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ic route 1

by. gypsy-scribbles







Phoenix 호텔 창가로 아직은 어둑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맡에서 끊이지 않고 울어대는 핸드폰 진동 따윈 무시하고 싶었다. 어차피 시간이나 때우려는 의도일 테니까.

절대 끊어지지 않는 진동에 작게 욕을 내뱉고는 손을 뻗었다. 스크린에 뜬 아담의 이름에 신음이 세어 나왔다. 어젯밤 숙취로 오븐 안에서 갖 구워져 나오는 빵 마냥 전신의 수분이 쫙 빠져나간 것만 같았다. 입술은 바싹바싹 마르고 침에서조차 알콜 맛이 느껴졌다. 이건 불공평하다고.

"뭐야."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불평섞인 목소리로 대뜸 말했다. 머리는 배게 깊숙이 파묻혀 있었다.

"지금 올라가는 중이야. 침대에서 엉덩이 좀 떼. 갈 데가 있어."

"뭐? 어딜?" 몰려오는 짜증에 괜한 앤티크식 침대 시트를 노려보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지금 나가자고? 오늘 낮에 사운드 체킹 있잖아."

"Yep." 아담의 즐거운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지금 나 즐거워요 같은 빌어먹을 목소리를 들을 의무 같은 건 토미에겐 전혀 없었다. 젠장, 지금 새벽 6시도 안됐다고! "그러니까 모닝타임은 오프라는 거잖아. 이런 황금 같은 시간에 침대에만 쳐박혀 있을 순 없지. 버스창문 관광 서비스는 이제 사양하겠어."

"좋아. 멋진 생각이야. 근데 대체 왜 거기에 내 이름이 끼어들어가 있는 건데?"

"같은 멤버잖아."

"아아 그랬지." 침대 깊이 다시 몸을 눕혔다. "난 잘거야. 괴롭힐라면 몬테한테나 가봐."

"몬테는 너보다 무섭잖아. 지금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어."

하고 싶은 말들은 많았지만 입안에서만 맴돌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냐고? 아담은 전혀 듣고 있질 않았으니까. 휴대폰 너머로 행복에 겨운 콧노래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현관문에 노크 소리가 울렸다.

"너 진짜 짜증난다." 휴대폰에 조금 진심을 담아 말하고 침대 위로 내던졌다. 입고 있던 긴 메탈리카 티셔츠의 끌려 올라간 부분을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티셔츠 한 장이라도 속옷은 가릴 정도니까 별 상관없다. 무엇보다 생리적 아침 발기로 당황할 필요가 없다는 게 가장 좋은 점이었다. 피곤함에 하품을 하며 문을 열자 지 집인양 천연덕스럽게 아담이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리고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호오-?"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꼬마마냥 들떠서는 눈동자까지 반짝반짝 빛났다. 그리고 토미는 체념의 한 숨을 내쉬었다.

"꺼져. 그래서 어딜 갈건데?"

"나중에. 우선은 씻고 나와. 커피 좀 시켜놔야겠다. 넌? 뭐라도 먹을래?"

"장난쳐? 당연하지. 이 시간에 깨운 값은 톡톡히 받을거야. 완전 큰 랍스타랑 오믈렛이랑 또- 흐음, 여튼 그런 걸로 시켜놔."

"어제도 랍스타 베네딕트 먹었잖아. 게다가 별로였다며."

"내가 언제? 35달러의 가치는 없다는 것뿐이었지." 거울에 김이 서리지 않게 욕실문을 조금 열어놓은 상태로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전신으로 쏟아져 내리는 따뜻한 물줄기에 조금 피로가 풀리는 것도 같았다. 아담은 엉망으로 흐트러진 토미의 침대 위에 털썩 몸을 눕혔다. 길게 뻗은 두 다리를 꼰 채로 매너 있게 발은 침대 밖으로 내놓았다. 손에 룸서비스 책자를 들어 메뉴를 살폈다.

"그래? 그럼 이번엔 500달러짜리 캐버어랑 토스트 어때?"

능글맞게 웃는 아담의 농담은 무시해 버렸다. 그리고 재빨리 덧붙여 말했다. "와플도 메뉴에 있어? 그 과일인가 뭔가 올려져 있던 와플. 있으면 그것도 시켜."

".. 넌 음식보다 식탁부터 사야겠다. 접시 놓을 데나 있겠냐." 어쨌든 아담은 침대 옆에 놓여진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 * *


샤워를 마치고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로 욕실에서 나오려는 순간, 현관문에서 노크와 함께 '룸서비스 입니다!'라는 남자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 새벽에도 굴러가는 레스토랑 부엌의 속력보다는 오히려 끊이지 않고 들려오던 샤워소리가 딱 멈춘거에 대한 타이밍이 드디어 라는 단어에 좀 더 가깝게 느껴졌다.

"욕실에서 널 끌어낼라면 룸서비스 하나면 되겠다." 아담이 은색의 카트를 밀고 들어오며 낄낄거렸다. 토미는 골반께에 두른 수건을 다시 한 번 고쳐 두르며 욕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 아담의 조용하면서도 감상하는 듯한 시선이 몸에 닿는 게 느껴졌다. 가방 안에서 새로운 속옷과 무릎 부근이 컷오프된 데님 청바지를 꺼내 타월 아래로 끌어올려 입었다. 그리고 웃으며 어깨너머로 그를 바라보았다.

"사진이라도 찍지 그래? 기다려줄 테니까." 녹색의 티셔츠를 집어 들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당황한 기색조차 전혀 없이 아담은 한 번 어깨를 으쓱했을 뿐, 미소 짓고 있었다. "예뻐."

토미는 아담에게서 시선을 뗐지만, 그의 근육이 단단히 잡힌 그 우아한 바디 라인은 무의식적으로 힐끔힐끔 쳐다보게끔 만들었다. 특히 침대 매트리스 위에 그 긴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모습은 더더욱. 타이트한 데님 청바지에 검은색 티셔츠, 약간 번진 느낌의 아이라이너를 제외한 화장기 없는 얼굴, 스타일링 되지 않은 내츄럴한 헤어와, 부드러워 보이는 인상.

어쩌면 지금 이 시간에 '섹스'라는 단어를 떠올린다는 건 너무 이를지도 모르지만 (욕실에서의 자위는 당연히 제외하고) 지금까지 적어도 약 백번 정도는 왜 아담과 섹스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생각해 왔던 것 같다. 아니 섹스는 좀 무리더라도 친구끼리의 블로우잡이라던가는 가능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공연이 있고 난 밤이면 클럽에서 누군가를 꼬시는 것도 호텔 유니폼이 아닌 그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도 다 귀찮은 일이 되버리고 마니까. 토미는 여지껏 여자와만 사귀어 왔고, 단 한 번도 남자에게 안겨본 적 따위도 없지만 (남자와의 데이트, 섹스에 혐오감이 있는 게 아니다 - 그는 언제나 새로운 경험과 탐험을 즐겼으니까) 사람만 좋다면 남자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도 전혀 기분 나쁜 일이 아니었다. 확실히 지금까지도 몇몇의 남자들을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지만 이런 자신의 감정에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그 몇몇의 남자들 중엔 당연히 아담도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에게는 그 어떤 비밀도 숨기지 않았다. 심지어는 자신이 품고 있던 약간 성적인 감정들까지 모두 털어 놓았었다. 그들의 우정은 빠르게 애정으로 바뀌어갔고 가끔씩의 장난스런 농탕질이 허용될 만큼 깊어졌다. 하지만 아담은 (절대 수줍은 소녀 따위가 아닌) 토미가 무엇을 원하는 지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또는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Cabo로 놀러 갔을 때, 토미는 참지 못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고 두 사람 모두 투어 전에는 그 어떤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가지고 싶지 않다라는 결과로 합의를 보았었다. 무엇보다 '도움이 되는 친구'라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방법처럼 들렸기 때문에.

아담은 그저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 크고 따뜻한 손으로 토미의 목과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었다.

"난 이런 류의 감정 조절은 잘 하지 못해."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고 위로하듯 부드러웠다. "그 상대를 이미 특별하다고 생각해버렸다면 섹스와 감정을 구별하기가 더더욱 힘들어진다고나 할까. 우리 관계는 친구 이상으론 가지 않았으면 해, okay? 물론 13세 이하 관람불가 수준까진 가능하겠지만."

그때는 고백이 거절당한 듯한 기분에 조금 눈물도 날 것 같았었고 아담에게 실망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13세 이하 수준이라는 것이 이런 특별함이 느껴지는 스킨쉽까지 포함하는 것이라면, 이마에 닿는 이 달콤한 키스까지 포함하는 것이라면 그 자리에서 'okay'를 말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금 네 모습만으로도 난 충분히 참고 있다고, baby. 넌 운이 좋은 거야. 이만큼이나 내가 널 소중히 생각하고 있으니까."


"랍스타 베네딕트는 없었어." 토미의 손이 각각의 접시의 뚜껑을 하나씩 열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담이 말했다. "대신 에그 베네딕트로 시켰어. 물론 벨기안 와플도 함께."

접시 위에 올려진 음식들을 본 순간 행복감과 함께 그 훌륭함에 토미는 작게 탄성을 내지르며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켰다. 아담의 앞에는 통밀 토스트 한 접시와 작은 잼 튜브 하나  뿐이었다.

"그게 전부야?"

"잔소리라면 됐어." 표정하나 바꾸지 않은 채, 얇게 썰린 세모 모양의 토스트 위에 딸기잼으로 추정되는 것을 넓게 펴 발랐다. "쓸데없는 말 말고 빨리 먹어. 갈 길이 머니까."

토미의 한 쪽 눈썹이 올라갔다. "아 진짜, 장난치지 말고 대체 어딜 가는 건데?" 와플을 한 입 가득 물어넣은 채 말했다.

아담의 대답이라고는 어깨 한 번의 으쓱임과 능글맞은 그 웃음뿐이었다. 그리고 토미는 열심히 접시를 비웠다.




* * *


누구의 차인지 토미의 질문이 쏟아지기도 전에 이미 두 사람은 I-10에 타 있었다. 그리고 아담은 웃으며 말했다.

"레인꺼야. 슈퍼울트라 나이스하게 부탁해서 겨우 빌렸어. 안 빌려주면 투어버스라도 몰고 가겠다고 했거든."

"왜 너 같은 녀석을 참아주는 지 이해를 못하겠어."

"설마 정말 모르는 건 아니지? 그녀는 날 사랑한다니까?" Baseline Road를 돌며 아담이 곁눈질로 말했다. "Hey, 완전 멋져!"

그의 시선이 닿아있는 곳으로 토미도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그 곳 길가엔 거의 무너져가는 과일 판매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체리 사이다'라고 직접 휘갈겨 쓴 판때기가 지붕에 달려 있었다. 아담이 속력을 줄이자 토미의 표정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

"진심이야?"

"yeah, 당연히 진심이지." 아담은 웃으며 안전벨트를 풀고 차 밖으로 나갔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데 축배는 들어야하지 않겠어?"

정겹게 인사를 건내며 다가가는 그를 쫓아 판매대 앞에 서 있는 늙은 노인을 쳐다보았다. 차 안에서 들은 대화 내용이라고는 '잔돈은 가지세요.' 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돌아왔을 때 보인 거라고는 빨간색 액체로 채워진 하프 갤런짜리 재활용 플라스틱 우유통이 전부였다.

"너 지금 나랑 장난치자는 거지." 토미는 투덜거렸다. "'굿 걸'이라는 영화 못 봤어?"

"아?" 사이다를 허벅지 사이에 잠깐 내려놓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제니퍼 애니스톤 나온 영화. 찌질이 남편 버리고 제이크 질렌할이랑 바람피우는 거. 거기에 나오는 어떤 여자가 길가에 세워진 저런데서 딸기를 사먹었어. 그리고 어떻게 됐는지 알아?"

"음? 어떻게 됐는데?" 다시 차는 텅텅 빈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박테리아인가 대장균인가에 감염 되서 죽었어."

"와우." 터지는 웃음을 참으려 크큭거리며 빠르게 지나쳐 간 표지판을 아담이 가리켰다.

"South Mountain Park," 토미가 큰 소리로 읽었다. 협곡 사진의 포스트 카드들이 실려있는 광고판을 힐끗 쳐다보았다. "우리가 가는 데가 저기야?"

"Yep, 세상에서 제일 큰 공원. 17,000 에이커라지, 아마. 미친것 같지 않아? Dobbins Point에서의 풍경은 분명 어마어마 할거야."

"헤에-" 토미는 관광을 즐기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차안에서 바라보는 풍경들은 이미 굉장히 멋져 있었다. "도시에서 이렇게 가까운데 안 믿겨."

"Yeah, 그 점이 멋진 점이지. 도시로 가려다 길을 잘못 든 채로 15분간 계속 간다 쳐. 그러면 어느 순간 BAM! 자연과 일출이 보이는 거지. 기대하지 않는 편이 훨씬 더 멋져 보일거야."

토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점점 더 자연에 가까워질수록 바람은 거세어 졌고, 산길은 점점 더 좁아졌다. 불안함에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강풍 주의 구간 15MPH 이하로 서행하시오." 표지판을 가리키며 또박 또박 힘주어 읽었다. "속력 당장 줄여. 난 너랑 '델마와 루이스' 찍을 생각 없어."

아담은 그저 웃었다. "누가 알았겠어. 우리 베이시스트께서 이렇게 순정 영화에 빠삭하셨을 줄."

그의 말에 발끈해서 어깨를 툭 쳤다. 높이 올라 갈수록 커브는 가팔라졌고, 토미는 좌석 시트 깊숙히 몸을 가라 앉혔다. "젠장! 이건 진짜 미친 짓이야. 과속하지마!"

"이정도로 뭘," 아담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운전 한두 번 해보는 것도 아니고, 넌 그냥 경치나 즐겨."


십년감수 끝에 도착한 Dobbins 전망대의 텅텅 빈 작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정신적 피로감에 작게 하품을 하며 아담을 뒤쫓아 따라갔다. ‘멋지다’라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굉장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두 사람 아래로 이어진 사막의 풍경은 마치 분홍색과 갈색,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빛 실로 짜놓은 실크 옷감처럼 끝없이 바람에 물결치고 있었다.

"아까 보니까 하이킹 도로도 있던데, 유적지 같은 게 아래에 있나? 원한다면 가보고." 썩 내키지 않는 투로 아담이 물어왔다.

"나도 봤어. 근데 난 사양할래."

토미의 대답에 안심한 듯 그는 모래 먼지가 자욱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등 뒤의 바위로 몸을 기대며 크게 한 숨을 내쉬었다. "아 천만다행이다. 이 부츠로는 분명 병원신세 져야 했을걸."

"아마도." 그의 옆으로 토미도 웅크려 앉으며 눈앞으로 펼쳐진 사막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예전에 한번 어디선가 밤의 사막은 어마어마하게 춥다는 걸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게다가 낮에는 100도까지도 올라간다지? 해가 뜬 직후에도 공기는 여전히 차갑다던데. 날카롭게 불어오는 찬바람에 반팔 티셔츠 아래로 드러난 맨살을 끊임없이 문질렀다.

물론 아담은 그런 토미를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주변 사람들의 감정에 신경을 써주곤 했으니까. 특히 불편함이라든지, 불쾌함이라든지 에는 더더욱. 허벅지 사이의 공간을 두드리며 성가시다는 눈빛으로 토미를 바라봤다.

"매번 말하지만 넌 역시 살 좀 쪄야 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자리를 옮겨 그의 앞에 앉았다. 아담은 걸어 다니는 인간 난로니까 망설이는 짓은 쓸데없는 시간낭비인 것이다. 그는 두 팔로 토미의 작은 몸을 감싸 안고 품으로 끌어당겼다. 단단하고 편안한 가슴이 느껴지고, 막 건조기에서 꺼낸 따뜻한 담요처럼 그의 팔에서 온기가 전해져 왔다.

행복감에 깊은 한숨을 내쉬고 아담의 넓은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전혀 흠잡을 데 없는 적당한 이 위치감엔 항상 자신도 놀라곤 한다. 이불 속에 있는 듯한 만족감에 당장이라도 졸음이 몰려올 것 같았다. 플라스틱 통에 담긴 사이다를 한 입 꿀꺽 삼킨 아담이 토미의 앞으로 병을 내밀었어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사이다는 처음처럼 차갑지는 않았지만, 시큼하면서도 달달한 향이 진하게 느껴졌다. 잘 익은 체리의 부드러운 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Okay, yeah, 먹을 만하네." 토미가 인정하자, 아담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쿡쿡거리며 웃었다. 좀 더 팔에 힘을 주어 토미를 끌어안고선 한 동안 말없이 그렇게 앉아 있었다. 사이다 병만이 앞뒤로 움직일 뿐. 오렌지 빛으로 타오르는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고 아리조나 사막에 아침이 밝았다.

아담은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토미는 아침 해에 빛나는 사막의 모습을 뒤로하고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주근깨와 작은 흉터들. 그는 좀 과할 정도로 사람들 앞에 자신의 맨 얼굴을 보이길 싫어했다. 그래서 토미는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만 무방비한 상태의 아담을 보는 것이 좋았다. 그만큼 자신을 믿는다는 그만의 표현일 테니까.

토미는 아담 램버트라는 남자를 숭배하는 그런 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오래된 친구들은 이미 그렇게 보고 있긴 하지만. (특히 LA에서 아담과 아담의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점점 더 많아지면 질수록) 처음 만난 그 몇일 동안은 그에 대한 경계심이 컸다. 토미의 친구들 중 어느 누구도 그와 같은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따뜻하면서도 강렬한 카리스마, 무디면서도 변명 없는 그 솔직함.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마치 '벨벳 골드 마인'에서의 락 스타가 바로 튀어나온 것만 같은 착각까지 들었었다. 그리고 스테이지의 그를 보았을 때, 토미가 알고 있던 아담이 이 남자가 맞는지조차 헷갈릴 정도로 그는 정말 수수께끼보다 더한 남자라고 생각했었다.

"우리 지금 뭐하는 거야, 아담?" 토미가 가볍게 물어오자, 아담의 두 눈이 천천히 열렸다.

"버스 창문이 아닌 곳에서 경치 구경 중이지." 잠에 취한 듯 아담이 말했다. "이대로 이곳에 죽치고 있는 동안만큼은 사람 소리 없는 추억을 좀 가져가야겠어. 특히 내 머리로 날라왔던 끔찍한 크기의 야광 딜도 따위의 기억 같은 건 제발 좀 지워질 만큼. 그런 걸 받을 만큼 부실하진 않다고 생각했는데."

토미가 바란 답은 아니었지만, 이 이상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티셔츠 끝 부분 아래로 달래듯 움직이는 그 손의 의미가 무엇인지, 골반 근처에 드러난 맨살에 머무는 그 따뜻한 온기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토미가 올려다보았을 때, 아담의 두 눈은 사막의 풍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두 눈은 이른 태양빛에 빛나 아름다웠고 맑았다. 토미는 고개를 들어 작게 미소 짓고 있는 아담의 입술에 살짝 키스했다. 그의 입술은 부드러웠고 따뜻했으며, 달콤한 체리 맛이 났다.

그리고 아담이 토미에게 키스했다. 다정하게, 그리고 순수하게. 토미가 살짝 혀를 내밀려 하자 그는 입술을 떼고 대신 이마에 키스했다.

"비겁해." 불평하듯 입술을 비쭉이며 그의 넓은 가슴으로 등을 깊숙이 파묻었다. 아담은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 * *


거의 혼수상태인 채로 사운드 체킹을 시작해, 잠깐 주어진 그 휴식 시간 동안 토미는 죽을 만큼 피곤하다라는 내용으로 트윗을 올렸다. 그리고 그 직후 무서울 정도로 많은 질문들이 그를 향해 올라왔다.

스크롤을 휙휙 내리며 슬쩍 훑어본 거의가 모두 피곤의 이유를 묻고 있었다. : 아마도 아담의 그 바로 이전의 졸려 죽겠으니 카페인이 필요하다고 올린 트윗 내용과 관련이 있으리라. 그리고 지금 두 사람은 함께 밤을 홀딱 새가며 섹스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팬걸들의 반응이야 뭐 지들끼리 좋아라 떠들고 있을게 당연한 것일 테고.

"젠장, 이게 다 뭐야." 토미가 말했다.

"그냥 즐겨." 짜증이 묻어있는 듯한 말투와 함께 아담이 미간을 좁혔다. 피곤할 때면 항상 이런 식으로 기분이 언짢은 상태가 계속된다.


최종 사운드 체크가 끝나고 아담에겐 몇 군데의 지역 방송국의 인터뷰가 남아있었다. 그리고 토미와 밴드 멤버들은 다음 공연까지는 자유 시간이었다. 그의 입에서 피곤에 지친 한숨이 세어 나오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토미는 입술을 내밀어 위로의 키스를 날려 보냈다.

"아- 낮잠이나 자야겠다!" 힐끗 그에게 시선을 주고는 일부러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아담은 조용히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 * *


탈의실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동안 토미(얄미울 정도로 기운이 넘쳐 보이는)의 눈에만 벌써 3병째로 보이는 레드불이 아담의 입안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아담은 이미 준비완료 상태였다. 몸에 쫙 달라붙은 검은 가죽 바지에 목이 깊게 파인 검은 셔츠. 그리고 조명에 은빛으로 빛나는 잘 빠진 검은색 자켓은 옆의 의자에 놓여져 있다.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하지만 피곤함에 떨리는 그의 손가락은 목 뒤에서 목걸이의 버클을 걸려 몇 분째 애쓰고 있었다.

토미는 말없이 다가가 손을 뻗어 그를 도와주었다. 아담이 몸을 숙여 주었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목걸이의 버클을 찾을 수 있었다.

"직접 메이크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이렇게 감사한 일일 줄 미처 몰랐어." 그는 웃으며 아직도 테이블 위에서 작게 떨리는 손가락을 힘껏 그러쥐었다.

"조심해, 타블로이드 1면 기사에 대문짝만하게 '아담 램버트 스피드 빨다'라고 뜨고 싶지 않으면."

아담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뭐 그럴지도. 이 기회에 가십거리 좀 만들어 볼까?"

"그거 참 재밌겠다. 이번엔 난 빼줘." 목걸이의 버클을 채우고, 끝부분을 조금 잡아당겨 제대로 걸렸는지 확인했다.

아담이 낄낄거리며, 토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한층 기분이 좋아진 듯 팔에 힘을 주어 끌어당기며 탈의실 문밖으로 향했다.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 물론 여태까지의 공연 중 즐겁지 않았던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지만. 몇 천 명이나 되는 관중들이 한 데 뒤섞인 콘서트의 현장 그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함성소리와 함께 연주를 한다는 것은 토미에겐 최고의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수천의 팬들이 내지르는 그 소리에 담긴 에너지는 마치 그의 혈관을 뚫고 들어가 아드레날린을 전신으로 퍼뜨리는 것만 같은 흥분을 몰고 왔다. 번쩍번쩍 수십 가지의 빛으로 변하는 뜨거운 조명아래 넓은 무대를 가로질러 음악에 취하고, 락을 즐기고, 몸을 흔드는 동안만큼은 아담과 함께 이 무대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중독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현기증이 날정도의 관능적인 욕망과 경이로운 격정과 흥분. 수십 번이나 연습했던 퍼포먼스라 해도 몸에 닿아오는 그의 손의 움직임과 땀에 젖은 몸은 아직까지도 익숙해지지 않은 채, 아담의 그 카리스마에는 면역성이라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는 그의 목소리조차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 믿기 힘들 정도였다. 일주일에 4번 정도의 공연, 모두 다른 장소,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면 언제나 모든 것은 하나였다.

그 뒤섞인 분위기를 갈라놓는 일이라면, 그건 거의 대부분 팬들 사이에서 발생한다. 예를 들면, 지난 Phoenix 공연에서 있었던 일로 지금은 거의 공식적으로 공연장에서 해선 안 되는 일로 기억되는 일이긴 하지만, 제일 앞줄에 있었던 어느 한 40대 아줌마(슬프게도 브래지어까지도 하지 않은)의 아담을 향해(그리고 밴드 전체를 향해) 끊임없이 카메라 빛을 터뜨려대던 일이라고 하면 충분히 이해가 될까?


공연이 끝나고 호텔로 돌아왔을 때, 아담은 거의 너덜너덜 다 뜯어진 종이 봉지마냥 완전히 지쳐 보였다. 그렇기에 토미는 다음 날 아침 오전 7시까지 투어버스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감안해 클럽 순회에 관한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 올랐을때 아담이 몸을 돌려 물어왔다. "이대로 올라가려고? Phoenix에서의 마지막 밤인데?"

"Yeah, 귀찮아. 나중에 호텔 바에나 가던지 하지뭐. 고급 매춘부들이 병신 같은 고위직놈들 꼬시는 걸 보는 것도 꽤나 재밌는 구경거리거든."

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내일 이 호텔에서 중요한 고위 관직급 회의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호텔 로비는 말 그대로 비싼 놈들로 우글우글 거리고 있었다.

"그럼, 구경하다 질리면 나랑도 좀 놀아주라. 몸은 기절 직전인데 카페인 때문에 뇌는 윙윙 거리고 딱 미치겠거든. 잠깐 동안은 TV나 좀 보면서 느긋하게 쉴 생각이니까."

"락스타 한 명 나셨네." 토미의 입가가 씨익 올라갔다. "yeah, okay. 좋아. 그 대신 네 방에 달린 미니바 이용권 나한테 넘겨. 우선은 옷 좀 갈아입고 올라갈게."

"..안 그래도 피곤한데 청소까지 시키려는 거냐. 체면은 지켜서 사용해." 토미의 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그의 자켓 주머니 안으로 호텔룸 카드 키의 여분이 들은 조그만 봉투를 쑤셔 넣었다. "한 백만 시간 동안은 샤워실에 박혀 있을 계획이니까 대답 없으면 알아서 들어와. 룸 넘버는 봉투 뒤쪽에 있어."

"Okay." 작별인사 하나 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터벅터벅 복도를 가로질러 걸어갔다. 어쨋든 몇 분 뒤에 다시 보게 될테니까.


토미의 방은 작았지만 그래도 충분히 편했다. 옷을 벗어 던지기 전에 잠깐 동안 방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샤워를 할까 생각했지만 해야 할 마땅한 동기가 없었다. 땀을 많이 흘린 것도, 전혀 찝찝하다거나 끈적끈적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검은색 츄리닝 바지와 평범한 하얀색 언더셔츠로 갈아입고 쪼리를 질질 끌고 다시 룸 밖으로 나갔다.


아담의 방은 멤버들과는 다른 스윗룸으로, 어마어마하게 큰 캘리포니아 킹사이즈의 침대와 그 앞에는 벽걸이용 스크린 TV까지 갖춰져 있었다. 그리고, yeah, 토미는 완전히 그의 방을 점거했다. 아무렇게나 신발을 벗어던지고 웃기지도 않은 고급(새틴? 실크?) 소재의 침대 이불 위로 몸을 날렸다. 침대 옆에 놓인 룸서비스 메뉴판이 눈에 들어오자 행복한 탄성이 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회색 잠옷 바지와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욕실에서 나온 아담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건 침대위의 베게들이란 베게들은 모두 다 쌓아올려 등 뒤에 받치곤 침대 정 가운데 드러누워 샘플 사이즈의 시트러스 보드카를 홀짝이며 TV를 보고 있는 토미의 모습이었다.

"음식 시켰어," 즐거운 듯 잔뜩 들떠서는 토미가 말했다. 그리고 아담의 입가에 다정한 미소가 걸렸다. 비싸 보이는 수건으로 아직 물방울이 떨어지는 젖은 머리카락을 털며 침실로 들어왔다.

"이미 어지를 대로 어질렀구만." 체념한 듯 아담이 한숨과 함께 말했다. 그리고 토미는 불가항력으로 아담의 얇은 면바지 잠옷 아래로 드러난 커다란 그 존재에 시선이 쏠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분명 저 크기에 맞는 속옷은 없을 거다. 왜냐하면-, Jesus.

"너 정확히 거기 사이즈가 얼마인거야?" 미간을 잔뜩 좁히며 토미가 진지하게 물어왔다. 그리고 아담은 그저 크게 웃었다. 지금까지 같은 질문만 이미 네 번째.

토미의 등에서 킹사이즈의 베게 하나를 빼내어 그 역시 등 뒤에 두고 옆으로 편안히 누웠다.

"볼게 없어. 채널 신청하자." 눈동자를 빛내며 기대에 들뜬 목소리로 토미가 말했다. "방금 전에 진짜 어마어마한 포르노 채널을 봤는데."

아담은 팔짱을 끼며 조금 치를 떨었다. "유감이지만 여자들 가슴이라면 오늘밤은 이미 내 수용한계량 초과야."

"그럼 게이 포르노는?" 토미가 슬쩍 웃었다.

"아 제발 좀 참아주라. 흥분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라고. 자위도 힘들어서 못하겠다."

"나한테 잘하겠다고 약속해주면 그럴 필요없게 해줄게." 자세를 고쳐 아담을 바라보며 유혹하듯 윙크했다. "어쩌면 립서비스까지 가능할지도?" 덧붙여 말했다. 토미는 아담과의 이런 야한 농이 섞인 대화를 하는 것이 좋았다. 무엇보다 눈꼬리를 한껏 접어 웃는 그의 미소를 볼 수 있다는 것, 다른 어떤 것보다 그 미소를 보는 것이 좋았다. 그에게는 가식적인 웃음은 없다. 주변 사람들조차 그 웃음에 전염되어 웃게 된다. 매일하는 악세서리 마냥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섹스토이라던가 음담패설에 관한 한은 그 어떤 언어적 필터링 없이 내뱉는 그의 목소리에 토미는 언제나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토미의 입에서 이런 류의 말들이 튀어나올 때면 아담은 언제나 웃어 주었다.

"그런 유혹으론 십년은 일러." 아담은 능글맞게 웃으며 토미의 다리를 툭 치곤 리모콘을 빼앗아왔다.




* * *


다음 날 아담은 "Carpe Diem(현재를 즐겨라)"을 수십 번이고 머리 속으로 되뇐 후에 투어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휴스턴으로 향했다. 도착은 다음날 이른 아침으로, 그 말은 오늘밤은 쪼그리고 자야할 만큼 비좁은 빌어먹을 투어버스 침대 안에서 밤을 새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일 호텔에 도착할 즈음이면 분명 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운이 좋으면 호텔의 침대다운 침대에서 2시간 정도는 눈을 붙일 수 있을지도.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지만, 토미는 편히 잠들 수가 없었다. 온 몸이 욱씬욱씬 쑤셨다. 마약 과도복용 부작용이라도 되는 것처럼 전신이 결리는 것 같았다. 뭐 좁아터진 버스 시트에 쪼그리고 앉아서 몇 시간이나 혼수상태로 있어야 했던 예전에 비하면 천국이었지만. 작게 하품하며 조용히 침대에서 내려와 (아래 침대에서 자고 있는 LP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침실을 빠져나왔다. 입은 거라곤 소매 없는 해진 셔츠와 박서뿐이었다.

맨발로 터벅터벅 걸어 투어 버스 중간에 위치한 접대 겸 식사 공간으로 사용되는 룸으로 갔다. 소파와 페스트 푸드점 스타일의 탁자들과 TV, DVD 플레이어도 있으니 시간 때우기엔 제격인 곳이다.

소파엔 이미 기다란 몸을 쫙 펴고 누워있는 아담이 있었다. 그는 두 눈을 감은 채 아이팟을 듣고 있었다. TV는 음소거 모드였지만 어두운 방안에 마치 화려한 조명이라도 되듯 색색의 그림자들을 하얀 벽에 뿌려대고 있었다. 아담이 입은 보위 티셔츠는 조금 말려 올라가 있는 상태로 그의 주근깨가 박힌 맨살을 드러내 보였다. 무슨 음악을 듣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허벅지에 놓인 그의 손가락의 느린 움직임을 봐서 조용한 곡인 것 같았다.

조용히 웃으며 방으로 들어서자, 아담이 눈을 뜨고 이어폰을 귀에서 빼내며 작게 웃어보였다.  

"Hey, glitterbaby." 장난스럽게 부르며, 바닥에 놓인 커다란 가방 안으로 아이팟을 집어넣었다. "잠이 안와?"

"Yep," 고개를 끄덕였다. 아담이 옆으로 조금 비켜 누우며 옆 자리를 두드리자, 망설임 없이 가서 누웠다.

아담의 가슴에 등을 기대고, 그의 팔을 베개 삼아 머리를 눕혔다. 아담의 팔이 허리에 둘러지고 조금 더 가까이 품으로 끌어당겼다. 등 뒤로 온기가 전해져 왔다. 그의 호흡이 머리 뒤로 흩어지고 꼭 들어맞는 이 편안함에 한 숨이 흘러 나왔다.

토미는 그가 그의 친구들과 어떤 식으로 애정을 표현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처음 그 모습을 보았을 땐 이해할 수 없었다. 끊임없는 포옹과 과할 정도의 스킨쉽, 그리고 입술에 닿는 짧은 키스들. 그건 전혀 성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었다. 순수한 다정함과 따뜻함. 하지만 그의 친구들은 대부분 여자 아니면 게이들로, 아담은 몬테에게나 밴드 멤버들, 일에 관련된 사람들과는 일체 그런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토미와도 처음에는 신체적 거리를 두려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그렇기에 그에게는 토미가 일반인으로써는 신체적 접촉 측면에서 가장 빨리 친해진 사람이었다. 처음으로 아담의 입술에 굿바이 인사를 남겼던 그때, - LA에서 그의 친구들이 그에게 이런 식으로 인사하는 것을 본 이후로 - 아담은 조금 놀란 듯 보였었다. 그리고 그는 토미의 이런 행동들이 신체적 접촉만을 뜻하는 것이 아닌, 가끔씩은 그에 대한 열망까지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나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극도의 피곤함에 시달리게 되거나, 큰 공연을 앞두고 그 압박감에 긴장하고 있었을 때는 더더욱. 토미는 원래 사람들 간의 스킨쉽을 즐기는 타입이었지만, 아담과 있을 때의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워보였다. 아담의 그 따뜻한 눈빛과 진실된 행동들은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자려고 해봐," 토미의 귀에 입술을 붙이고 조용히 속삭였다. "호텔에 도착하면 데려갈 곳이 있으니까."

토미는 조금 불평 섞인 목소리로 갸르릉거렸다.

"Nope, 이번엔 정말 맘에 들거야, 약속해."

아리조나에 갔을 때도 물론 충분히 좋았지만 묵묵히 아담의 말에 따라주자니 어쩐지 배알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적어도 한번쯤은 튕겨주는 게 예의잖아? 이번엔 조금 몸을 뒤틀며 불평해 보였다.

"아 그리고, hey, 이거 봐." 즐거운 듯이 아담이 말하며 토미를 안고 있던 한쪽 팔을 풀어 소파 아래에 놓여져 있는 가방 안을 뒤적였다. "덴버에 있는 팬이 보내줬어. 역시 휴스턴하면 이거지." 그의 손에는 새하얀 색의, 반짝이는 라인석이 가장자리에 박혀 있는 카우보이 모자가 들려 있었다.

모자는 어느새 아담의 머리 위에 훌륭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어때? 카우보이라고!"

".. 내가 진짜 카우보이였음 널 보는 순간 당장 쏴버렸을걸. 그 모자는 'Dallas Cowboys' 치어리더들한테나 가져다주시지 그래."

예상과 다른 토미의 반응에 아담은 이유를 따지듯 말했다. "왜, 내가 보기엔 멋지기만 한데."

"어련하시겠어." 아담에겐 보이지 않게 살짝 웃었다. 그리고 그의 따뜻한 팔과 가슴에 좀 더 깊이 몸을 파묻고 두 눈을 감았다.




* * *


"잠깐만. 그러니까 여기가 정말 그 영화를 찍은 그 곳이야?"

"Yep." 확신에 차서는 아담이 말했다. "적어도, 홈페이지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어."

".. 다 무너져 가는 이런 후진 곳에 홈페이지가 있다고?"

"Baby, 비데달린 세상에서 제일 큰 화장실이라고 들어본 적 있어? 화장실에도 홈페이지가 있는데 여기라고 없겠어? 여기서 20마일만 더 가면 돼. 왜 여기가 맘에 안 들어? 화장실로 갈까?"

"솔직히 말해봐. 너 원래 목적은 그 화장실이었지?"

"설마. 난 네 의견을 존중할 뿐이라고? 뭐 사진으론 볼만 한 것도 같았지만." 아담의 미소가 라인석이 박힌 그 웃기지도 않은 모자 아래로 번졌다.

".. 여기가 좋아." 차의 앞좌석에서 내리며 말했다. "뭣보다 그 툼스톤이니까. 내 인생 최고의 영화야."

"Yeah, 그렇겠지." 아담이 질린다는 듯 말을 이었다. "덕분에 난 밤 새 뜬 눈으로 티비 앞에 붙들여 있었었지. 두 번이나."

"그 발 킬머와 네가 같은 뮤지컬에서 같이 연기했다는 건 아직도 믿을 수 없어. 진짜 이상한 기분이야."

"나야말로." 아담이 차 문을 힘차게 밀어 닿았다. "Come on, 들어가 보자."

눈앞으로는 오래된 거대한 나무 울타리가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그나마 보이는 것이라곤 썩은 나무의 구멍사이로 엿보이는 몇몇 개의 낡은 건물들이 전부였다.

"닫혀있는 거 아냐? 지금 완전 아침이잖아."

"Nope, 자물쇠는 풀어져 있는데. 여기 열려있다고 되어 있네."

아담이 가리킨 표지판엔 Ellis City National Historical Monument 라는 글씨가 크게 적혀 있었다. 오픈 시간은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기부 환영. 그는 이미 타이트한 검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채였다. 그리고 손에 들린 반으로 접힌 지폐 한장이 문 앞의 낡은 금속 기부 박스의 작은 구멍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토미는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사기 당하는 기분이야."

아담은 토미의 말을 무시한 채, 잔뜩 녹이 밴 출입문을 열어 젖혔다.

"Oh hey, 영화에서 본 그대로야! 멋져!" 뜨겁게 내리쬐는 아침 태양빛을 손으로 가리며 토미는 눈에 들어오는 풍경에 환호했다.

아담은 꼭 칭찬받은 꼬마처럼 자랑스러운 듯 보였다. "좋아할 거라 생각했어."

"솔직히 말해서 아침 7시에 덜렁 찾아와서는 사람 납치하듯 공동묘지 한복판으로 끌고 왔을 땐 좀 짜증났거든? 뭐 근데 이정도면 yeah, 봐줄게."

"그거 고맙다." 아담이 손을 들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오래된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을 가리켰다. "근데 널 데려온 곳은 공동묘지가 아니라 공동묘지가 있는 최고의 유령 도시라고. 넌 좀 더 시야를 넓히는 연습을 해야돼."

아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토미는 출입문에서 가장 가까이에 위치해 있는 낡은 십자가들이 줄줄이 박혀 있는 공터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 십자가에는 여러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 총알에 얼마나 많은 녀석들이 죽었던 걸까." 뒤를 돌아보며 그에게 말했다. 아담은 시선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쉽게도 그때 태어나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거기 멍청히 서있지 말고 이리와."

"냉정한 놈." 호흡 아래도 작게 중얼거리며, 말이야 어쨋든 그를 뒤쫓아 걸어갔다.

Ellis City라고 적혀 있는 이곳에는 타원형의 작은 언덕위로 거의 다 쓰러져 가는 낡은 건물들이 솟아올라 있었다. 많아 봐야 열두 채 정도로 그다지 넓지는 않았다. 그야말로 서부 영화 속 세트장을 연상케 하는 모습으로, 영화 속에서 봤던 것 보다 황폐해 보인다는 걸 제외하면 그 배경 그대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래머러스한 옷의 섹시한 술집 여자들이 없다는 것이 가장 아쉬운 점이었다.

"이건 정말 건물 안에 들어가 봐야해." 아담이 다소 실망한 듯 말했다. "안을 보여 달라고! 여기까지 왔는데 귀신이라도 보여줘야 될 거 아냐!"

"Yeah, 떨어지는 천장에 깔려서 다음 날 멋지게 헤드라인을 장식해 보는 것도 괜찮겠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말은 싹 무시해버리기로 했다.

"넌 너무 생각이 메말랐어." 아담이 부루퉁해서는 바라보았다. "Oh, 바(bar)다!"

"술집(saloon)이야." 그의 말이 떨이지기 무섭게 토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마도 다시 한 번 그에게 툼스톤을 보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뭐야! 창문에 판자까지 대놓다니!" 나무판자로 비스듬히 막아놓은 문 앞으로 다가가며 아담이 불평했다.

"저기엔 없는데." 건물 옆으로 위치한 작은 창문을 가리키며 토미가 말했다. 아담이 닿기에도 힘들 정도로 그 창문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빛 때문에 만들어 놓은 걸 테지만."

"재밌는 게 뭔지 알아?"

토미의 눈이 경계하듯 얇아졌다.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말이었다. Cabo에서 레이스 캐미솔과 스커트를 입혔을 때도 분명 똑같은 말이 아담의 입에서 튀어나왔던 것 같은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전 세계 인터넷으로 공유되었던 사진. 록시의 카메라가 너무 고마워서 때려 부셔버리고 싶었다지.

"내가 널 들어 올리면 적어도 넌 저 안을 볼 수 있다는 거지!" 토미가 가리킨 창문을 향해서 잡초가 무성히 자란 다 무너져가는 건물의 벽면을 따라 걸어갔다. 그리고 토미는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린 채 못 마땅한 듯 아담을 눈으로 쫓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이 빌어먹을 잡초 사이를 나한테 걸어 들어오라고? 방울뱀이라도 있으면 어쩔 거야."

"Well, 그러니까 진작에 나처럼 퍼펙트한 부츠를 신고 왔어야지."

토미의 눈이 비난하듯 아담의 머리에 씌워져 있는 모자를 향했다. "Oh yeah, 퍽도 퍼펙트 하시겠네, 반짝이씨." 시선을 내려 아담의 발을 바라봤다. "게다가, 너 그거 뱀 가죽 아냐? 뱀들이 널 살인마로 보고 떼거지로 몰려들면 죄 없는 나만 죽어나는 거잖아."

"만약 물리면, 확실하게 빨아줄 테니까 걱정마. 약속할게." 아담이 다소 진지해져서는 말했다.

그의 말에 토미가 두 눈을 깜박거리고 서있자, 언제 진지했었냐는 듯 그의 입가에 장난기어린 미소가 걸렸다. "빨아내 주겠다고. 독 말이야. 독."

순식간에 바보가 된 느낌에 그를 노려보곤 건물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담의 강한 손이 토미의 허리를 붙잡아 힘껏 들어 올렸다. 그리고 토미가 손을 들어 창틀을 붙잡아 상체를 끌어올리자 자세가 안정될 수 있도록 임시방편 의자라도 된 듯 아담은 두 손을 모아 엉덩이를 받쳐 주었다.

"너 지금 이거 내 엉덩이 만지고 싶어서 수작 부리는 거지?" 토미의 미심쩍은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오고 아담은 그저 눈을 맞춘 채 능글맞게 웃을 뿐이었다.

"변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려 작게 중얼거리곤 먼지가 수북이 낀 창문 유리 가까이로 몸을 숙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래서 뭔가 좀 보여?"

어두컴컴한 내부에 시야를 적응시키기 위해 두 눈을 깜박였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빈 벽뿐이었다. 여기저기 금이 쩍쩍 갈라진 벽 위로 다 낡아서 벗겨진 희미한 꽃무늬의 벽지도 눈에 띄었다. 조금 더 상체를 끌어올려 아래쪽을 내려다보자 작게 만들어놓은 스테이지 같은 것이 보였고 그 뒤의 바에는 오래된 병들이 즐비하게 놓여있었다.

"유령은 없지만 술집처럼 보이긴 해. 바 위에 오래된 병들이 세워져 있고, 그리고.. 플랫폼? 아마 댄서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스테이지 같은데, 잘 모르겠어. 다는 안보여. 그래도 뭐.. 멋진데? 꼭 오래된 사진을 보는 느낌이랄까."

"아우, 나도 보고 싶어."

"Yeah, 그거 참 안됐다. 내가 들어올리기에 넌 너무 크거든."

토미의 말에 아담은 골난 꼬마 같은 표정으로 그를 받치고 있던 손을 떼고 아래로 떨어뜨리듯 단번에 내려놓았다. 순식간에 낮아지는 시야에 당황해서는 작게 욕설을 내뱉고는 발밑에서 올라오는 먼지들을 손으로 내저으며 기침을 내뱉었다.

"이 얼간아!" 바지에 묻은 먼지들을 털어내며 이미 저만치 걸어가고 있는 그를 향해 소리쳤다. 그는 술집 뒤로 위치한 작은 경사면의 언덕 위를 올라가고 있었다.

어느 사이엔가 태양빛은 보다 더 뜨거워져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저 술집의 문이 열리고 차갑고 부드러운 맥주가 눈앞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언덕 위의 아담을 뒤쫓아 따라가자 등 뒤로 땀이 조금 흘러내렸다. 그는 끊어진 철로의 울타리 위에 앉아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을 못 뜨겠어." 그가 앉아있는 곳 옆에 털썩 걸터앉으며 불평했다.

"이제 와서 탐내봐야 소용없어. 모자 대신 손으로라도 가려."

시선을 돌려 언덕 위로 보이는 마을의 풍경을 주욱 돌아보았다. "좀 더 선인장이 많아야 할 것 같아."

".. 네 눈엔 이게 다 뭘로 보이냐." 아담이 눈앞으로 펼쳐져 있는 수많은 가시덤불과 작은 선인장들의 무더기들을 가리키며 어의 없다는 듯 말했다.

"아니, 저런 거 말고 진짜 선인장 말야. 이렇게 팔꿈치가 굽혀진 팔이 달린 것 같은 진짜 큰 선인장."

아담은 마을에서 시선을 돌려 토미를 가만히 바라봤다. "너 가끔씩 진짜 정신병자 같을 때가 있어."

토미가 툭 어깨를 치자 그의 입가에 씨익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곧 다시 황폐해진 건물들이 서 있는 메마른 먼지투성이의 마을로 시선을 돌렸다. 몇 분 동안 그렇게 가만히 앉아 있었다. 뜨거운 태양빛에 오븐에 구워지는 고기처럼 살이 익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제 가면 안돼? 목말라 죽을 것 같아. 진심으로."

"Yeah, 잠깐만." 그는 생각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였고, 움직일 기색조차 전혀 없어 보였다. 토미의 입에서 긴 한숨이 세어 나왔다. "여긴 뭔가.. 섬뜩한 기분이야. 안그래? 외로운 느낌 같은."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뭐 그런 것도 같고."

"마치.. 삶의 시간이 끊어져 버린 곳 같다랄까. 여기도 처음엔 크고 멋진 마을이 되고자하는 많은 사람들의 꿈들로 시작되었겠지. 하지만 그 꿈들은 이뤄지지 않았어. 누군가 도중에 망쳐버렸을 수도 있고 그 잘못을 너무 늦게 깨달았던 걸지도 몰라. 아니 어쩌면 운명이 그들 편에 서주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그들이 남긴 꿈의 잔재들을 보고 있는 건 진짜 멋진 일인 것 같아. 적어도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남겼다는 거니까, 안그래?"

토미는 웃어보였다. "Okay, 너 지금 완전 히피족 같아."

토미의 말에 아담은 크게 소리 내어 웃곤, 레일 울타리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바지에 묻은 먼지들을 털어냈다. "Come on, 이제 가자."


주유소에 들려 레인의 차에 기름을 채워 넣는 동안 아담은 매점에서 시원한 얼음물 몇 병을 사들고 돌아왔다. 그리고 토미의 무릎 위로 플라스틱 포장으로 덮인 초록색의 뭔가를 툭 내던졌다.

"뭐야?" 꾸벅꾸벅 졸고 있던 채로 갑작스런 느낌에 흠칫 놀라 고개를 들어올렸다.

"너의 '팔 달린 선인장'. 액세서리로까지 팔더라."

토미는 무릎위에서 차 안테나 장식품으로 나온 장난감을 들어 올리며 그 형태에 낄낄거리며 소리 내어 웃었다. 고무로 된 그 선인장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서부의 무법자라도 되는 양 입까지 올라온 빨간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카우보이 모자도. 플라스틱 포장을 뜯고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며 말했다. "차도 빌렸으니까 레인 차에 걸어 놓을까?"

"No! 장난쳐? 필요 없어. 그 여자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투어 버스에나 걸어놔. 마스코트로 쓸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우선은 화장부터 시킨 후에. 완벽해."

"너야말로 가끔 진짜 정신병자 같아." 토미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선인장을 콘솔 박스 안에 넣어 두고 얼음물이 든 통을 집어 들었다.




* * *


"정말이예요?" 실망이 가득한 얼굴로 토미는 바텐더를 바라보았다. "Jack이 없다구요?"

"내일 들어와요."

"아- 제길." 등 뒤쪽으로 몬테와 롱기뉴의 인사를 건네는 목소리가 들리고 고개를 돌리자 아담이 바 안으로 웃으며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드디어 콘서트 후의 '회복' 과정이 모두 끝난 듯 했다. 그는 약간 해진 빈티지 청바지를 입고 있었고 공연으로 엉망이 된 머리는 검은 비니로 가린 채였다. 그리고 바 가까이로 다가와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며 확인하는 모습은 아마도 몬테가 전화로 말한 '텅텅 비었다'라는 말을 확인하고자 함일 것이다. 왜냐면 'Meet and Greet' 때의 어느 미친 여자 팬과의 혀까지 내줘버렸던 그 키스로 이미 그의 일일 할당량의 팬서비스는 종료였기 때문이다.  

"말했지," 몬테가 손에 들린 거의 비어버린 맥주병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오늘 바는 완전히 우리 차지라고."

"그래서 뭘로 드릴까요?" 고개를 돌려 이야기를 듣고 있던 토미의 앞으로 바텐더가 몸을 조금 더 숙이며, 멋지게 그려진 완벽한 눈썹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yaeh, 그녀는 섹시했다.

"아, 제일 자신 있는 걸로?" 뒤쪽을 향해 있던 시선을 돌려 살짝 웃으며 토미가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오픈된 셔츠 사이를 힐끗 들여다봤다는 건 절대 아니다. 절대로.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로 답했다. 그리고 yeah, 그건 정말 섹시했다.

순간 들리는 부드러우면서도 가식적이지 않은 익숙한 그 웃음소리에 다시 등 뒤로 고개를 돌렸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허리까지 숙여 크게 웃어대는 아담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만으로도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몬테는 그 옆에서 아담의 반응을 즐기며 여전히 낮은 목소리로  얘기 중이었고, LP 역시 그 두 사람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아담의 팔은 몬테의 어깨에 얹혀져 있었고, 그의 두 눈은 여전히 웃음소리에 젖은 채 밝게 빛나고 있었다. 토미는 아담의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자신과 만나기 전의 아담은 어땠을 지 궁금했다. 아직 유명해지기 전의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 시절의 그와 추억을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등등. 뮤지션이 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작은 클럽와 헐리우드 내의 수많은 바에서 노래하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기분은 어떤 느낌일까.

"Everything’s Bigger in Texas."

"아?" 토미는 그 귀여운 바텐더에게로 고개를 다시 돌렸다.

"Everything’s Bigger in Texas. 당신 칵테일의 이름이예요."

토미는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눈앞의 칵테일을 들여다보았다. 칵테일치고는 큰 잔이었다. 크고.. 핑크색인. "대체 뭐가 들어간 거예요?"

"꼭 물어봐야겠다면 어쩔 수 없지만, 모르는 게 좋을 걸요?"

"헤에- 더 알고 싶어지는데요." 입술 한쪽 끝을 밀어 올리며 최대한 섹시하게 웃어 보이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엔 그렇게 비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건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 왜냐면 토미는 그녀와 정말 진심으로 하고 싶었으니까.

"보드카 마티니도 한 잔. 한 번 흔들어서요."


"Thanks, baby." 토미가 아담의 앞에 마티니 잔을 내려놓자 아담이 부드럽게 말했다.

"네 이름으로 걸어놨어."

"Yeah, 그것 외엔 네가 날 위해 마티니를 가져올 리 없으니까." 그의 목구멍 안으로 멋스러운 잔에 담긴 마티니가 한 모금 길게 넘어가자 그는 그 맛에 도취된 듯 해 보였다.  

"대체 그건 뭐야." LP가 토미의 손에 들린 반짝거리는 분홍색 칵테일을 가리키며 물었다.

"바텐더의 특별 초이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 모금 들이켰다. "Fuck, 장난 아니야. 이거 완전 솜사탕 맛인데? 진짜 진짜 강한 솜사탕."

몬테가 못 믿겠다는 듯 토미의 손에 들린 잔을 바라보았다. "솜사탕이라고?"

"Shit yeah, 한 번 마셔봐."

"Damn." 몬테의 두 눈이 놀라움에 크게 떠졌다. "진짜 괜찮은데?"

"좋아, 넘겨." 이제 잔은 LP의 손으로 넘어갔고, 한 모금 들이킨 그는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나쁘지 않네. 무슨 칵테일이야?"

"Everything’s bigger in Texas." 대화를 듣고 있었는지 바 넘어의 바텐더가 친절히 대답해 주자, 아담이 그 말에 크게 웃었다.

"두 잔 더요, 내 이름으로 걸어 놔줘요." 아담이 그녀에게 살짝 웃으며 윙크하자, 그녀는 조금 볼을 붉히며 고개를 재빨리 숙였다. 분명 아담의 관심을 받았다는 기쁨에 부끄러워서일 것이라.

"나쁜 자식." 토미가 짧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니가 그러니까 팬서비스에 혓바닥까지 포함되는 거라고. 저 여자도 너랑 하고 싶은 모양이네. 여자한텐 관심도 없는 주제에."

괴로운 기억이 떠오른 듯 이담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웃긴 게 뭔지 알아? 어째서 오늘 그 팬서비스가 지금까지 중 제일 서비스다울 수 있었냐는 거야."

"그것 참 안됐네요. 락스타씨." 괜한 기분에 손에 들린 칵테일만 계속 축냈다.  

"아- 카메라폰 따위 없었던 시절엔 진짜 좋았는데 말야." 아담이 그리운 듯 말을 이었다. "그땐 웬만큼 야한 짓은 다 할 수 있었다고~" 손에 들고 있던 마티니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음악이 이게 뭐야! 제대로 된 곡은 없는거냐?!"

"Dude, 그 제대로 된 곡으로 좀 부탁해." LP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걱정말라고, 그게 내 전문이니까." 아담은 잔뜩 들뜬 아이마냥 쥬크박스 쪽으로 재빨리 걸어갔다.

"설마 여기에서까지 네 노래를 틀려는 건 아니겠지? 그건 진짜 -"

그 순간 'Bad Romance'의 전주 부분이 바 전체에 울리고, 토미는 무대 위에서보다 과장된 몸놀림으로 걸어 나오는 아담의 모습에 킥킥거리느라 문장을 채 다 말하지도 못했다.

"Oh hell no," 아담이 토미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점점 다가가자 주변의 웃음소리는 한층 더 커졌다. "난 아직 그 정도로 취하지 못했다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담이 내민 손을 거부할 수는 없었기에 자리에 앉은 채로 손을 잡고 그의 몸이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도는 것을 도왔다. 토미의 앉은키에 아담의 엉덩이는 바로 그의 눈앞에 있었고, 그렇기에 더더욱 그에게 시선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좀 전의 그 섹시한 바텐더가 테이블 위로 두 잔의 핑크색 칵테일과 아담을 위한 한 잔의 마티니를 내려놓았다. 그녀의 눈은 아담에게 고정된 채로, 바 전체에 흐르는 신나는 노래에 맞춰 살짝 살짝 몸을 움직이고 있었고, 그걸 눈치 챈 아담은 그녀에게 다가가 입술을 살짝 끌어올리며 웃어보였다.

"Come here, honey. 재미라곤 모르는 이 산송장 같은 스트레잇 녀석들 사이에서 나 좀 구해주지 않을래요?"

아담이 손을 내밀어 그녀를 댄스플로어로 이끌고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연인들마냥 서로의 리듬에 맞추어 즐거운 듯 웃으며 춤추는 모습에 몬테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웃었고, LP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토미는 두 사람의 매끄럽게 리듬에 맞춰 움직이는, 야하면서도 멋진 그 몸놀림에 시선을 계속 맞춘 채로 한 모금 더 목구멍 안으로 음료를 흘려 넣었다.

LP는 작게 휘파람을 불며 손에 들린 분홍색의 칵테일을 내려다보았다. "Damn, 이거 대체 뭐가 든거야? 벌써부터 어지러운데."

"좋은 거." 여전히 두 눈은 아담과 그녀에게 고정시킨 채로 또 한 모금 음료를 삼켰다.

"So hey,"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LP가 조금 더 가까이 기대왔다. "너네 뭔가 있긴 있는 거지? 너랑 그.. 아담 사이에 말이야. 은밀한 뭐 그런 거 있잖아."

갑작스런 물음에 놀라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뭐?! No! 어째서 그런 걸 묻는 건데? 내 전여자친구도 만나 봤었잖아. 남자 녀석들과 데이트 따윈 안한다고."

"뭐 꼭 데이트 같은 걸 말하는 건 아니고," 칵테일을 입가로 가져가며 LP가 중얼거렸다. "아담 같은 경우는 내가 보기엔 뭐랄까, 좀 예외랄까. 뭐 그렇다고."

토미의 두 눈이 놀라움에 커졌다. "너 지금.. 너라면 그랬을 거라는 거야? 내 말은 약혼녀만 없었으면-"

LP가 크큭 거리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 "No man, 나한텐 해당사항이 없는 말이고. 그 녀석이랑 껴안고 그녀석의 엉덩이를 쳐다보는 건 내가 아니거든."

토미는 얼굴로 확 열이 쏠리는 게 느껴져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꺼져."

"Dude, 난 그냥 물어본 것 뿐이야."

"Yeah well, 그래 남자들이랑 놀아난 적 있다는 게, 그게 뭐? 아담이랑 어울려 다닌다고 다 그런 건 아니잖아? 우린 그냥 친구일 뿐이라고."

"그게 여러모로 편리하겠지." 몬테가 간단히 한마디 툭 내뱉었다. 그리고 토미는 이 대화를 그가 전부 듣고 있었다는 데에 대한 놀라움과 그 비꼬는 듯 한 말투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바라보았다.

"아 좀 제발," 더 이상 참지 못한 채 짜증내듯 대꾸했다. "대체 지금 뭐하자는 거야? 우리가 그런 관계라고 쳐도 무슨 상관인데? 적어도 난 어떤 병신 같은 새끼들처럼 MS에 그 녀석 사진을 도배해 놓지는 않는다고! 빌어먹을."

LP는 거친 토미의 말투에 눈을 찌푸렸고, 몬테는 그저 한번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난 녀석을 잘 알아, 그 뿐이야. 쉽게 상처받는 녀석이라는 점과 네가 말한 그 친구라는 것에 영원히 어울려 줄 수는 없는 녀석이라는 점."

"먹던 건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지." 아담이 바텐더의 손등에 정중히 키스하며 그들이 있는 테이블로 돌아오는 것을 본 LP가 말을 덧붙였다.

토미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팔을 두르며 아담이 그의 옆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째서 이 테이블에서 내가 제일 남자다운 걸 마시고 있어야 되는 건지 설명 좀 부탁해도 될까."

그의 팔 안에서 토미는 필요 이상으로 경직되어 있었다. 이런 면에 민감한 그가 이를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평소와 다른 토미의 모습에 의아한 시선을 던지며, 어깨에서 팔을 치웠다.

"피곤해서 그래." 토미는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빌어먹을 LP와 재수 없는 몬테의 말에 짜증이 난 것이 맞긴 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말에 제대로 된 말로 반박할 수 없는 자신이 더 꼴 뵈기 싫었다. 186cm나 되는 유명 락스타가 토미로부터의 보호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어차피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앉아, TJ" LP가 단호하게 말했다. "계집애마냥 굴지 말고. 우린 네 친구들이라고, man."

아담이 미간을 약간 찌푸린 채 그들 사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Man,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뭔지 알아? 대화 끝에 질질 끌려가는 거야. 특히 그게 내 망상에 먹이를 던져 넣는 중이라면 더더욱."

"그냥 조언을 좀 해주고 있었을 뿐이야." 몬테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쉽게 말하자, LP가 이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Yeah, 섹시한 바텐더 언니를 꼬시려면 없는 머리 굴리지 말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말하던 중이었어. 몬테는 동의했고."

"아우! 그러니 당연히 화날 만하지." 아담이 토미의 편에 서주듯 몬테와 LP를 향해 장난스럽게 눈썹을 들어올렸다. "섹시 바텐더가 있으면 스트레잇 녀석들은 서로 응원해 줘야 되는 거라고! 그게 그 bro-code인가 뭔가 하는 그거 아냐?" 고개를 돌려 토미를 바라보며 그의 팔을 다정히 어루만졌다. "힘내, baby. 내가 확실하게 밀어줄 테니까."

아담의 어색한 말투에 토미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Yeah, thanks, man. 근데 오늘은 패스할게. 그래도 네 bro-talk는 훌륭했어." 다시 그의 옆자리로 걸터앉으며, 이제 거의 비어버린 잔을 들어올렸다.

"역시! 지금 뭔가 스트레잇 녀석이 된 기분인데!" 아담이 씨익 웃으며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자신의 마티니 잔을 손에 쥐고, 다른 한 손으론 가볍게 토미의 무릎을 위로하듯 살짝 움켜쥐었다.




* * *


"싫어." 아담이 토미의 침대 위로 얼굴을 내밀자마자,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토미의 입에서 대답이 튀어나왔다. "오늘은 안가. 죽어도 못가. 땀으로 국을 끓일 지경이라고. 빌어먹을 버스! 더워 죽겠어."

"Okay, 우선 첫 번째로, 아우." 아담이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찡그렸다. "그리고 두 번째로, 여기서 호텔까지 5분도 안 걸려. 우선 호텔로 가서 샤워부터 해. 어쨋든 나도 오늘만큼은 널 데리고 여행 떠나기엔 피곤하니까. 그냥 아침이나 먹자고 부른 거야."

토미가 의심에 찬 눈초리로 눈썹을 들어올렸다. "아침이면.. 룸서비스야?"

"Nope! 도넛 모양의 엄청 유명한 가게에서의 아침! 진짜는 아니지만 지붕에 설탕가루까지 뿌려져 있었어! 어제 지나오면서 미리 봐놨지."

토미는 그저 아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Yeah, 멋지다는 건 나도 알아." 아담은 완전히 들떠서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서며 문가로 걸어갔다. "몬테랑 LP한테도 같이 가자고 말했는데 싫다더라고. 어째서 이게 싫을 수 있는 건지 믿을 수가 없다니까."

"왜 난 싫다고 하면 안되는 건데?" 졸린 눈을 비비며 쉬마려운 강아지마냥 낑낑거리며 푸념을 내뱉었을 때, 이미 그는 저만치 떨어져 버스의 복도를 걸어 나가고 있었다.




* * *


"Okay, 여기 있는 거 전부 다 빌어먹게 맛있을 것 같아. 아- 전부 시켜먹고 싶어."

손에 들린 메뉴판 너머로 토미를 바라보며 아담이 중얼거렸다. "너 진짜 밉다. 너의 초고속 소화 능력도 얄미워."

"설마 너 지금 여기 메뉴판에 떡하니 'Frided Donut French Toast'라고 쓰여진 곳에서 계란 흰자 오믈렛이랑 호밀빵 콤보 따윌 시키려는 건 아니겠지?"

"몰라, 아직 안정했어." 아담의 미간 사이에 주름이 쫙쫙 생기지 시작했다. "탄수화물만큼은 피해야 되는데, 젠장. 이거 진짜 생고문이네."

"넌 쓸데없는 걱정이 너무 많아." 토미가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다. "지금도 충분히 보기 좋거든?"

"TV엔 10kg이나 쪄 보인다고. 게다가 내 경우엔, 턱에만 5kg은 더 붙어 나오는 것 같아."

"됐어, 닥치고 넌 프렌치토스트 시켜."

"말하기야 정말 쉽지요, Mr. Tiny and Perfect."

"난 말랐다는 소리가 제일 듣기 싫었어." 토미가 중얼거렸다. "그래서 역겨운 단백질 음료에다 빌어먹을 것들까지 꼬박꼬박 진짜 눈물 나게 먹었었다고, 너도 알잖아. 사진 봤지?"

아담이 작게 웃어 보였다. "아아- 기억나. 삐쭉머리 메탈광. 하지만 난 지금의 네가 자연스럽고 좋아. 이편이 더 예뻐 보이거든."

토미는 아랫입술을 깨문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눈앞에 커피를 들어 꿀꺽 꿀꺽 빠르게 삼켜 넘겼다. 아담이 이런 식으로 말해줄 때 자신의 기분이 얼마나 좋아지는 지 솔직히 말해서는 깨닫고 싶지 않았다.

예전에도 '예쁘다'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그 말에 화를 내며 당장 헬스룸으로 달려가 몇 시간이고 운동을 하곤 했었다. 20대 초반엔 거의 모든 시간을 남자답게 보이려는 데에 쏟아 부었다. 스트레잇인 친구 녀석들과는 가끔씩 장난식으로 서로의 것에 대해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술을 마시고 진득하게 취한 날, 남자 녀석들과 서로 핸드잡을 해 주었을 때, 여자와 데이트하며 섹스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씩은 이런 식으로 남자 녀석들과 어울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Velvet Goldmine'이라는 영화를 접하게 된 후엔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화려한 스타일에 매료되어서는 오래된 친구들 몰래 화장을 하고 나가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아담에게 끌리게 된 것엔 마땅한 이유가 있었다. 어느 것이 남성적이냐 여성적이냐 라는 것에서 떠나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그의 당당함과 남들에게 보여 지는 자신의 모습에 변명하지 않는 그 솔직함은 토미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그의 곁에 있게 되면서 보다 당당해고,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몸무게와 피부에 대해 과할 정도로 신경 쓰며 자신없어 하는 아담과 그 자신이 얼마나 특별하고 멋진 지에 대해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의 아담은 정말로 보기 싫었다.

"French toast 세트 2개요." 웨이트리스가 다가오자 아담이 입을 열기도 전에 단호한 목소리로 토미가 말했다.

"사이드 메뉴는 베이컨과 소세지 중 뭘로 하시겠어요?" 아무런 흥미 없이 웨이트리스가 물어왔다. 그녀는 아담을 알아보고 사진이나 사인 등에 대해서는 전혀 물어오지 않았기에, 아담은 순식간에 그녀가 맘에 들었다.

"둘 다요." 반박은 꿈도 꾸지 말라는 듯 그를 향해 찌릿 눈빛을 보내며 토미가 재빨리 말했다.

그리고 아담은 한 숨을 내쉬었다. "Perez 녀석이 또 내 턱에 동그라미 친 사진을 올리면, 그땐 전부, 저언부 네 탓인 줄 알아."

"Perez따위 엿이나 먹으라해. 네가 강하게 안 나올걸 아니까 그러는 거라고. 그 녀석 어쩌면 네 거기에 엄청난 애정 같은 걸 가지고 있는지도 몰라. 니가 그 녀석한테 딱 5분만이라도 빨게 해주면 아마 그 다음부턴 너에 대한 칭찬만 줄줄 쏟아져 나올걸."

아담이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Okay, 지금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내 아랫도리가 쪼그라든 기분이거든."

"있는 그대로 보여주라고." 토미는 간단히 한마디 내뱉고는 손에 들린 커피를 한모금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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