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the darkness light 1

by. my-silent-hour







어깨에서 베이스를 벗어내고 무릎을 꿇고선 케이스에 악기를 집어넣는 것을 아담은 지켜보고 있었다. 찰칵- 케이스의 금속 고리가 닫히는 소리와 함께 위를 올려다보는 그의 얼굴이 흘러 떨어지는 블론드의 머리칼 사이로 살짝 내비쳤다. 그의 두 눈은 너무나 따뜻하고, 다정하고 아름다웠다.

“감사합니다,” 자그마한 몸집과도 같이 안쓰러울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그는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것이 아담이 해 줄 수 있는 대답의 전부였다. 옆으로 같은 팀 내의 멤버가 그를 향해 다시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건네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문이 닫히자마자, 아담은 한 숨을 내쉬었다. “Well, 저 녀석으로 해.”

몬테는 웃음 터뜨렸다. 그 소리는 마치 지금까지 죽 참고 있었던 것처럼 통쾌하고, ‘내 그럴 줄 알았다,’ 라는 의미를 숨기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생각해보지.”

“괜찮았잖아.”

몬테는 들고 있는 서류를 훽 들춰보았다. “오늘만도 저 녀석보다 나은 놈이 넷은 돼.”

“알아, 그래도 그 녀석들은 아냐,” 아담이 따지고 들었다. “저 꼬마로 해.”

“대체 뭐냐?” 몬테가 물었다. 슬쩍 올라가는 그의 입 꼬리를 냅다 후려쳐주고 싶은 기분에 아담은 손바닥이 근질거리는 걸 느꼈다. “예쁜 얼굴? 작은 엉덩이?”

“씨발, 벨벳 골드마인을 인용했다고, 몬테.” 아담이 짧게 내뱉었다. 몬테의 손에 있던 서류들을 낚아채서는 그 위의 이름들을 하나씩 되짚었다. “말해봐, 제이미, 랍, 이쓴, 아님.. 이 자식은 뭐라고 지껄였더라? 뭐? 자길 사탄의 자식이라고 했던가? 어쨌든 설마 이런 녀석들이 내 밴드에 어울린다고 하진 않겠지?”

몬테는 다시 서류를 그의 손에서 뺏어 와서는 그들의 이름 위에 엑스를 그어댔다. 과감히 삭제. “그래, 그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건 내 아랫도리가 아니라 뇌가 결정한 거라고.”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아담은 가볍게 농을 날렸고, 그의 뒤로 앉아 있던 남자들은 키득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몬테 또한 하- 허무한 웃음을 지었다. “내일 전화해, 오늘 말고. 조금쯤은 긴장을 타줘야 우리도 재미를 보지. 그리고 나랑 일하려면 우선 그 빌어먹을 스타일부터 바꿔야 된다고 확실하게 얘기해놔. 아이라인은 뭐 봐줄만 했지만, 축 처진 걸레 같은 청바지라니? 어이가 없어서. 스키니 아니면 옷장이건 뭐건 죄다 갖다 버리라고 해.” 스윽 아담의 입 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이게 내 아랫도리의 지시사항.”

몬테는 흡사 조롱하듯 끄덕끄덕 그를 향해 인사를 건넨 후,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물건들을 챙겼다. 아담은 손을 흔들어 대답했고, 그들이 전부 나간 작은 스튜디오 안의 고요함 속에서 아담은 감상에 잠겼다.

토미 조 래틀리프. 키: 완벽. 몸무게: 그 정도면. 얼굴: 귀여웠지. 눈: 훌륭했고. 엉덩이: ...

아담은 저의 생각에 웃음이 터졌다. 최고였지, 그럼.

“왜 그런 거야?”

아담은 느닷없이 육체가 아닌 영혼을 통해 들어오는 목소리에 움찔 몸을 떨었다. 너무나 오랜만이었던 지라 그 느낌을 잊고 있었던 탓이었다. 허공중에서 폭발하듯 터지는 금색의 빛을 향해 그저 관심 없다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이자, 그 빛은 곧 서서히 어두워지더니 단단한 형체를 만들어냈다.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그의 옆으로 있는 의자를 빼어 앉는 오랜 친구에게서 아담은 시선을 돌렸다. 그의 등 뒤로 길고 잘 뻗은 날개가 요동치고 있었다. 그의 하얀 구두가 테이블 위로 거만하게 올라왔다.

“오랜만이네.”

“물음에 대답이나 해.”

아담은 스윽 눈을 흘겼다. “알면서 뭘 물어.” 그 어투는 마치 힐난하듯 했지만, 곧 그의 입가로 미소가 지어졌다. “훌륭했지, 안 그래?”

“확실히 인간으로써 나쁘진 않았지.” 낯선 방문객의 날개가 그 문장에 반박하듯 가늘게 퍼덕였다. “하지만, 그런 인간들이라면 수백 수천이고 깔렸어. 어째서 그 녀석인 거지, 아자젤? 오 이런, 지금 넌 다른 이름을 쓰고 있었지? 뭐라더라.. 아, 그래, 아담. 아주 잘 어울려, 안 그래? 하찮은 인간이라는 존재로 널 낮추기엔 최적이 이름이지. 인류 최초의 이름이라. 모든 걸 망쳐버린 녀석의 것 말야.”

“너도 그 아담에게 눈이 멀었었지 않았나?” 눈썹을 구기며 아담이 말했다.

“지금도야.” 낯선 이는 말했고, 그의 진심어린 시선에 아담은 조금 당황스러움을 내비칠 수밖에 없었다. “딴 소리는 됐고. 어째서 토미야?”

“설명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냐. 그 녀석을 봤을 때, 글쎄. 그저 모든 걸 알고 싶어졌달까. 젠장, 바보 같은 말이 따로 없네.”

“알면 다행이다. 멍청한데다가 조급해. 가장 큰 인류의 두 가지 죄목이지. 너, 하, 너 설마 진짜 인간이 되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아담은 그를 무시해 버렸다. “그 녀석, 가져야겠어.”

“넌 가질 수 없어.”

아담은 번쩍 고개를 들었고, 그의 두 눈은 가늘어졌다. “아니, 우리엘. 내가 가지겠어.”

“미안하지만 그렇겐 안 돼. 잘 들어, 토미는 내 소유야.”

심장이 덜컥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것만 같았다. “그 녀석의 수호자가 너라고?”

우리엘은 시선을 돌렸다. “시침떼지마. 네가 몰랐을 리 없잖아?” 그는 코웃음을 쳤다. “내가 봤을 땐, 이건 지금 네가 날 질투 나게 하려는 의도로 밖에 안보이거든. 그리고 지금 내 이름은 브래드야. 25세기 동안 써왔으니까, 너도 익숙해지도록 해.”

“브래드,” 아담은 그 이름을 되뇌며 얼굴을 구겼다. “작명 센스하곤.”

“닥쳐, 아담.”

“네가 진짜 수호자라고?” 브래드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와 함께 희망이 급속도로 멀어지는 것을 아담은 느꼈다. 우리엘 -브래드든 뭐든- 은 언제나 그의 역할에 있어선 최고였다. 기가 찰 정도로. 그렇기에 지금껏 엘로힘, 하늘의 창조주께서는 그를 대천사로의 길에 들이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귀한 그의 재능이 대천사로서 썩는 것은 아무리 그라도 아까우실 테니까.

그 뜻은 곧, 아담이 무슨 짓을 하든 토미의 혼을 구천지옥으로 데려갈 방법이란 없을 것이란 것을 의미했다.

아담은 숨을 삼키고, 후우- 길게 뱉어냈다. 인간의 형상이건 아니건, 아자젤에게 포기란 것은 없었다. “지금 내가 인간 세계에서 어떤 존재인지 알아? 굳이 힘들이지 않아도, 그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 줄 수 있지.”

“뭐 땜에 이러는 거야? 네가 아무리 그를 가진다 한들, 그 녀석은 널 두고두고 미워하게 될 뿐이야. 그를 속여 천국을 버리게 하는 게 네 역할일 테니까. 지금 네 침대에 묶어놓은 노예 자식들만으론 아직 부족한가 보지?” 브래드는 웃음을 흘렸지만, 곧 진지해졌다. “크리스 일은 미안하게 됐어, 어쨌든. 근데 그건 내 탓이 아냐. 카시엘이 수호자였거든. 너 꽤나 준비를 많이 했던데. 그 거지같은 노래 대회였나 뭔가에 까지 나가줬다면서?”

아담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낮게 으르렁거렸을 뿐. “카시엘, 실력이 늘었더라고. 지난 10년간 그 녀석에게서 빼앗은 영혼이 40명분으로 끝난 것 보면.”

“나한테서 한 번인가 두 번인가 조언 받아 갔었거든.” 브래드는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그래 뭐, 토미가 완벽히 네 타입이긴 해.”

아담은 저도 모르게 브래드의 형상을 눈으로 쫓았다. 브래드를 저의 연인으로 칭했던 세기 이후, 지구가 태양을 만 번쯤 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기억들은 전혀 사그라지지 않았다. 우리엘은 아담이 지금까지 봐왔던 그 어떤 천사들보다도 아름다웠고, 심지어는 루시퍼보다도 수려했다. 물론, 입 밖으로 내본 적은 없었지만. 그리고 토미는... well, 그는 인간치고는 그 아름다움에 가장 가까웠다. 그 단순한 생각만으로 아담의 어리석은 육체는 서서히 흥분을 나타내고 있었다.

“난 포기하지 않아. 죽음 후에 천국에서 끌어내서라도 내 것으로 하겠어.”

브래드는 다시 의자 깊숙이 몸을 앉혔다. 그의 날개 위로 내비치는 빛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부풀어 올라, 아담의 모든 말들을 흡수시켰다. 생각에 잠긴 듯한 몇 세기 전 연인의 지적인 두 눈을 아담은 바라보았다.

“좋아, 줄게.”

“뭐?”

“주겠다고.” 다시 한 번 되뇌는 브래드의 목소리는 나른하면서도 확고했다. 마치 어린 아이에게 설명해주듯. “널 내게 준다면.”

아담은 모든 동작을 멈췄다. “날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너 스스로 타락하는 것뿐이야. 엘로힘이 날 다시 천국으로 들이지 않는 이상. 뭣보다 네 소유의 영혼을 그렇게 내게 줘버린 후에도 과연 그분이 널 원하실까.”

“그분께선 네가 돌아오길 원하셔, 아담. 어떤 희생을 치루든. 넌 최고의 파천사였으니까. 하찮은 인간 한 명의 영혼 따위 죽음의 천사인 네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언제든 내어주실 거야.”

“아니.” 아담은 고개를 내저었다. “날 원한다면 네가 타락해. 지옥으로 와.”

“웃기지마.” 브래드는 역겨움을 토하듯 내뱉었다. “루시퍼와 함께 하기엔 난 그들의 삶을 너무 존경하거든.”

아담은 빈껍데기뿐인 웃음을 터뜨렸다. “수호자 네 녀석들은 정말이지 재밌어. 하찮다고 여길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사랑스럽다고? 왜 너무 존경해서 손에 쥐고 데려가기가 겁이 나던가? 지금 당장이라도 넌 토미를 가질 수 있어. 네가 원한다면 말야. 네 모습을 그 녀석 앞에 내보이기만 하면 끝이지.”

“그래, 그거면 돼. 아주 쉬워?” 악마와 같은 가는 미소가 브래드의 입가에 걸리고, 아담은 인간의 형상을 유지하려 애써야만 했다. 등 뒤가 아릴만큼 날개의 퍼덕임이 느껴지고, 내보내달라는 외침이 들리는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브래드의 예쁘장한 목을 갈라버리겠다는 듯이. 물론, 브래드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의 눈썹이 장난스레 꿈틀거렸다. “하지만 하지 않아. 우린 타천사인 네 녀석들처럼 인간을 먹이로 삼지 않거든. 이 녀석을 갖고 싶어? 그럼 내 것이 돼. 그 한 가지 방법 밖에 없어. 넌 날 이길 수 없어, 아담. 너의 수많은 유혹들로도 내 날개의 보호를 깰 순 없을 테니까. 그러니까, 나랑 거래를 해.”

아담은 욕을 내뱉었다. 브래드의 말들은 모두 사실이었다. 최약의 수호자라 할지라도 타천사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보다 그들의 힘은 훨씬 강력했다. 특히 그 인간이란 자가 종교적인 믿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는 토미의 팔에 있던 문신을 기억했다. 공포 영화의 주역들과 악마들. 그 꼬마가 인간 외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믿고 있다는 건 뻔했다. 젠장할.

“그래서? 그 녀석을 내게 주는 대신, 난 너의 소유가 되어 개처럼 영원히 엘로힘의 뒷꽁무니나 졸졸 쫓-”

“후회할 소리는 하지마, 아담. 내 연인이라는 게 그렇게 고역의 일은 아니었잖아? 나에 대한 너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알아. 그게 아니었다면 300년이나 함께하진 못했을 테니까.” 그에게 경고를 하면서도 브래드의 두 눈은 어쩐지 슬퍼 보였다.

아담은 한 숨을 내쉬었다. “알아. 하지만... 누구 앞에서 머릴 조아리는 거? 지금은 그럴 필요조차 없어. 필요한 건 언제든 얻을 수 있다고. 게다가 내가 지옥을 떠났을 때의 루시퍼의 그 격노는 네가 감당할건가? 토미를 지옥으로 데려간다 한들, 죽음 후에 난 천국에 있게 될 텐데 함께가 무슨 소용이지? 내가 봤을 때, 이 거래로 내가 얻는 것은 없어. So, 미안하지만 사양하지. 내 방식대로 하겠어.”

브래드의 형상은 바뀌지 않은 채 그대로였지만, 그의 빛은 서서히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때문에 아담은 저가 옳은 판단을 내렸음을 알아차렸다.

한 동안의 적막 이후, 브래드는 다시 입을 열었다. “좋아. 시간을 줄게.”

“시간?”

브래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토미와만의 시간, 난 개입하지 않겠어. 단, 기한은 해가 바뀔 때까지. 그의 영혼을 네가 가질 수 있다면, 좋아. 가져. 지옥으로 끌고 가라고. 하지만 그렇지 못했을 땐, 넌 내가 갖겠어. 신의 소유로서.”

브래드 없이 두 달이라고? 그건 아기에게서 사탕을 빼앗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쉬워도 너무 쉽다는 거지.

“조건은?”

브래드는 아담을 끌어당겼고, 그들의 얼굴은 서로 닿을 만치 가까워졌다. 그들의 몸을 커다란 날개가 감싸자, 아담은 그 순간 그의 영혼을 잠재울 만큼 강한 위안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내 소유야, 아담. 무턱대고 지옥으로 끌려가게 두지만은 않아. 그의 영혼을 가지고 싶다면, 정정당당히 가져. 네 계교로 장난 걸 생각하지 마. 거래도 안돼. 그 스스로 선택해야만 해.”

“날 사랑하게 만들라?”

브래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혼을 네게 맡길 만큼 널 사랑해야 해. 신과 함께 하는 것 보다, 지옥에서의 영원이 더 가치 있다는 걸 느낄 만큼 널 사랑해야할 거야.”

아담은 전율이 이는 걸 느꼈다. 새로운 해로의 전환은 고작 두 달을 남겨두고 있었다. 두 달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영원이라는 시간을 포기하라 누군가를 설득시킬 시간으로써는. 하지만 토미였다. 아름다운 인간 소년. 크리스의 이름조차 잊혀 지게 만든 그 소년.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게 해 달라 루시퍼에게 구걸이라도 해보고 싶게 만든 그 소년.

“거래 성립이다, 우리엘.” 그는 손을 뻗어 브래드의 턱을 감싼 후, 얼굴을 끌어당겨, 거래의 의미로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남겼다. “이 내기에서 토미의 영혼을 잃었을 때, 엘로힘이 얼마나 노여워하실까.”

브래드의 입술 끝이 말려 올라갔다. “세라핌의 성가에 네 목소리가 더해진다면, 그분께선 더 없이 기뻐하시겠지.”

“그를 위해 노래하겠단 말은 한 마디도 꺼낸 적 없을 텐데.” 미소를 띤 그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건조했다. “하, 이제 알겠군. 네가 여기 온 건 토미 때문이 아니었어.”

“전혀. 엘로힘께서는 널 데려오기 위해서라면 어떤 방법도 허락하셨어. 물론, 이런 기회가 올 줄은 예상도 못하고 있었지만.”

“너에게 내가 어떤 존재였는지 잊은 건 아니겠지, 우리엘?” 아담이 무섭도록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고작 하찮은 인간 정도가 날 거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브래드의 표정은 비웃음으로 가득했지만, 그에 대한 두려움의 공포가 밀려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꿋꿋이 들어내지 않으려 애썼다. “내 이름을 외치는 너의 목소리는 황홀할거야. 모든 천국이 그 소릴 듣게 될 테니까.”

그리고 브래드는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자리엔 금색의 빛 가루들이 흩날렸다. 아담은 의자에 늘어지듯 기대어 등받이 뒤로 고개를 젖혔다.

“Jesus Christ, 난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그는 독백처럼 저 혼자 중얼거렸다. 비록 반 정도는 그 주의 아들 되신 분의 대답을 기대했었지만. 낙담한 채, 아담은 자리에서 일어서 쭈욱 기지개를 켰다. 그와 동시에 챠콜의 흑빛으로 빛나는 커다란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그는 방금 전 수호자와 거래를 해버렸다. 루시퍼, 장담하건데, 그의 귀엔 이미 들어갔을 것이다. 지옥으로 돌아가, 그 노랫가락에 장단을 맞추는 일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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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젤. 아자젤, 아자젤, 아자젤.” 커다란 책상 뒤에 앉은 루시퍼는 공연히 히죽거리고 있었다. “널 어쩌면 좋을까.”

루시퍼는 화가 난 것 같아 보이진 않았지만, 그는 지옥 최고의 책략가였다. 아담은 앞으로 한걸음 내딛어, 루시퍼가 건넨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사무실은 언제나 바뀌었다. 그의 기분에 따라. 오늘의 그는, 그에 대한 신화에 흥미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책상은 인간의 두개골들로 쌓아올린 더미 위에 유리판을 올린 형상을 하고 있었고, 그 뒤로 놓인 커다란 벽엔 역시 두개골로 만들어진 벽로가 있었다. 그리고 몇 개의 트리톤(반인반어의 해신)들이 마치 장식물처럼 벽에 매달려 있었다. 사천의 지옥 깊숙이 자리한 타천사의 사령부에 있었을 적, 그 곳은 마치 불교의 선과 같았었다. 고요한 분수와 분재들이 온 방 안에 있었더랬다.

“장식이 맘에 드네.”

루시퍼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아담과 고작 며칠 차이의 형일 뿐이었지만, 아담이 생각하기에, 외모로는 그가 훨씬 더 어려보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얼굴엔 윤기가 흐르고, 흠 하나 없는 부드러운 크림색의 피부, 어깨 위에서 흔들리는 푸른빛이 돌 정도의 새까만 머리카락, 그리고 그의 눈동자는 한 밤 중의 하늘보다도 짙었다. 아담은 물론, 루시퍼의 소름끼치는 실제의 모습을 알고 있었다. 천사라면 모두들 가지고 있는 내면의 모습. 타락의 날 이후로, 그는 그 형상인 채, 지옥의 전면을 다스렸었다. 혼돈과 무질서가 그의 권력 아래에서 깔끔하게 재조직되기까지. 그 광경의 목격자로써 다시 자처하고픈 생각은 일절 없었다. 그 때에 비하면 이 모습은 고맙기까지 했다.

루시퍼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타들어가는 장작을 향해 돌아섰다. 그의 뒷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우아했다. “수호자와의 내기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아담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처벌이라면 달게 받겠어, 루시퍼. 하지만 그 영혼, 내 것으로 할 가치가 있을 거야.”

“이건 너와 그 구질한 연인 사이의 문제로 끝날 게 아니야, 아자젤. 엘로힘이 날 건드리려 하고 있다고.” 루시퍼는 돌아섰다. 그건 마치 그의 뒤로 수천 개의 찢어지는 불기둥이 솟아날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넌 내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신뢰하는 동료이자, 지금은 내 최고의 파천사야. 온 도시를 역병으로 쓸어버릴 수도, 자연의 재앙으로 순식간에 없애 버릴 수도 있는 천사는 너 뿐이니까. 백만의 삶이 너의 손길 한 번에 사라지지. 넌 정말이지 탐나는 녀석이야. 만약 그가 널 원한다면, 그는 분명 내게 손을 뻗을 거다.”

루시퍼는 자리에 앉아, 책상에 기대었다. 그의 검은 두 눈이 향하는 시선은 아담을 뚫어버리기라도 할 것 같았다. 아담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려 안간 힘을 써야만 했다. “전쟁은 없을 거야, 네가 말하고자 하는 게 그거라면.”

“물론, 없겠지. 이 내기에서 넌 이길 테니까, 그렇지?” 루시퍼는 고개를 기울였다. “평생 우리엘 녀석의 장난감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야. 뭣보다 그 때의 내 반응을 보고 싶진 않을 거야. 그러니까, 이겨.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와주지.”

아담은 빠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나 혼자 처리해야만 해. 내 힘도 써선 안 되고.”

루시퍼는 의자 등받이 깊숙이 기대어, 싫증이 가득한 눈빛으로 아담을 응시했다. “거기까진 못 들었는데. 흐음...”

“내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루시퍼의 의심스런 어투에 아담은 조금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음? 그럴 리가. 그 소년이라면 쭈욱 지켜보고 있었지. 덜 떨어진 녀석치곤 외모는 그럴 듯해서 말야.” 루시퍼는 한 숨을 내쉬었다. “네 힘을 쓸 수 있다면 훨씬 쉬울 테지만, 뭐 힘들게 얻은 것일수록 결과는 가치롭다고들 하니까. 그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일거라 믿겠어. 아담? 이게 지금 네가 지상에서 쓰고 있는 이름이라지?”

아담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가치는 충분할거야. 너도 그 녀석의 영혼을 봤으면 알 거 아냐? 아름다웠다고.”

“확실히.” 루시퍼는 의자에서 일어서, 책상을 둘러 걸어와 아담의 뒤에 섰다. 그의 강한 손끝이 턱에 닿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너 또한.”

아담의 날개가 잘게 전율하고, 등 뒤로 타이트하게 접혔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루시퍼가 그의 행동에 대해 얼마나 불쾌하게 여겼는지에 대한 표현. 그의 손이 아담의 뺨을 스쳐, 목 아래로, 가슴으로 내려갔다. “그 수많은 팬들 위에서 네 모습을 완전히 감추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던지 말야. 적어도 네가 가진 그 아름다움의 몇 만분의 일은 봤을 테니까. 물론, 머릿속의 생각 하나로 그 년들의 사지를 발기발기 찢어버릴 수도 있다는 걸 들켜버린다면, 널 그렇게 사랑할 수만은 없을 거야?”

아담은 감히 웃을 수 없었다. “내 처벌은, 루시퍼?”

“오, 아담, 내가 널 설마 진심으로 벌할 거라 생각했어? 넌 완벽한 자유체야. 원하는 건 뭐든 해도 된다고? 그게 내 의지에 반하지 않는 것이라면. 음.. 어쩌면 지금 여기서 진정한 힘을 가진 자가 누군지 조금은 알려줘야 하는 걸까나. 하지만 처벌? 그건 아니지. 전혀 나답지 않잖아?” 루시퍼는 아담의 머리칼을 낚아채, 훽 뒤로 꺾었다. 그의 입술이 아담의 입술을 덮었지만, 그건 키스라기 보단 고통에 대한 계약과 같았다. “하지만, 엘로힘과 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거래를 하다니, 조금쯤은 반성하게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루시퍼가 아담의 머리칼을 놓아주자마자, 아담의 형상 위로 끔찍하도록 강렬한 불기둥이 휩쓸었다. 아담은 소리를 지르며 바닥에 쓰러져, 피부를 감싸 쥐었다. 전신이 불에 타들어가는 듯 했다. 심지어 날개까지도. 그 화상은 눈에까지 번져, 질끈 두 눈을 감은 사이로 처절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고통은 더욱 강해질 뿐이었다. 아담은 바닥에 엎드려 그의 앞에 자비를 빌었다.

그 고통 속으로, 차가운 손이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네가 고통스러워하는 건 나도 보기 싫어, 아담. 다신 내게 이런 짓 하게 만들지 마. 내기에서 이겨.”

그리고 그 순간, 처음과 같이 고통은 사라졌다. 아담은 여전히 그 자리에 엎드린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두 날개가 그의 육체를 위로하듯 감쌌다. 루시퍼는 그의 앞에 서서, 크게 미소 지었다.

“미안해.”

“사과하지마. 해야할 일을 끝내. 토미를 네 것으로 하고, 내 곁에 남아.”

아담은 몸을 세워, 일어서려 애썼다. 하지만 그의 팔은 고통에 너무나 약해져 있었다. 루시퍼는 검은 부츠로 감싸인 발끝으로 그의 어깨를 밀었다.

“내가 이걸로 끝낼 거라 생각한 건 아니지?”

그가 바라기에, 그 처벌은 길고 긴 고통의 순간 중 찰나에 해당할 뿐이었다. “아니.”

“좋아. 토미와 함께가 아닐 땐, 이 일주일간은 매일 밤 내 거처로 와 있어. 내가 들기 전에 말야, 아자젤. 기다리게 만들지 마.” 루시퍼는 손을 내밀었고, 아담은 그의 손을 붙잡아, 몸을 일으켰다. 루시퍼의 연인으로서의 이 일주일은 전혀 힘들지 않을 터였다. 고통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비록 루시퍼의 취향이 조금 색다르다는 점만 제한다면. 하지만 아담은 루시퍼가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에 익숙해 있었고, 과거에도 몇 번이고 그의 연인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분이 좋을 때의 루시퍼는 그 누구보다 매력적이었다.

“맹세해.” 아담은 약속하며 이곳을 나서기 위해 등을 돌렸지만, 루시퍼는 두 손으로 그의 뺨을 감쌌다. 그의 미소는 거만하며, 자만스러웠다.

“이 얼굴로 인간의 생활을 하긴 분명 힘들 거야. 네 일부분을 탐하는 개미새끼들이 들러붙을 테니까.” 루시퍼는 아담의 입술에 키스하며, 만족스런 한 숨을 내쉬었다. 루시퍼의 입술이 닿는 목 아래, 가슴으로부터 욕망이 피어오르는 것을 고스란히 느꼈다. 이게 바로 그가 지옥의 신인 이유겠지. 모든 타천사 위에 있는 최고의 유혹은, 바로 그 존재 자체였다. “언젠가는 너 또한 이렇게 널 아름답게 창조해낸 엘로힘을 원망하게 될 날이 올 거야.”

“원망이라면 지금도 충분해.” 아담은 입꼬리를 슬쩍 끌어올려 웃으며, 루시퍼의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매 발걸음 마다 와 닿는 어두운 시선이 등 뒤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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