고 다녔던 닌자 거북이 가방은 마치 바위처럼 그를 바다 깊이 가라앉혔다.

그 날을 되돌아볼 때면 언제나, 뱃속으로 사리를 틀던 공포와 용암같이 뜨겁고 고통스러운 물속에서 크게 뜨인 두 눈을 찔러대던 녹색의 음산한 어둠이 그대로 떠올랐다. 그 당시의 그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 애썼다. 입을 꾹 다물고, 미친 듯이 고개를 내저으며 발을 굴렀지만, 여전히 깊이 가라앉는 몸은 떠오를 줄 몰랐다.

그리고 그 순간, 무언가가 손을 붙잡았을 때, 토미는 경악으로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두 눈앞에는 같은 나이 또래로 보이는 소년의 얼굴이 있었다. 걱정이 어려 있는 다정한 푸른색의 눈동자, 물결에 요동치는 밝은 머리칼, 그리고... 꼬리. 어두운 남색과 청록, 보랏빛으로 뒤섞여 반짝이는 지느러미가 이리저리 움직여댔다. 그리고 몇 초 후, 그는 더 이상 당황하지도, 몸부림치지도 않는 스스로를 깨달았다. 가슴 안을 때려대던 고통은 멈춰 있었다.

정확히 말해서 그건 호흡과는 달랐다. 하지만, 더 이상 공기는 필요치 않았다. 물론 이해는 되지 않았다. 인어의 능력인걸까, 혹은 인어가 아니라 뭔가 다른 생물의 영향인걸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그조차 알 수 없었다. 토미가 느꼈던 것은 그저 평온과 위안이 전부였고, 그는 소년을 향해 미소 지었다. 그리고 소년이 마주 바라보며, 손을 좀 더 세게 움켜쥐는 것을 느꼈다.

어느 순간 소년의 눈이 위를 향하고, 그를 따라 시선을 올렸을 때, 토미는 그들 위로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물결을 희미하게 깨달았다. 수면으로부터 강한 파도가 느껴졌다. 그리고 마법은 사라졌다.

소년의 얼굴은 마치 당장이라도 울어버릴 듯 했고, 그는 토미의 손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강하게 맞잡은 후, 망설임 없이 놓아 주었다. 소년은 반짝이는 꼬리를 내저으며, 마치 빛의 속도와 같이 순식간에 멀어졌다. 토미는 그를 향해 손을 뻗으며, 본능적으로 입술을 벌렸다. 하지만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바닷물이 목안으로 휩쓸려 들어왔고, 그 순간 가슴 앞으로 강한 팔이 감겨와 그를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 그 곳엔 미친 듯이 날뛰시는 부모님이 계셨다. 그리고 눈앞엔 세상이 있었다. 그저 몇 분이었을 뿐인 바다 속에서 완전히 잊어버리고만 있었던 세상.





두 번째로 그가 거의 익사할 뻔한 건 27살 때였다. 인생이 좇같이 느껴졌던 때. 그때 당시 그의 밴드는 허무하게 공중 분해되어 버렸고, 그의 전 룸메이트는 그의 전 여자 친구와 몰래 약혼식을 올렸으며, 지금의 직장 따위 불태워 버리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7살 이후 20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마법처럼 행복했던 기억이라는 게 상상의 조각처럼 동화 같았던 어린 날의 그 장면 하나라는 것이 우습고 비참했다.

그 사건 이후로도 몇 년간, 토미는 몇 번이고 Marina del Ray 해변의 같은 장소를 찾곤 했다. 그조차 자신의 행동을 표현할 길은 없었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렇게 그는 그 곳을 다시 찾았다. 그 곳은 그에게 알 수 없는 위안과 평온을 가져다주었고, 바닷가에 위치한 술집을 나선 후엔 언제나 부둣가를 따라 걷는 게 좋았다.

가장 좋아했던 술집을 나선 후, 그는 언제나처럼 조금 비틀거리며 해변을 거닐었고, 입고 있던 후드티의 앞을 단단히 여몄다. 1월의 해변 바람은 얼음처럼 시렸고, 기온은 겨우 4도씨 정도였다. 때문에 부둣가 위엔 사람이라곤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몇 분 동안이고 가만히 서서 어두운 밤하늘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들어 올린 시선 끝엔 새까만 하늘이 펼쳐져 있었고, 그 안엔 수많은 별들이 반짝였다. 그리고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그의 기분은 왠지 모르게 편안해졌다.

그 소리는 마치 누군가의 노래 같았다. 높고, 선명하고, 아름다운 목소리. 하지만 가사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던 순수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선율. 토미는 고개를 돌리고 어디에서 들려오는 것인지를 찾아보려 했다. 그 소리가 무엇이든, 펑펑 울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으니까.

다만, 그 소리가 바다에서 들려온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엔, 그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눈앞에 깔린 어둠 속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기 위해 부둣가 끝으로 발을 옮기는 순간, 우두둑 소리와 함께 나무발판이 무너지며, 그대로 발밑부터 미끄러졌다. 바다 속으로 삼켜짐에 당황할 새조차 없었다. 물속에서부터 깎아 올린 부둣가의 기둥에 머리를 부딪침과 동시에, 모든 것들이 암흑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깨어나서 토미가 가장 처음으로 한 생각은, 머리가 부서질 듯이 아프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 생각은, 젠장, 살아 있잖아. 낮은 신음과 함께 두 눈을 뜨며, 쓰라린 머리통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그 곳엔 무릎을 꿇고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붉은 금빛의 머리칼로부터 물방울들이 똑똑 떨어져 내리고, 달빛 아래로 밝은 청색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어..다, 당신이.. 날 구해준 거..예요?” 말을 더듬으며 토미가 물었지만,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계속이고, 다정한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 미소가 익숙하다는 것이 토미의 혼란스런 뇌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선을 내려 그의 물에 젖은 넓은 어깨와.. 오. “당신 알몸이네요.” 토미는 중얼거렸다. “옷은 어딨어요? 물에 뛰어들 때 벗었던 거예요? 이름은 뭐예요?”

그 낯선 남자는 그저 웃고 있을 뿐이었고, 토미는 시선을 마주했다. 마치 최면술에라도 걸린 것처럼. 막 입술을 떼고 뭐라도 다시 말을 이어보려는 찰나, 남자가 갑자기 훽 고개를 들어 올렸다.

거기엔 커다란 목소리가 있었고, 발자국 소리가 이어졌다. 토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구해준 남자를 향해 팔을 뻗었다. 하지만, 남자는 이미 일어서서 해변을 향해 멀어지고 있었다.

“잠깐만요!” 토미는 소리쳤다. 그 소리는 다소 필사적이었고, 몸을 일으키려 했을 땐, 쿵쿵 고통을 호소해 오는 미친 듯한 두통에 다시 모래 위에 털썩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라고, 젠장!” 하지만 남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토미는 무거운 한 숨을 내쉬며, 상황을 정리해보려 했다. 젖은 옷을 말려야했고, 어쩌면 의사가 필요할지도 몰랐고, 그리고.. 씨발. 바닷물에 흠뻑 젖어버린 초라한 후드티의 주머니 안으로 손을 넣었을 때, 어쩌면 당연하게도, 거기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지갑과 휴대폰, 그리고 집 열쇠까지. 아마도 지금쯤이면 빌어먹을 바다 속 어딘가에 가라앉아 있겠지. 완전, 그는 완전히 망해버렸다.

아픈 머리를 문지르며, 어느 친구가 새벽 2시에 울리는 콜렉트 콜을 기꺼이 받아줄 것인지 결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두 발로 겨우 모래를 딛고 일어섰을 때조차, 그의 시선은 무심결에 남자가 사라진 방향을 헤매고 있었다.




~* * *~


일주일 뒤, 막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왔을 때, 전화벨(최근에 새로 산 휴대폰의)이 울렸다. 번호는 전혀 모르는 것이었다. 어깨와 턱 사이에 휴대폰을 끼고, 바지를 끌어올리다 Marina del Ray에 있는 경찰서의 브로워 경관이라는 남자의 소개에 그 자세 그대로 얼어버렸다.

“지갑에 있는 신분증을 보고 연락드렸습니다만, 분실 신고엔 올라와 있지 않더군요. 소지하고 있던 분을 기소하실지 여부를 확인하고자 합니다만.. 혹시 아시는 분이십니까?”

토미의 심장은 늑골을 부수고 튀어오를 듯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누구라는데요?”

“음.. 영어를 모르시는 분 같은데, 조금.. 특이하신 분 같기도 합니다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 신고 전화로 체포당한 상태라서요. 하지만 약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분을 입건하는 건 저희로써도 그닥 반길 일이 아니고, 혹시 이 분의 보호자라거나, 친척, 뭐 그런 분들 중 아시는 바가 있으신지?” 브로워 경관의 목소리는 긍정의 대답을 원하는 듯 보였다.

“알아요!” 벌써부터 스페어 키를 집어 들곤, 토미는 재빨리 대답했다. “그 녀석은, 음, 제.. 맞아요, 제 사촌이예요! 지금 바로 그리로 갈게요!” 막 휴대폰을 닫으려는 찰나, 경관의 말이 다시 한 번 머릿속에 떠올랐다. “잠시만요, 근데 그 죄목이 뭔데요?”

수화기 건너편의 남자가 목을 한 번 가다듬었다. “성기 노출죄..라고, 페스티발 중, 나체로 해변을 걷고 있다는 신고에 그를 체포했습니다만, 말을 못 알아듣는지, 그저 웃으며 당신의 운전면허증을 가리키더군요. 그 탓에 어쩌면 당신과 아시는 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전화 드렸습니다.”

“지금 바로 갈 테니까 거기 붙잡아 두세요, 꼭 부탁드려요!” 토미는 바람처럼 아파트를 빠져나와, 콘크리트 바닥에 거의 얼굴을 쳐박을 듯 달려 차에 올랐다.

Marina del Ray로 향하는 동안, 속도 위반에 아슬아슬하게 걸리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운전해서 경찰서 앞에 아무렇게나 불법 주차를 마친 뒤, 100m 전력 질주라도 한 사람마냥 헐떡이며 안으로 들어섰다. 프론트 데스크 앞에 멈춰서, 앞에 놓인 벨을 누르고 이리저리 정신없이 경찰서 안을 둘러보았다. 몇 몇의 경찰들이 짜증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브로워 경관님 안 계신가요?! 토미 래틀리프라고.. 전화로 얘길 나눴습니다만.. 어.. 제 사촌이 이곳에 있다고-”

점점 다가오는 큰 키의 남자가 눈에 들어왔을 때, 토미의 손은 다시 눌러보려는 벨 위에 우뚝 멈춰 섰다. 남자의 밝은 색의 두 눈과, 커다란 미소를 알고 있었다. 그는 미니 드레스 같은 커다란 I LOVE L.A.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이곳의 누군가에게 츄리닝 바지를 빌려 입은 듯 했다. 물론 그의 긴 다리를 전부 커버하기엔 조금 모자란 것 같아 보였지만.

“저기, 난-” 거기까지가 토미가 내뱉은 말의 전부였다. 가까이 다가온 남자의 부드러운 팔이 등을 감싸고, 순식간에 그는 남자의 가슴 앞에 끌어당겨졌다. 당황스러움에 입술을 벌릴 틈도 없이 어느 샌가 그들은 키스를 하고 있었다. 밀고 들어오는 혀가 토미의 것과 얽혀 들었다. 그 움직임은 마치 처음 맛보는 캔디를 입에 문 어린 아이 마냥 호기심과 열망으로 가득했다. 호흡이 막혀서 더 이상은 참을 수 없게 되자, 토미는 결국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가쁘게 심호흡을 하며, 남자의 팔을 소심하게 그러쥐었다.

경찰서 안의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경악으로 입을 벌린 채.

“어, 음.. 이혼한 부인의 사촌이랄까요?” 토미는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운전대를 잡은 동시에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기라는 건 토미의 입장에서는 다소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뒤에서 빵빵거리는 경적 소리와 바뀌어버린 신호에도 불구하고 조수석에 빼앗겨버린 시선을 되돌릴 길은 없어보였다. 창밖으로 지나쳐가는 풍경에 점점 더 커지고 커지는 푸른 두 눈을 바라보며, 그는 당황스럽다 해야 할지, 홀려 버렸다 해야 할지 쉽게 결정지을 수 없었다.

토미는 그의 이름을 알아내기로 마음 먹었고, 때문에 운전하는 내내, 알파벳 순서대로 남자의 이름이라 생각되는 것들을 하나씩 꺼내갔다.

여전히 그는 A에 머물러 있었고, ‘아담’이라는 이름을 말했을 때, 미소 짓는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아담?” 토미는 괜히 들떠서는 물었다. “이름이 아담이야?”

그의 다정한 미소가 더 환해졌다 싶은 순간, 타이트하게 들러붙은 츄리닝 바지 주머니 안을 그가 갑자기 뒤적이기 시작했다. 더욱 몸에 착 달라붙는 그건 정말이지.. yeah, 범죄라기에 충분했다. 어쨌든, 그는 토미의 지갑을 꺼내들고, Adam's Shanty에서 끊어준 명세서를 들어보였다. 그 곳은 Marina del Ray 해변에 있는 라이브 뮤직 카페였다.

토미는 눈을 크게 떴다. “너 내 말 이해할 수 있어? 말만 못할 뿐인 거야?”

남자는 어깨를 으쓱이며 손을 들어 귀를 가리켰다.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들었다고? 맞아? 그럼 글은 어떻게 아는 거야? 읽을 수 있어?”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명세서에 찍혀있는 돛대를 단 배의 그림을 가리켰다. 그 심벌은 Shanty의 간판에 있는 것과 같았다.

“아. 그림을 보고 끼워 맞췄구나.” 토미는 시동을 껐다. “이거 꼭 그 장면 같아. TV에서 맨날 해주는 래시랑 그 꼬마가 대화하는 거.”

그 말에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알 수 없다는 표정을 해보였고, 토미는 그저 웃으며, 그의 무릎을 토닥였다. “신경쓰지마. 그래서, 아담이라고 부르면 돼? 너 Marina del Ray 근처에 사는 거야? 누구, 뭐 보호자라든가 없어?”

그는 고개를 흔들며, 손가락으로 토미를 가리켰다. 그의 표정은 의미심장했고, 그건 마치 토미가 그 동작을 이해하길 기대하는 것 같아 보였다.

머릿속에서 울려대는 경고 신호들을 따라야 할 백만 가지의 이유가 있음을 토미는 알고 있었고, 벙어리에 어쩌면 미친놈일지도 모르는, 공공장소에 알몸으로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닐 만큼 정신 나간 남자를 집에 들여서는 안 된다는 이유 또한 백만 가지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남자 -아담-에겐 무엇인가가 있었다. 모든 이성적인 생각들을 전부 차단시켜버릴 정도의 익숙함과 편안함이 그에겐 있었다.

“들어가자,” 결국 그는 말했다. “며칠 동안만이라면 우리 집에서 지내도 돼.”





아파트 안으로 채 들어서기도 전에, 아담은 그에게 달려들었다. 다짜고짜 벽으로 밀어 붙이고, 오랜만에 주인을 만난 강아지처럼 여기저기 입술이 닿는 대로 핥고 빨았다. 호흡을 삼키기도 전에, 그는 두 사람의 옷을 순식간에 벗겨냈고, 토미의 벌거벗은 목과 어깨 위에 달콤한 키스들을 쉴 새 없이 남겨갔다.

“난.. 저기 난, 거- 거의 스트레잇인데,” 아담의 큰 손이 가슴 위를 크게 덧그렸을 때, 토미는 힉- 숨을 삼켰다. “난.. 난 그러니까, 보통은..”

아담은 혼란스런 시선으로 올려다보았다. 그의 푸른 눈동자는 어두웠으며, 목과 두 뺨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마치 토미가 맛있는 아이스크림이라도 되는 듯, 그는 작게 벌어진 입술을 혀끝으로 애태우듯 핥았고, 토미는 꿀꺽 침을 삼켰다.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시-신경쓰지마,” 그는 중얼거린 후, 아담의 손을 잡아 침실로 끌고 갔다.

두 사람 모두 벌거벗은 채로 침대 위에 누웠을 때, 토미는 잠시 동안 움직임을 멈춘 채 빤히 그를 내려다보았다. 아기처럼 부드럽고 매끄러운 살결은 토미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아담의 피부에선 달콤하고 깨끗한 향이 났지만, 바닷물의 톡 쏘는 짠 맛이 혀끝에 희미하게 느껴졌다. 금빛의 작은 주근깨들이 마치 모래알들처럼 그의 몸 위를 뒤덮고, 그의 숨김없이 드러난 몸이 눈앞에 있었다. 손 아래 외설적으로 꿈틀대는 잔 근육들과 열망으로 벌어지는 입술. 그의 호흡 하나에서부터 스며나오는 본능적인 성욕들에도, 모든 게 이상하리만치 순수했다.

토미의 몸 위를 뜨겁게 타고 오르는 아담의 두 손은 인간의 형상에 홀려버린 듯 보였다. 토미의 문신에서부터, 모든 손길과 혀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그의 몸, 벌어진 입술 사이로 만들어내는 신음들까지. 서투르게 움직이는 탓에, 토미는 어떻게 그들의 몸이 하나로 연결될 수 있는 지 보여줘야만 했다. 하지만, 아담은 순식간에 배워갔고, 곧 물의 흐름처럼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토미를 아래에 가뒀다. 차갑고 부드러운 피부가 토미의 팔과 다리에 마치 실크처럼 미끄러지고, 뜨겁게 젖은 입술은 흐트러지는 그의 모든 호흡과 날카로운 신음들을 앗아갔다.




~* * *~


토미의 이름 후에 아담이 처음으로 배운 단어는 ‘뮤직’ 이었고, 두 번째는 ‘섹스’, 그리고 세 번째는 ‘글램’ 이었다. (토미는 그와 함께 미친 듯이 ‘Velvet Goldmine'을 돌려보고 반복해서 보고 계속해서 보았던 시간들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아담은 정말 TV를 사랑했다. 토미가 일 때문에 나가야했던 첫 날, 어영부영하게 소개시켜주고 나간 후에도 불구하고, 그는 TV에 완벽하게 빠져들었다. 아담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토미는 존 웨인의 DVD를 세 편 연속 재생시켜놓고 나갔고, 일에서 돌아왔을 때 스크린 위로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과 함께 눈에 들어온 건 끅끅 흐느끼고 있는 아담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담에게 이 작은 상자 안에서 사람들이 총을 쏘고 서로 죽이는 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이해시킨 후엔, 뭐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아 보였다. (비록 모든 호러 영화들은 구석에 숨겨놓기로 했지만.)

아담은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앉아 뚫어지게 TV 화면만을 바라보곤 했다. 심지어 광고까지도. 그건 당연하게도 골칫거리가 되어버렸다. 부모들이 아이에게 TV가 끼치는 영향에 대해 걱정하듯 토미 또한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아담은 여느 아이들보다 감수성이 예민했고, 작은 하나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했기에 그 정도는 더욱 심했다. 그 결과의 강도 또한 ‘나쁜’에서 부터(집에 남아있던 데낄라의 전부를 아담이 싱크대에 모조리 부어버린 건,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알콜의 위험성에 대해 방송한 직후의 일이었다.) ‘끔찍한’에 까지 잇달았다.(아담은 피자 광고를 보고, 방송에 나온 번호로 피자를 주문했다. 물론 피자가 도착했을 때 돈을 지불해야함을 그가 알고 있을리 만무했고, 토미는 그날 일찍 직장에서 퇴근해야만 했다. 또한 배달원에서 보통 팁의 3배 이상을 얹어줘야만 했다는 건 여담. 그야 당연히 아담이 벌거벗은 채로 문을 열었으니까.) 그 후, 토미는 매일 카운터 위에 조금씩 현금을 놓아두고 나갔다. 만약을 위해서.

아담은 사회생활을 배웠음이 틀림없었다. 토미가 퇴근하고 집에 온 어느 날, 아담의 솜털처럼 부풀어 있던 붉은 황금빛의 머리칼은 흑요석처럼 새까만 색으로 염색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멋지게 스타일링까지 되어 있었다. 그는 집에선 항상 알몸인 채였다. 물론 세상에 남은 게 그 두 사람 뿐이라면 토미는 언제나 환영이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억지로 토미가 옷을 입으라 강요할 때면, 아담은 언제나 입술을 비쭉이며 몸을 비틀어댔지만, 액세서리엔 불평 하나 터뜨리지 않았다.) 토미의 반응을 기다리는 아담의 모습은 다소 들떠 보였다.

“어.. 음, 뭐 미용실 광고 같은 걸 봤던 거야?”

아담은 쑥스러운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 졸라 멋있잖아, 너.” 토미는 빠르게 말을 내뱉은 후, 곧바로 침실을 향해 걸어갔다. 비록 오늘 아침의 일로 여전히 쓰라리긴 했지만.. 그리고 그 전 날 밤의 일도 더해서. “지금 나랑 섹스 할래?”

아담은 자리에서 튕겨 오르듯이 곧장 달려가, 종이 인형마냥 번쩍 토미를 안아들고 품에 꽉 껴안았다.





며칠 후, 아담은 Velvet Goldmine에 나온 배우들처럼 얼굴에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유성 매직으로. 그의 하얗고 예민한 피부가 욕실의 세면대 앞에서 붉게 부어오르는 것을 봐야하는 건 정말 끔찍한 기분이었다. 그 다음날 아침, 직장으로 향하던 길에 토미는 잠깐 마켓에 멈춰 섰다.

그는 은색의 포장지에 쌓인 메이크업 키트를 사들고 돌아왔고, 그걸 본 순간, 아담의 두 눈은 거의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그는 또 벌거벗은 채였지만, 목에는 스카프가, 그리고 팔엔 토미의 마지막 여자 친구가 헤어지며 그의 얼굴에 냅다 집어던지고 갔던 팔찌가 걸려 있었다.

“반짝여!” 아담은 즐거운 듯이 외치며, 토미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두 눈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나한테 주는 거야?”

“Yeah, 너한테 주는 거야.” 토미는 기다리고 있었지만, 미소와 함께 아담은 그저 작은 은색의 패키지를 내려다보며, 조심스럽게 손가락 끝으로 반짝이는 푸른 색 리본을 톡톡 건들이고 있을 뿐이었다.

“맘에 들어, 고마워.”

“어.. 풀어보진 않을거야? 음, 안에 뭐가 있는지 보고 싶다든지?”

아담은 충격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더 있어?!”

토미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웃음을 참으려 애썼다. “Yeah, baby. 더 있어.”

아담은 단발마를 내지르며 바로 상자를 뜯었고, 그 모습에 토미는 뺨이 당겨오도록 미소를 지었다. 아담은 언제나 그를 미소 짓게 만들었다.





그 후, 아담이 좋아하는 것들 중 하나는 침실의 거울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되어버렸다. 색색의 화장품들이 그의 얼굴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가 좋아하는 것들 중 또 다른 것(물론 TV를 보는 것과 뇌가 녹아나도록 토미를 탐하는 건 제외하고)은 아주 오랫동안 목욕을 하는 것이었다. 그건 지금까지도 알 수 없는 이상한 습관이었다.

아담은 알몸으로 있길 좋아했고, 그 보다 더 좋아하는 유일한 것은 토미와 함께 벌거벗고 있는 것이었지만, 목욕을 할 때면 언제나 그는 욕실문을 걸어 잠갔다.

섹스 후, 처음 토미가 아담에게 함께 샤워할 것을 부탁했을 때에도, 아담이 들어간 욕실로부터 첨벙거리는 물소리에 들어가도 되냐 물었을 때에도, 아담은 항상 너무 부끄럽다는 이유로 그를 거절했다.(부엌 테이블 위에서도, 소파 뒤에서도, 그리고 씨발, 냉장고 위에서까지 섹스를 한 후였다고) 그리고 그건 전혀 토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였다.

아담에 대해 특이한 점이라고 한다면 그건 셀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알 수 없는 것은 그 셀 수 없는 문젯거리에 대해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건 마치 주문에 걸린 기분이었다. 무슨 일이 있건 그를 행복하게 만드는 주문, 그와 함께라면 언제든 세상이 좀 더 밝아 보이는 마법.

하지만, 어느 날 저녁 오랜만에 일찍 집으로 돌아왔을 때, 창문에 기대어 부르는 아담의 노랫소리에 토미는 전혀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소리는 무엇보다 익숙했고, 그 순간 토미의 기억은 Marina del Ray의 밤하늘 아래로 순식간에 돌아가 있었다.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던 아름다운 멜로디에 이끌려 부두의 끝까지 그를 꾀어냈던 그때의 그 소리.

“너! 그거 너였어!”

아담은 깜짝 놀라 훽 고개를 돌렸고, 토미는 다른 이유로 놀라 고개를 흔들었다. “Shit, 진짜 아름다워. 그거.. 그거 어느 나라 말이야?”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그 물음은 마음 속 깊은 곳에 두려움을 되살렸다. 아담이 어디에서 왔건, 그건 아주, 아주 먼 곳이 될 것이란 걸 어렴풋이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아담은 대답하지 않았다. 언제나 표현이 풍부하던 그의 얼굴이 무표정하게 굳어지는 건 다소 낯선 느낌이었다.

“떠나려는 거지?” 토미는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고, 아담은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난.. 네가 여기에 살지 않는다는 거 알아. 하지만 그래도 난.. 날 떠날 거라면, 적어도 작별 인사만큼은 해줬으면 좋겠어.”

“널 위해 여길 택했어.” 진지한 눈빛으로 토미를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그런 내가 왜 널 떠나고 싶어 하겠어?” 토미의 손을 잡아, 그대로 가슴 앞으로 끌어당겨 안았다.

토미는 안도로 미소 지었다. 아담의 말들이 그를 위로했다. 비록 전혀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뭔가 떠오르려 하는 강한 느낌에 부딪혔지만, 이해는 할 수 없었다. 마치 막 잠에서 깨어난 몽롱한 머리로 꿈에서의 일을 떠올려 보려는 것처럼.

“넌.. 정말 비밀이 많아.” 그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담은 그저 미소를 띠우며, 토미의 두 손을 감싸 쥐었다. “어쩌면 하나뿐일지도.” 아담은 작게 속삭이며, 고개를 숙여 그의 입술에 입 맞추었다.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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