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lt your cold cold heart

by. radiogaga33







아담에게 정(情)이란 것은 살아가는 데 가장 가치없는 것들 중 하나였다. 그럴 여유는 잃은지 오래였고 정을 건낼 단 1초의 시간도 그에겐 아까운 것이었다. 이 콘크리트 정글 안에서 어슬렁거린지 이미 3년, 잔뜩 화가 난 가게 주인을 피하는 방법, 동물 보호소에서 나온 녀석들의 위협에 대항하는 방법 등등 모두 그에겐 이제 시시한 것들이었다. 배가 고프면 가게에서 음식을 훔쳐 고픈 배를 채우면 그만이었고, 음식을 구할 수 없는 날이라면 굶으면 그만이었다. 그의 심장은 그 어느 누구도 결코 녹일 수 없는 단단한 얼음처럼 차갑게 식어있었다. 그는 새까만 털의 커다란 블랙 래브라도의 모습으로 멋지게 뻗은 기다란 다리와 날렵한 몸통이 그를 눈에 띄게 만들었다. 자유로운 영혼, 이것이 그를 일컫는 말이었다. 절대 같은 곳, 같은 범위 내에서 2주 이상 오래 머물지 않는 것, 이것이 그의 철칙이었다. 그 어느 누구도 필요없었고, 그 어느 누구도 그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신경쓸 일이라곤 전혀 없었다. 내 것이라고 불릴만한 그 어떤 것도 그의 손안엔 없었고, 있는 것이라곤 이 길바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법칙이 전부였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 자기 자신 뿐.

이런 그이기에 지금 시야에 들어온 꼬마를 보고서도 그냥 지나칠 수 있었다. 하지만 길 건너로 다시 한번 시선에 닿은 그 꼬마의 모습은 지금까지 길에서 만난 그런 녀석들과는 달랐다. 비쩍 마른 작은 몸집에 황금색 털의 골든 리트리버 녀석. 코너에 위치한 식료품 가게 스탠드를 멍청히 바라보고 앉아있는 모습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분명 이 길에 들어온지 얼마되지 않은 녀석일 것이리라. 꼬마의 털은 윤기있는 질 좋은 모습을 하고 있었고, 발톱은 예쁘게 다듬어져 있었다. 그 모습만으로도 불쌍하지만 저 녀석이 오늘 저녁거릴 구할 방법은 이미 단 한가지도 없을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철칙에 따라 꼬마따윈 무시한 채로 길을 걸어야 했다. 아무런 득도 되지 않는 이런 일에 얽혀봤자 피로만 쌓일 것이다. 그 어떤 것도 그에겐 무의미할 뿐이니까. 멍청한 꼬마녀석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마치 덫에라도 걸린 듯한 굼뜬 움직임에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저건 덫이라기 보다도 어디 한 곳 부러진 녀석처럼 보였다. 아담의 머리속엔 '상관없는 일'이라는 말이 떠돌고 있었지만 몸은 머리의 말을 무시한 채 이미 길을 가로질러 건너가고 있었다. 저 꼬마에겐 뭔가가 있었다. 아담이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의 차갑게 식은 심장을 끌어 당기는 강력한 쇠사슬과도 같은 무언가가 꼬마에게로 그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이봐, 꼬마. 대체 뭘 할 작정인거냐." 꼬마의 곁에 다가가 아담이 큰 소리로 짖었다.

"아... 저기..." 잔뜩 긴장한 듯 문장을 이루지 못한 말들이 되돌아왔다.

"걱정마. 헤칠 생각은 없으니까. 잘 들어, 하려면 한 번에 제대로 해야 되는거다."

아담은 구석으로 꼬마를 끌고 들어와 정확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어쩌면 굳이 지금 아담이 나서지 않아도 어쨋든 이 콘크리트 정글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언젠간 스스로 터득했을지도 모른다. 아담이 가게 앞에서 주인의 관심을 사는 동안, 꼬마는 스탠드에서 빵 한 덩어리를 입에 물고 아담이 가르쳐준대로 잽싸게 좁은 골목으로 달려 들어갔다. 1분 뒤, 그 곳에서 아담과 만날 수 있었다.

"우와, 우와! 진짜 멋져요! 당신이랑 나, 진짜 환상적인 콤비가 될 것 같지 않아요?!"

"이봐. 진정해. 팀같은 건 없다, 꼬마. 성가신 건 질색이니까."

아담의 말에 흥분으로 좌우로 힘차게 흔들리던 꼬마의 꼬리가 순식간에 축 쳐졌다. "아.. 그냥 한번 해 본 말이었어요.. well, 저기.. 고마워요.. 어.. 이름 물어봐도 되요?"

"아담."

"고마워요, 아담. 난 토미예요."

"아아." 아담은 최대한 꼬마가 기분나빠 하지 않도록 대답해 주려 애썼다. 어째서 꼬마의 기분 따위에 신경을 써야 하는 건지, 꼬마의 꼬리가 축 처진 모습에 왜 자신의 기분이 불쾌해야 되는 것인지 아담은 이해할 수 없었다. 저녁까지 마련해 주었다. 그걸로 충분한 것 아닌가? 어쨋든 자원봉사 놀이는 여기서 끝이었다.

"잘 들어, 꼬마. 여기서 믿을만 한 건 네 자신뿐이야. 몸 조심해라."

"잠깐만요! 이대로 가는 거예요?"

"가봐야 할 곳이 있어."

"이거 안먹어도 되요?" 조그만 콧등으로 발 밑에 있는 빵덩어리를 가리켰다.

"난 상관하지 말고 먹어."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아담은 그 곳에 그대로 선 채 꼬마가 열심히 빵을 뜯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꼴이 꽤 오랜 시간동안 굶주려 있었던 것 같았다. 이제까지 수많은 녀석들을 만나 봤지만 지금처럼 빠른 속도로 음식을 먹어치우는 녀석은 한번도 보지 못했었다. 어쩐지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퍼지는 것이 느껴졌다. 젠장, 안된다. 이쯤에서 그만둬야만 한다. 있어선 안되는 일이다. 이거야말로 자진해서 귀찮은 일에 휘말려 들어가는 꼴이었다. 감정에 치우치는 일은 허튼 짓일 뿐. 떠나야 할 타이밍이라면 지금이었다.

"운이 함께 하길 빈다, 꼬마." 말을 끝마치자 마자 아담은 시선하나 주지 않은채 그대로 뒤돌아 걸어 나갔다. 등 뒤에서 아담의 이름을 부르짖는 꼬마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아담에겐 유감스럽지만, 그 꼬마는, 글쎄, 보기와는 달리 다소 집착이 강한 듯 했다. 전혀 포기할 생각이 없는 듯 아담이 어깨넘어로 시선을 줄 때마다 꼬마는 언제나 그 곳에 있었다.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지나치다 생각할 정도로 꼬마는 뒤를 쫓았고 크고 사랑스러운, 부드러운 그 갈색의 두 눈동자는 언제나 아담에게로 향해 있었다. 리버사이드 공원에서부터 30블럭 떨어져 있는 곳까지도 꼬마는 열심히 아담을 따라왔다. 그리고 마침내 96번가에 도착했다. 아담은 금요일 밤이면 언제나 이곳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쉬고는 했다. 아담이 친구들과 어울리는 동안 꼬마는 뒤에서 가만히 아담을 응시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네 동행이냐." 몬테가 물었다.

아담은 눈 앞의 저먼 셰퍼드를 향해 웃어보이곤 귀찮은 듯 대답했다. "무시해. 모르는 녀석이니까."

"그래? 내 눈엔 최소한 모르는 건 아닌것 같은데. 너한테 반한 것 같다고 느끼는 건 내 착각인가?"

"내 일에 참견하지마."

몬테가 큰소리로 웃었다. "이런, 성질머리하고는. 드디어 너의 그 얼어버린 심장을 녹여줄 녀석이 나타났군."

"그럴 일은 절대 없어." 조금 당황한 듯 아담이 재빨리 대답했다. 몬테의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것을 그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몇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담은 단한번도 토미에게로 시선을 주지 않았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완전히 무시했다. 몬테와 LP, 캠 모두 각자의 밤을 보내기 위해 자리를 떠나고 아담 또한 그의 구역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떼자, 꼬마 또한 다시금 아담을 쫓아오기 시작했다.

"이봐, 꼬마.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성가신 건 질색이라고. 이 이상 내 앞에서 알짱거리지 말아줬음 하는데."

"갈 곳이 없어요.."

아담이 걸음을 멈추고 꼬마를 향해 몸을 돌려 정면에서 바라봐왔다. 그들 옆으로 강물이 흘러 내려가는 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강을 거슬러 지금 뉴저지의 거리는 온통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트리들로 어두운 밤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풍경조차 지금의 아담에겐 차갑게 얼어버린,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일 뿐이었다. 마치 저 어두운 강물 깊은 곳으로 홀로 빨려 들어가는 것과도 같이.

"어떻게 왔지?" 아담이 꼬마의 빛나는 털가죽과 완벽하게 다듬거진 발톱을 가리켰다. "여긴 너같은 녀석들이 있을 곳이 아니야.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공원 한복판에서 길이라도 잃은건가. 지도를 찾아. 귀찮게 졸졸 따라다니지 말고."

"그런 거 아니예요." 토미가 재빨리 말했다.

"아니라고?"

"길을 잃은 게 아니예요. 내 주인이.. 그녀가.. 그녀가 날 버렸어요."

잘하는 짓이다. 수많은 암수컷으로도 모자라서 이제 꼬마까지 울리는구나. 하지만 버렸다고? 어째서? 그 여자의 심장은 분명 돌로 만들어져 있을 것이다. 그래, 아담 자신과 마찬가지로. 너라고 다를것 같아? 전혀 도움이라곤 되지 않는 목소리가 머리속에서 울려댔다.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여기서 그 이유를 묻는다면 - 이미 그의 머리속은 그 이유를 알고자 하는 목소리로 가득차 있었다. - 아마도 그는 지금까지 다짐해왔던 모든 걸 내던져야 할지도 모른다. "어째서 버린건데?"

"그녀에겐 6개월동안 만난 남자가 있었어요. 근데 그는 개를 싫어한댔어요. 그리고 바로 일주일 전에, 그가 그녀에게 같이 살자고 제안했죠. 당연히 난 초대받지 못했구요. 그녀도 처음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려 했지만 아무도 날 받아주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날 박스에 넣어 공원에 내버려 뒀던 거죠. 그리고 그녀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게 이틀전의 일이예요. 날.. 날 사랑한다고 생각했었는데.." 토미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며 허공으로 부서져 나왔다. "날 사랑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 난 이렇게 혼자인걸요."

빌어먹을. 감정따윈 죽여야 한다. 토미는 필요없다. 복잡한 것따윈 질색이다. 이것이 토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계속해서 아담 자신에게 되뇌었던 말들이었다. 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심장을 움켜쥐는 듯한 강한 감정들은 그에게 다른 말들을 속삭이고 있었다. 이번만큼은 거부할 수 없었다.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이 강을 거슬러 올라, 뉴저지를 지나, 눈에 익숙한 새하얀 집의 푸른색 문을 열고, 그녀는 지금쯤이면 침대에, 그 남자 옆에 누워있을 것이다. 개 알레르기가 있었던 그 남자 옆에. 3년전, 그녀는 아담과 2.1캐럿짜리 약혼 반지를 사이에 두고선 선택을 해야만했다. 그리고 그녀는 반지를 선택했었다.

"더이상은 아니야."

토미는 가냘파 보이는 앞발을 들어 눈물을 닦아냈다. "네?"

"더이상은 혼자가 아니라고. 따라와."

"하지만... 하지만 성가시다고.."

아담이 웃어보였다. "모든 건 변하는 법이잖아? 가끔씩은 뭐 조수가 필요할지도 모르고."

"정말요?" 갑작스런 아담의 말에 확신이 서지 않는 듯 토미가 다시 한 번 물어봐왔다.

"그래. 가자고, 꼬마. 집으로."

이 감정의 대가로 꼬마의 저 미소를 볼 수 있는 것이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엔 잠시간의 조용한 침묵이 흘렀고, 어느새 둘은 20블록 떨어진 아담의 보금자리에 도착해 있었다. 일주일 째 머물고 있었던 곳으로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놀이터의 가장자리였다. 부서진 철조망을 입으로 물어 토미가 들어올 수 있도록 옆으로 치워주었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자 박스들을 늘어놓은 그의 보금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담은 평평하게 깔린 하드보드 박스를 하나더 물어와 그의 자리 옆에 내려 놓았다. 그 위에 아담이 엎드리자 토미도 그의 옆에 몸을 말아 누웠다.

토미는 한 동안 말없이 조용히 누워있었다. 그 모습에 아담은 토미가 잠든 것이라 생각했고 눈을 감으려는 순간, 토미가 갑자기 몸을 움직였다. 온기를 원하는 어린아이처럼 아담쪽으로 몸을 한껏 붙힌 채 품을 파고들었다.  

"아담?"

"아?"

"정말 고마워요. 당신을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예요."

Yeah, 아담은 여지까지 고집해오던 모든 것들이 단번에 무너져 내리는 상황에 다소 자기환멸을 담은 듯한 미소를 띄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그렇게도 억눌러 왔던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하지만 이제는, 더이상 상관없었다.

"나야말로, 토미." 조금 더 깊이 토미의 작은 몸을 품으로 끌어당겨 안으며 아담이 대답했다. "나야말로."

그날 밤, 3년 동안의 그 어느 밤 보다도 아담은 깊게 잠들 수 있었다. 길가에서 만난 그 꼬마의 미소가 의심으로 가득차 있던 마음을 지우고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아담의 심장을 녹였기에.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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