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by. gypsy-scribbles







영화에서 보면, 비극적인 장면 뒤엔 언제나 미친듯이 술을 마시거나, 약을 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나온다. 자신을 파괴함으로써의 치유.

그렇기에 토미에겐 이 상황이 우습기만 했다. 빌어먹을 수도사 녀석들보다도 맑은 정신으로 자신이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 아담은 위선자였다. 매주 주말마다 함께 파티를 열때면, 그는 언제나 흥분해 있었고, 그 변명은 항상 클럽 음악이었지만, 결국엔 땀과 섹스, 글리터들로 끝을 장식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그의 삶에 대한 영화의 한 부분에서 튀어나온 것과도 같은 모습으로, 그는 끊임없이 토미를 바라보며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토미가 혹여라도 약에 손이라도 댈까봐서, 화장실에 틀어박혀 밤낮으로 오열이라도 토해 낼까봐서. 그리고 그 곳에서 토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담의 존재는 더 이상 그의 곁에 없었지만, 그의 과잉보호는 한층 심해져 있었다. 토미가 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두 번째 술 병을 기울일 때마다, 수면제를 입가로 가져갈 때마다, 아담은 급히 한 걸음 물러서서는 눈가를 찌푸리며, 고개를 저어댔다. 그는 심지어 음식 하나 하나에까지 신경썼다. 그건 그들이 연인사이였을 때에도 물론 여러 번 논쟁거리가 되었던 소재였긴 했지만. 그리고 지금에와서 토미는 과일들과 야채들이 가득 담긴 식료품 박스를 배달시켜야만 했다. 목적은 하나였다. 아담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한.

"리사한테 그 꼴을 보여주려고? 샤워라도 하는 게 어때," 아담은 지금 말하고 있었다. 소파 위에 널부러진 채 생기마저 잃은 듯한 토미의 바로 옆에 선 채로. 아니, 그는 여전히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사실에 웃음이 나왔다. 그는 공중에 떠다니지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보여주곤 했던 그 어떤 유령같지도 않았다. 가끔씩 잠에서 깨어, 흐릿해진 눈으로 바라본 그의 모습은 마치 정말로 곁에 서 있는 것만 같아서, 토미는 현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 그를 향해 손을 뻗곤 했다. 그리고 남는 건, 쓴 웃음 뿐이었다. "청소도 좀 하고," 부엌 카운터에 잔뜩 쌓아놓은 쓰레기와 그릇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아담은 덧붙였다. "이제 더 이상 걱정하게 하지마. 지금까지면 충분하잖아."

토미는 그저 한 번 어깨를 으쓱했을 뿐,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사실은 TV따위 처음부터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담은 한 숨을 내쉬었고,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는 여전히 예전 그대로였다. 무언가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면 항상 손짓과 함께 이야기를 시작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을 때, 토미는 예전처럼 할 수 없었다. 그의 손을 붙잡을수도, 그의 손가락 마디 마디를 장난스레 어루만지며 그를 진정시킬 수도 없었다.

그 사고 이후, 첫 일주일 동안 아담은 모든 걸 설명하려 했다.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조차 흐르지 않는 절망과 슬픔에 몇 시간이고 멍하니 벽만을 바라보던 토미는 그 날 이후 처음으로 자신이 살아있음을 다시 느꼈다. 그의 모습이 갑자기 보이게 된 그날 밤,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담은 언제나 곁에 있었지만, 그의 존재를 느낄 수는 없었다. 더 이상 손에 그를 느낄 수 없었다. 마치 텅 빈 스크린에 비춰지는 필름 속의 인영과도 같이. 그에게 닿으려 손을 내밀때면, 언제나 허무히도 그의 몸을 지나쳤다. 그의 형상은 그때도 지금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들의 2주년 기념일 그 날 밤 그 모습 그대로. 아담은 언제나 어리석을 정도로 감상적인 구석이 있었으니까. 그는 그 날 밤의 멋드러진 옷을 입고 있었고, 그 날 밤의 눈부셨던 모습 그대로였다. 아름다웠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는 지독히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토미는 할 수 있다면, 아담에게 부탁하고 싶었다. 늦은 주말 아침의 모습으로, 나른한 그의 모습으로 있어주기를. 잠결에 우스꽝스레 헝크러진 머리칼과 눈 밑으로 흐리게 번진 아이라이너의 흔적과.. 수많은 주근깨들이 박혀있던 부드러운 피부.

샤워를 해야만 한다는 걸 토미는 알고 있었지만, 그 대신 옆에 놓여진 기타를 잡아들까 생각했다. 그리고 아담에게 막 말을 꺼내려던 찰나, 현관 쪽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Fuck!" 토미가 외침과 동시에, 아담이 말했다. "일찍 왔네."

토미는 소파 위에서 마지못해 몸을 일으키고, 그의 누나가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었다. 그녀가 엉망으로 어질러진 집 안으로 들어왔을 때, 그는 그녀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일부러 고개를 돌렸다. 그녀에겐 아담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아무도 아담을 볼 수 없었다. 그 첫번째 이유라면 단연 그들의 눈엔, 토미는 이미 미쳐버린 사람이었으니까.

그녀는 천천히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가족과 친구들의 이야기. 그리고 토미는 멍하니 고개만을 끄덕일 뿐이었다. 그의 시선은 아담을 향해 있었다. 아담은 비어있는 벽 앞에 서 있었다. 언젠가 대니얼과 함께 길거리 페스티발에 다녀온 아담이 사가지고 돌아온, 뭔지모를 이상한 이집트 문양이 새겨져 있던 작은 선반을 걸려했던 그 곳에. 장례식 후, 대니얼은 그에게 가지고 있을 것을 말해 왔지만, 토미는 그 벽에 새로운 무언가를 올려놓고 싶지 않았다. 그럴만한 용기도, 마음도 그에겐 남아있지 않았다.  

그 곳에 서 있는 아담은 아름다웠고 다정해 보였다. 그의 입가로 작은 미소가 걸리고, 토미는 지금 당장이라도 그에게 달려가 키스하고 싶었다. 아니, 그저 한 번만 더 그를 안아보고 싶었다.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아담의 강한 팔의 그 느낌을 느껴보고 싶었다. 미치도록, 너무 원하고 원해서 고통스러웠다. 기념일 그 날의 아침을 토미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품에 감싸 안겨 잠에서 깨었을 때,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피부 위로 닿았던 그의 온기. 침대 위로 눌러오던 그의 무게와 숨조차 쉴 수 없었던 그 순간의 감각. 얼굴과 목언저리에 닿았던 그의 숨결과 상냥히 키스해주던 그의 입술을 기억했다. 따뜻했던 그의 큰 두 손과 다정했던 그의 손길을 기억했다. 사랑한다고, 절대로 혼자 두고 떠나지 않겠다고 귓가에 속삭이던 그 목소리까지도.

"토미?" 두번째, 아니 어쩌면 세번째일지도 모른다. 이름을 부르는 그녀의 소리에 토미는 그녀를 향해 억지로 고개를 돌렸다. 듣고 있다라고, 신경쓰고 있다라고 보여질 수 있도록.

"토미.. 너 지금 그가 여기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래서 벽을 쳐다보고 있는거지?"

토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할때면 토미는 언제나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녀는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 그녀를 바라보게 했다. 그녀의 두 눈엔 눈물이 가득 차올라 있었고, 토미는 놀라움으로 입술을 조금 벌렸다.

"우린 정말, 정말로 널 걱정하고 있어. 하지만 엄마는.. 네가 치료를 받으러 다시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라면 더 이상 생활비를 보내줄 수 없다고 하셨어. 우린.. 우린 꼭 널 잃은 기분이야. 마치 네가.. 네가 그날 아담과 함께 차 안에 있었길 원하는 것 같아서.."

토미는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리려 애썼지만, 그녀는 놔주지 않았다. 그녀의 뺨을 타고 눈물들이 떨어져 내렸다. "토미.. 나도 알아, 아담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이었는지, 네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는지, 네가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하지만.. 아담은 네가 이러고 있는 걸 원치 않을 거야. 이제 그만 놔주길 원할거야."

"No," 토미는 단호히 말했다. 아담에 대해 꼭 그녀가 다 알고 있다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화가 났다. "아담은 알고 있어, 내가 뭘 원하는지. 난 그가 필요해. 내게 약속했어-"

"하지만 토미, 제발, 너도 알고 있잖아. 그는 이제.. 이제 더 이상 이 곳에 없어. 제발 그냥.. 그냥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셔봐. 내 손을 잡고 날 느껴봐. 현실이 무엇인지 느껴봐. 그리고 다시 눈을 뜨면, 알게 될거야. 그는 더 이상 이 곳에 없어. 여기엔 아무도 없다는 걸 알게 될거야."

토미는 두 눈을 감았다. 그녀의 간절한 모습을 지우기 위해, 눈물이 타고흐르는 얼굴을 지우기 위해.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아담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를 달래주지도, 그녀의 말이 틀렸다 말해주지도 않았다. 그 어떤 말도, 전혀. 그리고 그 잠깐 순간, 토미는 그에게 화가 났다.

하지만 어쩌면.. 어쩌면 이건 시험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그 곳엔 정말 텅 빈 벽만이 있을 뿐이라고 믿게 만드려는 속임수. 사실은 정말로 그가 미쳐버린 것 뿐이라고 믿게 만드려는, 아담은 가버렸고, 그를 이렇게 홀로 남겨둔 채 떠나버렸다고 믿게 만드려는 속임수. 어쩌면 아담은 토미가 여전히 그를 믿고 있는지에 대한 확증이 필요한 것인지도 몰랐다. 절대로 그를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토미는 짧게 고개를 내저었고, 입술은 굳은 선을 그렸다. "No, 눈 뜰 필요도 없어. 그가 여기 있다는 걸 난 알아. 내게 약속했으니까. 아담이 내게 약속했으니까."

그녀는 지쳐보였고, 그저 정말 슬퍼보였다. 하지만 토미는 거의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로부터 아담을 향해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이미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언제나 그를 안심시켜주곤 했던 아담의 그 미소가 어떤 것인지를.

그리고 조금 후, 토미는 살며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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