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ent cries, mighty echoes 1

by. something-rare







잔잔한 물가에 조약돌 하나를 던져 넣으면..




술병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바를 지나쳐, 연회장으로 곧장 향했다. 비상구 문을 힘차게 열어젖히고, 재빨리 밖으로 나와 누구에게 들킬세라 등 뒤로 곧장 문을 닫았다. 깊게 호흡을 한 번 삼킨 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건물 벽에 기대었다.

그 차가움에 취기가 조금 가심을 느꼈다.

만약을 위해 품 안에 꼭꼭 숨겨두었던 담배를 꺼내 입술 사이에 물고 불을 붙였다. 천천히 연기를 내뱉는 사이로, 익숙한 매캐함이 느껴지는 동시에 기침이 튀어 올랐다. 딱히 흡연을 즐기는 것도 아니고, 배우고 싶은 마음 또한 없다.

두 눈을 감자, 시야가 어두워지는 순간, 몸도 함께 기우뚱 기울었다. “제길, 역시 그 마지막 잔이 문제였어. 대체 뭘 섞은 거야.”

누군가 헛기침을 하는 소리에 그는 눈을 뜨고, 제대로 벽에 기대어 섰다. “누구야?” 양 옆으로 고개를 돌려가며 어둡기만 한 골목 속에서 인영을 찾아보려 했다. “거기 누구 있어?”

“그렇게 해서 폐가 남아나겠어, 토미 조?”

손에 들린 담배를 땅에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신발 앞굽으로 짓이겼다. “하긴 뭘 해?” 소리가 들린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시선을 맞추자,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 안으로 가만히 서 있는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너야?”

“그 너가 누군지에 따라.”

그는 미소를 지으며,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그 인영을 향했다. “너잖아.” 바로 코앞까지 다가서다시피 했을 때, 그는 두 팔을 뻗어 그 인영의 목을 끌어안았다. “와주지 않을 줄 알았어.”

아담은 좀 더 가까이 토미를 끌어안았다. “나야말로. 스케줄을 옮겼어.” 토미의 얼굴을 보려 조금 몸을 떨어뜨렸다. “대체 얼마나 마신거야, glitterbaby?”

토미는 한 숨을 내쉬며, 살짝 시선을 돌렸다. “완전 많이.”

“Yeah, 그래 보인다. 장인장모님께서 이 모습을 보시면 뭐라 하시려나.”

토미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됐어, 잔소리는 아만다 하나로 충분해.”

아담은 토미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문을 향해 걸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네 피앙세는?”

“안에. 노느라 정신없지.”

“곧 남편 되실 분은 이렇게 버려두고?”

토미는 잠깐 걸음을 멈춰 세웠다. “솔직히 말해서, 나 사라진지도 모르고 있을걸.”

“상상이 간다.” 아담은 토미의 귓가에 조용히 말했다. 문 앞에 다가서자마자, 팔을 내려 정장 앞을 가다듬었다. “어때?”

“완벽해, 언제나처럼.” 토미 또한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미소 지었다. 지금 입고 있는 검은 색 정장 따위 당장이라도 벗어버리고 싶었지만, 선택할 권리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다. 한 숨과 함께, 그는 흘러 떨어진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난?”

“예뻐, 언제나처럼.” 아담은 문을 열며, 짐짓 장난치듯 그를 향해 먼저 들어가란 듯 허리를 숙여보였다. “뭐 조금 취해 보인다는 것만 빼면.”

훽 고개를 돌려, 토미는 입가에 검지를 가져다대었다. “쉿..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돼.”

아담은 토미의 팔을 붙잡아, 살짝 뒤로 끌어당기곤 귓가에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우리의 비밀은 너와 나 사이에서만. 난 아직 기억하는데, glitterbaby.”

토미는 터지려는 웃음을 참았다. “제발.”

룸 안으로 들어서며, 그는 잠깐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누구하나 자리에서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아만다가 널 보면 아주 자지러지겠다. 너 때문에 일이 커지지 않길 바래보자구.”

아담은 발걸음을 멈추고, 손으로 저를 가리키며 물었다. “나?”

“그래, 너.”

그는 인상을 팍 찡그리며 말했다. “내가 무슨 수로? 여기서 취한 건 너 아니었냐.”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아만다를 발견한 토미는 아담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다 알면서 모르는 척 하지마, 락스타씨.”

“젠장, 여기서 까지 이러지 마라.” 그는 끙- 목을 울렸다. “친구로 온 거지, 일로 온 게 아니라고.”

토미는 뒤를 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언제는 아니었나. 현실은 빨리 직시할수록 좋아.”

그의 말에 아담이 무언가 빈정거리는 대답을 흘렸지만, 토미에겐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들리지 않았다기 보단 안중에 없었달까. 그는 지금 많은 사람 사이를 헤치고 나아가는 데에 온 정신이 팔려 있었으니까.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아담의 손을 놓고 그는 아만다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그래, 물론 아만다가 그 한 번으로 돌아볼 리 만무하단 건 알고 있었다. 크게 울리는 음악 소리와 그녀의 목소리가 띄엄띄엄 들려왔다. 그녀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브로드웨이에서의 마지막 연극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친척들뿐만 아니라 만나는 누구에게든 꺼냈던 그 스토리가 또다시 반복되고 있었다. 그녀로부터 아무런 반응을 얻지 못하자, 그는 다시 한 번 어깨를 두드렸다.

아만다는 등 뒤로 힐끗 시선을 던진 후, 잠깐만 기다려 보란 듯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렸을 뿐이었다. 한 숨을 내쉬며, 그는 아담을 뒤돌아보았다. “이거 보라고. 내가 집에 갔었어도 몰랐을 법 하지? 미안.”

아담은 고개를 끄덕이며 씨익 웃어보였다. 아만다의 성격이라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10년간을 친구로 지냈는데 어련하겠어? 그는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신경쓰지마.”

아담의 그 짧은 한 마디가 들린 순간, 아만다는 그 즉시 상대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뒤를 돌았다. “아담, 네가 와줄 줄이야, honey.” 그에게로 다가가 짧은 포옹을 나누었다.

“약혼 파티에 신랑 들러리가 빠져선 안 되지.”

아만다는 한 걸음 물러서서 웃음을 터뜨렸다. “넌 역시 좋은 남자야.”

“뭘 그렇게까지야.” 아담은 어깨너머로 토미를 바라봄과 동시에, 그 표정에 웃음을 터뜨렸다. “네 피앙세에겐 알콜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은데?”

아만다는 토미를 바라보곤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얼굴도 이미 달아오른 게 취해 보여.”

“음? 그게 아니지, 아만다.” 아담은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이건 지루해 보이는 거라고.”

토미는 양 허리에 손을 짚었다. “저어-기요, 나 귀 안 먹었거든요. 아담이 말한 대로 술이나 마셔야겠어.” 그는 귀엽게 아담을 향해 웃어 보인 후, 아만다를 바라보았다. “같이?”

아만다는 고개를 내저었다. “둘이서 마시고 있어. 난 담소 좀 나누고 갈게.”

아담은 아만다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담소라고?” 그는 토미를 바라보았다. “저 녀석이 나랑 같이 스테이지에서 벌거벗고 춤추던 그 애가 맞는 거냐?”

“언제 적 얘길 꺼내는 거야.” 아만다는 그녀의 오랜 친구를 향해 눈 꼬리를 치켜 올렸다.

아담은 토미의 손을 그러쥐었다. “그렇게 오래된 얘기는 아니지. 그때 사진이 어딘가에 남아있을 텐데 말야.”

아만다는 웃으며, 아담의 말에 소스라치듯 말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둘이서 먼저 마시고 있어.” 그녀는 등을 돌리고, 친구들처럼 보이는 여자들이 둘러 서 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내 남자 잘 챙겨. 너무 마시게 하지 말고. 우리 엄마 어떤지 알지?”

토미는 시선을 돌렸다. “대체 누굴 위한 파티인지. 그 여자가 무슨 상관이라고.”

그 말을 듣기에 아만다는 이미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아담은 충분히 가까이에 있었다. 그는 토미의 손을 좀 더 힘주어 꽉 붙잡았다. “장모님이 준비해 주신 거 아니었어?”

그는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그래서 뭐?” 토미는 걸음을 멈추고, 룸 안을 쭈욱 둘러보았다. “오늘 본 적도 없어. 있었다면 이미 진즉에 몇 마디 오갔겠지.”

“하나도 안 변했네.”

토미는 표정을 찡그리며, 바를 향해 앞서 나가는 아담의 등 뒤에 대고 말했다. “전혀. 당연하잖아.”

아담은 어깨 너머로 그를 바라보며, 토미가 너무나도 좋아했던, 그 백만 불짜리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다행이야.”






****




그들이 둘러앉은 테이블은 극도로 조용했다. 토미는 시계를 힐끔거리는 아만다를 보았다. “자기들, 벌써 새벽 2시야. 1시간 째 아무것도 안하고 이러고 있잖아.”

아담은 소파 등받이 뒤로 고개를 젖혔다. “그래서? 무슨 문제라도?”

“아니, 아니, 내 말은 그런 게 아니라.” 그녀는 토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자기 괜찮아?”

토미는 그녀를 향해 웃어보였다. “그냥 취한 것뿐이야… 조금.” 그는 웃으며 아만다를 향해 눈을 찡긋해 보였다. 그리고 손을 들어 그녀의 허벅지 위를 천천히 쓸었다.

“그대로 정지, 꼬마들.” 아담은 소파에 기댄 체, 테이블보를 살짝 들어 올렸다. “지금 이건 무슨 짓일까나, 토미 조?

토미는 아담을 향해 웃으며, 분명치 않은 발음으로 말했다. “지금 질투해?”

아담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지도…약간.” 눈앞의 술잔을 들어 올렸다 다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취했지.”

“그건 우리 셋 다에게 해당되는 것 같은데.” 아만다는 웃었지만, 곧 진지해져선 물었다. “질투라니? 대체 뭐에?”

“음, 글쎄…” 아담은 말끝을 흐리며, 그대로 다시 고개를 등받이 뒤로 떨어뜨렸다. “전부다 일까나.”

토미는 손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나, 나 알아… 그러니까… 지금 아담 램버트 씨는, 그거 있잖아…” 한 번 목을 가다듬으며, 그는 아만다를 바라보며 그녀의 귓가에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오늘 밤은 락스타라는 말은 금지랬어.”

아담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봐, 이봐. 그렇게 까진 말 안했다고… 그냥 친구로 참석하고 싶다는 거였지.”

토미는 그의 말을 싹 무시해버린 채, 계속 말을 이었다. “아담 램버트가 우리를 질투한다니? 매일 매초를 너한테 해롱대는 전 세계 남녀 팬들을 둔 남자가 할 소리는 아니지.”

아담은 미간을 찌푸렸다. “의미가 다르잖아. 그건 사랑이 아니라 그저 날 원할 뿐이라고.” 그는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 “이해할 수 있겠냐?”

“아…그럼 알지, 알고말고. 널 원하지, 그럼, 그럼.” 아만다는 짐짓 비꼬는 투로 웃었다. “그렇게 질투나면 나랑 하루만이라도 바꿔서 살아보자. 인생 살 맛 좀 느껴보게.”

토미는 아만다를 향해 눈을 흘겼다. “아하, 지금은 살맛이 안드시나 보죠, 베이커양?”

아담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고, 곧 이어 기침까지 내뱉었다. “장담하는데,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즐겁지 않아.” 그는 토미를 힐끗 한 번 바라보았다가 다시 아만다를 향했다. “나야말로 너와 하루만이라도 바꿔서 살아볼 수 있다면 좋겠다…”

토미는 살짝 미소를 지어보이며, 소파 깊숙이 몸을 기대었다. “지금 그거 날 원한다는 건가요, 램버트씨?” 그는 딸꾹질을 하며, 아만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담이 날 원한대. 얼른 한 마디 꺼내는 게 낫지 않겠어? 남편의 체면을 생각해서.”

아만다는 아담을 바라보며, 장난스레 화난 척 해 보였다. “Hey, 아담, 내 남편을 탐내다니! 정신 차려.”

아담은 눈을 가늘게 떴다. “누군들 아니겠어?” 한 쪽 눈썹을 끌어올리며, 목을 울렸다. “네 눈으로 직접 봐.”

토미는 눈을 깜빡거리며 말했다. “아- 고마워, 아담. 역시 넌 해야 할 말을 잘 알아.” 그는 잠깐 생각을 정리하는 듯 말을 멈췄다. “취하지만 않았어도, 그 말을 믿었을 텐데 말야.”

“그래서 못 믿겠다?” 아담은 서운한 척해 보이며 물었다.

“그래, 맞아, 아담…” 토미는 아만다를 바라보았다가, 곧 시선을 돌렸다. “우리가 친구로 지낸지 몇 년이지?” 그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올해로 5년이야.”

아만다는 웃음을 터뜨렸다. “자기 시계는 년까지 세주나봐?”

토미는 그녀를 어깨를 살짝 쳤다. “나 취했어…내버려 둬.” 토미는 아담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선, 뭔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코끝을 찡그렸다. “너 나한테 내가 형제 같다고 했어.”

아만다는 소파 뒤로 기대어 팔짱을 꼈다. “형제끼리 붙어먹으려고?”

아담은 허리까지 숙여가며 크게 웃음을 터뜨리는 동시에,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오래 전 일이잖아, 토미.”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 질문의 요지는, 그래서 넌 나랑 할 수 있겠냐는 거지.”

토미는 한 순간 몸을 경직시켰다. 대화는 어느 샌가 그가 원치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만다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시선이 서로 부딪혔고, 그는 그녀를 향해 슬쩍 어색한 미소를 띄워보였다.

아만다는 눈썹을 들어올렸다. “그래서?”

토미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가?”

“대답해봐. 아담과 하고 싶어?” 아만다는 그에게로 가까이 기대어, 작게 속삭였다. “괜찮아, honey. 솔직하게 말해봐. 화내지 않을 테니까. 나도 지금 취했고, 게다가… 우리 아직 결혼한 것도 아니잖아.”

토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 너 나한테 아담과 자라고 부추기는 거야?”

아만다는 두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왜, 뭐 어때서? 생각만 해도 타오르지 않아?”

토미는 시선을 고정한 채, 그녀의 반응에 그저 멍하니 앉아있을 뿐이었다. “말도 안돼. 지금 제 정신으로 내뱉는 소리야?” 그는 조금 소파에서 비켜 앉았다. “너 지금 완전 취한거지?”

아만다는 아담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토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시험 삼아 한번 쯤 해보는 게 나을 지도 모르잖아. 저번에 나한테 그랬지? 남자랑 사겨본 적 한 번도 없었다고, 그러니까 어쩌면…”

젠장, 정말 어이가 없으려니까. 토미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섰다. “Okay, 이제 그만 입 좀 다물자. 그런 얘긴 아무한테나 하지마.”

“아 그만 튕기고오-, 아담이 아무나는 아니잖아. 좋은 친구라구.”

아담은 이 자리가 불편한 듯 보였다. 토미는 순식간에 그걸 눈치 챘고, 그를 바라보았다. “미안, 아담. 네가 좀 이해해줘.”

큭- 아담는 짧은 웃음을 터뜨림과 동시에, 목소리를 낮추었다. “대답은, 토미?”

취기에다 혼란함까지 더해, 토미는 아담을 바라보았다. “뭐?”

“아, 혹시 모를까봐 하는 말인데… 취한 건 나뿐만이 아니야, 안 그래?” 아만다는 그의 손목을 붙잡아 다시 소파에 앉혔다. “난 잘 모르겠지만, 아담… 내 생각엔 토미가 좀 많이 취한 것 같거든. 그냥 그러니 하고 넘어가자.”

토미는 붙잡힌 팔을 비틀어 빼내고, 다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래. 네 말이 그렇단 말이지?” 그는 아담에게로 걸어가, 그의 정면에 섰다. 시선을 떨어뜨리자, 그 바로 아래에 있는 아담의 시선과 부딪혔다. 그리고 씨익 한 쪽 입 꼬리를 끌어올리는 아담의 입술에 온 몸이 떨리는 걸 느꼈다. 젠장, 넘어갈까 보냐. 하지만 그의 미소는 미치게 섹시했다.

토미는 고개를 돌려 아만다를 바라보았다. “내가 취했다고?”

아만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토미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룸 주변을 둘러보았다. 복도를 돌아다니는 사람 또한 없었다. 아담의 무릎 위로 올라가 양 옆으로 다리를 벌리고 소파를 짚자마자, 그는 잔뜩 긴장해버리고 말았다. 대체 이게 무슨 미친 짓이지?

아담은 힐끗 아만다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곧 재밌다는 듯, 한 쪽 눈썹을 쓰윽 끌어올린 후, 토미의 엉덩이 옆을 손으로 붙잡았다.

아담의 손이 골반께로 닿는 게 느껴지자마자, 바로 아담의 무릎 위에 털썩 주저앉혀지고 말았다. 놀란 마음에 올려다 본 사이로, 아담의 두 눈과 마주쳤고, 그는 다시 시선을 떨어뜨렸다.

굳이 뒤돌아 확인하지 않아도, 아만다의 시선이 두 사람을 향해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는 것을 토미는 느낄 수 있었다. 뒤통수가 타들어갈 것만 같았다.

아담이 한 손을 들어 뺨을 감쌌을 때, 토미는 살짝 그의 위에서 몸을 움직였다. 아담은 그 손으로, 토미의 얼굴을 들어 올려 시선을 맞추었다. “그렇게 움직이지 말아줬음 하는데… 무슨 뜻인지 안다면.”

토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았어.” 그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담의 시선을 피해, 다시 고개를 떨어뜨리려 했지만 되지 않았다. 뺨을 감싼 아담의 손은 쉽사리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너네 둘, 언제까지 그렇게 앉아있기만 할거야?” 아만다가 물었다.

여기까지. 아담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자신 쪽으로 천천히 끌어당겼다. 그의 입술을 핥으며, 살짝 민망한 듯한 미소와 함께, 작게 신음을 흘려 넣었다. 아담의 입술로 시선을 떨어뜨린 후, 조급하지 않게 입술을 맞추었다.

서로의 입술이 맞닿았을 때, 토미는 또 다시 전신으로 찌르르 익숙한 전율이 내달리는 걸 느꼈다. 오랫동안 느껴본 적 없었다. 마치 온 몸의 혈관을 떠돌던 감각들이 한 순간 다리 사이로 쏠리는 듯했다.

그 몇 초 사이에, 아담은 손을 들어, 토미의 등을 쓸고 올라가 뒷목을 감쌌다. 토미가 고개를 빼려고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손에 힘을 주어 그대로 붙들었다.

당황함에 토미의 입술이 살짝 벌어지는 틈을 타서, 아담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로 혀를 집어넣었다. 그 느낌에 움찔 몸을 떨던 것도 잠시였을 뿐, 토미 또한 아담의 혀를 찾아 움직였다.

그의 입술은 부드러웠다.
그의 손은 너무도 따뜻했다.
그의 혀는 무엇보다 달콤했다.

갑자기, 아담의 나른하던 움직임은 토미의 입술을 삼켜버림으로써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그에 익숙해지려 토미는 긴장을 풀려 했고, 키스가 끝을 향해 갔을 때엔, 이미 온 몸이 흐물거렸다. 처음의 경악과 당황스러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끈적한 타액의 다소 음란한 소음과 함께 입술이 떨어지고, 아담은 그대로 토미의 뺨을 따라 입술을 미끄러뜨린 채, 그의 귓가 바로 아래에서 멈췄다. “젠장,” 그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생경하게 울렸다.

그렇게 잠깐 동안, 그들은 미동도 없이 앉아있었다. 아만다가 큰 소리로 헛기침을 흘렸을 때서야, 토미는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소감은? 만족했어?”

“인상적이었어.” 그녀는 갸우뚱 고개를 한 쪽으로 떨어뜨렸다. “좀 오묘한 기분이긴 하네. 내 피앙세가 다른 사람과 키스하는 장면을 보는 건.”

토미는 아담의 무릎에서 일어서며 테이블 위를 짚었다. 어쩐지 조금 어지럽기도 했고, 온 몸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담의 키스가 어떤 것이었는지 잊고 있었던 탓이다.

아담은 테이블 위를 짚은 토미의 손 위에 가만히 저의 손을 올려놓았다. “괜찮아?”

토미는 재빨리 아담의 아래에서 손을 빼내었다. “어…”

아만다는 큰 소리로 웃었다. “아담, 네 키스로 우리 자기 무릎이 풀렸나봐. 똑바로 서지도 못하잖아.”

토미는 아만다를 향해 훽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녀가 제정신이었다면, 이런 농담 따위 입 밖으로 나오지 조차 않았을 것이다.

소파 등받이에 걸어놨던 코트를 집어 들고, 방을 나서려 했다. 아만다는 거의 소파에서 뛰어나오듯 했다. “어디가게, honey?”

“집에.”

“잠깐만. 같이 가.” 아만다는 아담을 향해 따라오라는 듯 손짓해 보였고, 두 사람은 출구 벽 쪽에 기대어 서 있는 토미를 향해 걸어갔다.

거리가 좁혀졌을 때, 그녀는 토미를 품에 안았다. “자기, 괜찮아?”

“졸린 것뿐이야.”

“잠깐. 택시 잡아두라고 매니저한테 말하고 올 테니까 기다려. 운전을 맡기기엔 우리 셋 다 제 정신은 아닌 것 같다.”

아만다는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토미에게로 몸을 돌렸다. “화났어?”

토미는 고개를 내저었다. “너한테? 왜? 5년 지기 친구랑 자라고 부추긴거에? 아니, 그.런. 걸로 왜 화를 내겠어?”

그의 토라진 말투에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Okay, honey, 진정해.”

“진정하라고? 나한테? 여기서 진정해야 할 사람은 너야.” 토미는 그녀에게서 빠져나와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그대로 등을 돌린 채로 벤치에 털썩 주저 않았다.  

아만다는 그저 자리를 지키고 서 있을 뿐이었다.

아담이 홀을 빠져나와 아만다에게로 다가갔을 때, 시선 끝에는 토미가 걸려 있었다. “왜 저래?”

“아, 아무것도 아냐. 화나서 그래. 내가 너랑 자라고 부추기는 바람에.”

아담은 다소 비꼬는 듯한 말로 웃으며 물었다. “그것 뿐?”

“그냥 농담이었어… 아마도.” 아만다는 두 눈을 비비며, 눈앞으로 쏟아져 내린 풍성한 블론드의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아, 이제 우리랑은 한 마디로 안하려 들겠네.”

“Yeah, 그렇겠네. 흥미로운 결혼 생활이 되겠어?” 아담은 웃으며 토미에게로 걸어갔다. “걱정할 것 없어, 아만다. 그 녀석이라면 쉽게 용서해 줄 테니까.”

토미는 훽 고개를 돌렸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장담하는데, 아담? 없던 일로 하고 용서해달라고 빌어도 시원찮을 판에.”

아담은 토미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살살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살짝 허리를 숙여, 그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아, 난 없던 일로 하자고는 안할 생각인데. 넌 용서만 하면 돼. 오늘의 키스는 나도 잊기 힘들 것 같거든. 다른 것들도 물론.”

토미는 잔뜩 긴장해버리고 말았다. 아담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움찔 움찔 몸이 경직되는 게 느껴졌다. 아담 또한 그걸 눈치 챘을 것이다. 머리 위로 작게 키득거리는 장난스런 웃음소리가 들렸으니까. 문 앞으로 택시가 도착하는 것이 눈에 들어오자, 그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섰다. “택시 왔어.”

“호텔은 어디로 잡았어, 아담?”

아담은 택시의 문을 열며, 토미를 따라 들어가기 전, 저를 향해 묻는 아만다를 돌아보았다. “칼튼. 그 쪽으로 가겠어? 그 편이 훨씬 가깝고.”

토미는 두 눈을 감고, 아만다의 대답에 대한 기대로 저도 모르게 숨까지 참고 있었다. 한 편으론 그녀의 대답이 ‘물론’이길 바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거절해주길 바랐다. 고개를 흔들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쓸데없는 생각들을 떨쳐버렸다. 그저 키스 한 번이었을 뿐이다. 무엇보다 아담과의 키스라고 하면… 오늘이 처음도 아니다.

단지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건 거의 5년 전의 일이고, 훨씬 어렸을 때의 일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두 사람에게 또한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눈을 뜨고, 아만다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유리창에 기대어 취기에 깊게 잠들어 있었다. 조금 허리를 숙여 그녀의 손을 그러쥐었다. 차 천장까지 들어 올렸다가 놓으니, 그대로 무릎 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녀에게선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단 일말의 움직임도.

“완전히 뻗으셨지.” 아담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토미는 아담을 바라보았다. “우린 집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아.”

“장난해?”

“가는 거야 어떻게든 가면 돼.”

아담은 기사에게 말했다. “칼튼 호텔로 부탁드립니다.”

“아담, 난 분명 집으로 가겠다고 했어.”

“알아.” 그는 토미를 향해 짐짓 화난 표정을 해보였다. “내가 한 말은 말 같지 않았냐?”

토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들었어. 하지만 이 정도는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어.”

아담은 조금 시트에서 몸을 움직여, 토미를 바라보기에 편한 자세를 잡았다. “쓸데없는 고집은 그만 부려. 그 일이 있기 전이었다면, 네가 이런 식으로 거부했을 것 같아?” 그는 잠깐 말을 멈춘 후, 목소리를 낮추어 다시 덧붙였다. “너 지금 이런 웃기지도 않은 행동, 키스 때문이야, 안 그래? 젠장, 고작 키스 한 번이었다고.”

토미는 그에게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도 알아, 하지만…”

“마음에 걸리면 잊어버려. 이 정도로 네가 신경 쓸 줄 알았다면 애초에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아담은 손을 내밀며, 미소 지었다. “이걸로 휴전. 유치한 말싸움은 그만하자.”

토미는 그의 손을 마주잡으며, 미소를 돌려주었다. “응…” 손을 놓고, 아만다를 돌아보았다. 완전히 잠들어 있는 그녀를 확인한 후, 다시 아담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미안, 머저리처럼 굴어서.”

“신경쓰지마.”

그렇게 호텔에 다다를 때까지, 택시 안은 조용했다.
아만다는 잠들어 있었다.
아담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토미는 그 키스를 잊을 수 없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토미는 택시에서 내리는 아만다를 부축해 거의 짐짝마냥 방까지 옮겼다. 아담 또한 침실에 아만다를 눕히기까지 그를 도와주었다. 침대 위에 그녀를 눕히고, 아담은 토미를 향해 눈짓을 보냈다. “옷 벗겨줘, 너무 멀리까지 가진 말고… 무슨 뜻인지 알지?”

“네 호텔인데, 이 침대 우리가 써도 돼?”

아담은 고개를 흔들며,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문을 향해 걸어가다, 잠깐 멈춰서 고개를 돌려 말을 이었다. “이래봬도 별의 별 군데에서 다 자 봤다. 소파라면 그저 감사하지. 걱정마.”

아담이 문을 닫고 나가는 동안, 토미는 슬쩍 웃어보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아만다의 옷을 벗겼다. 그녀가 입은 드레스를 벗기려 6번이나 시도했지만, 결국엔 포기하고, 머리 밑에 베개를 밀어 넣어주는 것으로 끝을 냈다.

그녀의 옆에 누워, 팔꿈치를 세워 고개를 기대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를 사랑한다. 하지만 가끔씩 말도 안 되는 행동으로 고집을 피울 때면 미쳐버릴 것 같기도 하다. 정말로. 오늘 밤이 딱 그런 상황이었다.

그렇게 바라보고만 있길 한 시간,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나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었다. 속옷만 남겨두고. 침실에 딸린 욕실에서 로브를 가져와 걸치고선 거실로 나갔다.

처음엔, 아담을 찾을 수 없었다. 너무 어두웠다. 어둠에 시야가 익숙해지자마자, 소파에 누워있는 인영을 찾을 수 있었다. “자?”

아담은 몸을 일으켜 앉았다. “아직. 무슨 일인데?”

“얘기 할까?”

아담은 소파 위에 놓인 쿠션을 두드렸다. “원대로.”

소파에 앉아, 토미는 힘에 겨운 신음을 삼켰다. “속은 어때?”

“그럭저럭. 취기는 좀 깼어.” 머리칼 사이로 손을 쓸어 올리며, 아담은 가볍게 한 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응, 나도 마찬가지.” 토미는 잠깐 동안 말을 멈추었다가 곧 한 숨을 쏟아냈다. “어떻게 지냈어?”

그에 대답하듯 아담 또한 한 숨을 내쉬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렇게 지옥은 아니었어, 뭐 언제나처럼.”

지금은 밴드에 속해있지 않지만, 아담이 잠시 공백기를 가졌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다음 앨범을 위해 곧 스튜디오로 돌아와야만 했다는 것 또한. 하지만 음악에 대한 소재들은 굳이 들추지 않았다. 대신 그의 사생활 쪽에 관심을 두기로 했다. “남자친구는?”

“글쎄…” 아담은 말을 멈췄고, 신중히 대답하려 숙고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지금은 없어.”

“최근 그 녀석이랑은 어떻게 된 거야?”

“그냥 좋게좋게 헤어졌지. 근데 최근이라니, 꽤나 오래 전이라고?” 그는 조금 웃었다. “TMZ에도 인터넷에도 한 때 들썩거렸었는데.”

토미는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내가 무슨 TMZ 팬도 아니고, 매일이고 확인할 줄 아냐.”

“농담이었어.” 아담은 소파의 팔걸이 뒤로 고개를 젖히고, 토미의 무릎 위에 다리를 올려놓았다. “괜찮지?”

토미는 그의 발을 붙잡아 천천히 눌러주었다. “옛날 생각 나…”

“그러네.”

“응.” 그는 조용히 속삭였다.

적막.

그렇게 몇 분 동안, 두 사람 모두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토미는 계속이고 그의 발을 꾹꾹 눌렀고, 아담은 그 느낌에 취한 듯 얕은 신음을 흘렸다… 오래 전 그 때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솜씨는 여전한데.” 부드러운 목소리로, 토미를 향해 그는 웃어보였다.

“아만다에겐 말하지마… 귀에 들어갔다간 시도 때도 없이 해달라고 조를 테니까.”

아담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나저나, 한 가지 집고 넘어가고 싶은데 말야.”

토미는 손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뭔데?”

“아만다 그 녀석, 정말로 모르는 거냐. 네가 남자랑 경험 있다는 거?”

토미는 손을 올려, 두 눈을 가렸다. 자신이 당황했음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거짓말엔 항상 서툴렀으니까. “지금 꼭 그 얘길 해야겠어?”

아담의 발꿈치가 토미의 허벅지 위를 강하게 눌렀다. “Yeah,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사실과 네 말이 다르니까.”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리고, 힘겹게 소리를 내뱉었다. “제발, 아만다한텐 얘기하지마.” 몸을 움직여, 아담을 마주보기에 좀 더 수월한 자세를 취했다. “우리에 대해서도 전혀 몰라.”

“알면 어때서?”

“지금 농담해, 아담? 알게 되는 날엔 미친 듯이 날뛸 거라고.”

아담은 조금 몸을 일으켜 세워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어째서? 그 때 너희 둘이 데이트를 했던 것도 아니고. 아니, 애초에 그 때의 넌 그 녀석에 대해 알지도 못 했어.”

그의 말이 맞다. 그 운명적이었던 밤 이후로, 아담이 토미에게 직접 아만다를 소개시켰었다.

“무슨 이유건 안돼. 내 말 들어.”

“그 정도로 예민해?” 아담은 난감한 듯 물었다.

“솔직히 말해서?” 토미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무서울 정도로.” 목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우리가 처음 섹스를 했을 때, 나한테 물었던 게 뭐였는지 알아? 너랑 자본 적 있냐는 거였어. 너랑 사귀었던 거 아니냐고. 그리고 난 아닌 척 했어. 거짓말까지 해가며 변명해야만 했던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실을 들키면, 우리 사이가 틀어질까봐 무서웠어.”

아담은 팔을 뻗어, 소파 옆 스탠드를 켰다. “사이가 틀어진다니?”

“네가 아는 그 녀석과 내 앞에서의 그녀는 달라. 스트레잇을 원해. 그리고 지금 스트레잇인 남자를 가졌지. 그걸로 끝.” 그는 대답하며, 체념한 듯 공기 중에 손을 흔들었다.

“말하지 않아?”

토미는 곁눈질로 힐끗 그를 바라보았다. “뭘?”

“남자에게도 어필되는 네 매력.”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몰라. 그랬다면, 분명 내게 뭐라도 한 마디 했겠지.” 아담에게 베개를 넘기며, 계속 말을 이었다. “왜? 그렇게 티나?”

아담은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처음부터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물론 내가 게이인 탓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난 알고 있었어.”

“내가 말했기 때문이었겠지.” 토미는 콧방귀를 꼈다. “뭣보다, 지금은 더 이상은 얘기하고 싶지 않아.”

아담은 고개를 흔들며, 토미의 마지막 부탁은 깔끔히 무시해버렸다. “아니. 널 처음 본 순간부터였어.”

토미는 다시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Okay, 이제 그만하면 안돼?”

“당황할 필요 없어. 난 여전히 그 때 기분 그대로니까. 네 첫 남자로써 나야말로 영광이었지. 그 만큼 날 믿어줬다는 거에.”

토미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가리고 있던 손가락 사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결과가 어떤지 봐.”

“지금에야 말하지만, 그 때 난 드레이크와 사귀는 중이었고, 그날 아침엔 죄책감 때문에 미칠 뻔 했어.”

“알아…”

아담은 토미에게로 좀 더 가까이 몸을 기대어, 두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붙잡아 끌어내렸다.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내가 널 이용했다거나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하고 싶지 않다.”

“이미 끝난 얘기잖아. 5년 전에 이미.”

아담은 강하게 그의 두 손을 그러쥐었다. “알아. 그 때 내 옆이 비어있었다면, 모든 게 달라졌을 거야.”

“그래, 어쩌면. 하지만 그건 모를 일이잖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을지도.”

아담은 표정을 찡그렸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살짝 입술을 떼었지만, 곧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분명, 어떤 말을 덧붙여야 할 지 길을 찾지 못했음일 것이다.

시선을 내리자, 서로에게 얽혀든 손가락이 아담의 두 눈에 들어왔고, 토미 또한 그의 시선을 쫓았다. 아담은 손에 힘을 주어 꽉 움켜쥐고,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아만다 말고 있었어?”

토미는 고개를 들고 살짝 눈을 흘겼다. “당연하잖아…멍청아.”

“아니, 우리 외에.”

“남자는 없었어, 그게 알고 싶은 거라면.” 토미는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담은 훽 고개를 들어 올려 그를 바라보았고, 토미는 그의 놀란 시선이 뭘 뜻하는 지 읽을 수 있었다.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

“글쎄. 그냥 좀.” 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의 말투에 조금 마음이 언짢아졌다. “나 그렇게 가벼운 놈 아냐.”

“알아.”

“쉽지도 않아.”

아담은 웃었다. “알고 있어.”

“그럼 그렇게 쳐다보지 마.”

“그렇게라니?”

토미는 그를 향해 짐짓 불쾌한 듯 시선을 돌렸다. “유감이라는 듯이.”

아담은 옆으로 고개를 기울여, 목옆을 살짝 긁었다. “내가 왜?”

토미는 한 숨을 내쉬며, 소파 깊숙이 몸을 묻었다. “몰라… 그냥 넌 아직도 내가 방황하고 있다는 것처럼 여기는 것 같아. 좀 더 많은 남자와 관계를 가져봤어야 여자와의 섹스에 대해 확실히 했을 텐데, 평생을 그녀와 함께 사려면, 뭐 그런 것들…”

토미의 두서없이 늘어놓는 말에 아담은 두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어쩌면 아만다에게 미안해서인 걸까.” 그는 깊게 한 숨을 내쉬며, 좌우로 고개를 천천히 움직였다. “그래?”

아담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어째서 유감인건데?”

“난 그런 소리 한 적 없어. 네가 지레짐작한 거지.” 아담은 콧방귀를 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궁금했을 뿐이야. 나 외에도 있었을까 해서.”

“왜 그게 궁금한 건데?” 토미는 되물었다.

아담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귓가를 어루만졌다. “지금 네 말투가 어떤지 알아?”

“왜, 내 말투가 어때서.”

아담은 살짝 고개를 숙여, 걱정스러운 듯 그를 바라보았다. “너야말로 스스로 실망한 듯 보이거든.”

토미는 얼굴을 팍 찡그리고, 어이없다는 듯 짧은 숨을 내뱉었다. “웃기지마.”

그 말에 하하-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아담은 소파에서 일어나 술병으로 가득 채워진 바를 향해 걸어갔다. “마실래?”

“은근슬쩍 넘어가려 하지 마.”

아담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전혀… 마시겠냐고 물어봤을 뿐이야.”

“여기서 더 취해야 할 것 같아?”

아담은 물 병 두 개를 가지고 다시 소파로 돌아왔다. “알콜이라고는 안했어.” 토미에게 물 병 하나를 넘기며, 털썩 자리에 앉았다. “어디까지 얘기했었지? 아 그래, 스스로 실망이라고 했었지.”

토미는 그의 손에서 거칠게 물병을 낚아챘다. “난 그런 적 없어.”

“사람 마음 읽는 건 꽤나 자신 있는데.”

토미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냥 자러 들어갈래.”

아담은 그의 손을 붙잡아, 다시 소파에 끌어 앉혔다. “이런, 아냐. 아니고말고. 마음에 걸리는 게 뭐라고?”

그 잠깐 동안 침묵이 흘렀다. 결국 토미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말을 꺼냈다. “모르겠어, 아담… 가끔씩, 아만다는 우리 관계에 대해 완전히 만족하지 못한 것처럼 보여. 아니었다면 너와 하루만 바꿔 살아보자는 말따윈 안 나왔겠지.”

갑자기 자리를 옮긴 아담의 행동에 놀랄 새로 없이, 그는 토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토미, 그 말은 귀가 썩도록 들어 온 말이야. 젠장, 닐도 예외가 아니라고… 그런 말 한마디로 아만다가 만족 못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진 마라.”

토미는 갑자기 거북한 기분이 들었다. 그게 누구라 해도 사생활 중 성생활에 대해 자세히 늘어놓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특히 그 누군가가 몇 년 동안 몰래 가슴에 품어온 사람이라고 한다면.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내 말은 언제나 맞다고, babe. 이제야 깨닫다니 실망인데.”

아담의 손이 토미의 뒷목을 부드럽게 주물러 주기 시작하자, 긴장이 한 번에 풀리는 기분이었다. 좋았다. 앞으로 고개를 떨어뜨리고, 살짝 몸을 움직여 아담의 앞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좋아… 두 손으로 해줘.”

아담은 그대로 했다.

그렇게 10분 정도 지났을까. 아담이 뒷목을 주물러주는 동안 두 사람에게선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어깨 아래로 로브를 끌어내리고, 손길이 조금 더 아래로 내려왔다. “아… 등도?” 조용히 물었다.

“네 눈엔 지금 내가 뭘로 보이냐? 전용 안마사?”

토미는 뒤로 고개를 젖히고, 아담을 향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럴지도.”

아담은 씨익 한 쪽 입 꼬리를 끌어 올렸다. “등도 해달라고? 그럼 로브도 벗어야 될 텐데?”

“완전히?” 급히 숨을 삼키며, 토미는 저도 모르게 로브의 끈을 꽉 움켜쥐었다. 그의 손길에 조금 발기해 버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

아담은 웃으며, 허리 뒤에서 팔을 돌려 그를 껴안았다. 가만히 내려진 그의 손이 잘 여며져 있던 로브의 매듭을 풀어 갔다. 나른하게 움직이는 아담의 손을 지켜보다가 토미는 두 눈을 감아버렸다. 어깨에서부터 완전히 흘러 젖혀진 로브가 소파 위로 풀썩 작은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 순간, 자신이 너무나도 약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벌거벗겨진 채 무방비한.

아니, 그는 지금 무방비했다.
그리고 또한 벌거벗은 채였다.

가슴 앞으로 두 팔을 끌어안았다. 그 행동이 무얼 뜻하는지 눈치 채지 못 할리 없는 아담이 가만히 고개를 숙여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어두운 편이 편할 것 같아?”

토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담은 뒤로 돌아, 램프의 불을 껐다. “좀 나아?”

그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바닥에 누울래?”

토미는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럼 넌 어디에 앉으려고?”

“네 위에.” 그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무미건조했다.

“뭐?”

아담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고 바닥에 앉았다. 러그가 깔린 바닥을 톡톡 두드리며, 그에게 어서 내려오란 듯 손짓했다. “내 옆으로 누워, 됐지?”

로브가 벗겨지지 않게 최대한 움켜쥔 채로 소파에서 일어서서, 토미는 그가 말한 곳에 누웠다.

하체를 덮은 로브가 울지 않도록 편한 자세를 잡자마자, 아담은 그의 등을 꾹꾹 손끝으로 주무르기 시작했다. “긴장 풀어… 아님, 뭐 신경 쓰이는 거라도 있어?”

“아니.”

“확실해?”

조금 억눌린 대답이 흘러나왔다. “응.”

“결혼식 준비 때문이지?”

거짓말을 했다. “응.”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 이유는 한 가지 뿐이었다. 단 한 가지… 아담의 손길에 흥분하고 마는 자신. 이렇게 저조차 주체할 수 없이 흥분하고 만 경우는 그의 인생에 단 한 번 뿐이었다… 아담과의 첫 관계. 얼마나 완벽했었던가. 그때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두 눈을 감고, 기억 속에 묻어 두었던 그 시간 그 때를 떠올렸다. 너무도 약했던 자신… 그리고 미친 듯이 열중해 있었던 자신… 아담에게.

언제가 되어야 벗어날 수 있을까. 그를 향한 이 감정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긴 한 걸까. 이미 답은 알고 있다. 그 길은 오로지 심장이 찢기는 고통뿐이라는 걸. 가슴 깊은 곳으로는,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겪은 아픔 중 가장 큰 괴로움일 것이라는 걸.

5년 전의 그 날에 느꼈던 감정이 지금도 느껴지냐고? 슬프게도, 그 대답은 ‘yes' 였다. 그만큼 깊었다. 그만큼 깊게 빠져들어 버렸다. 어쩌면 곧 아내가 될 여자를 향한 감정보다도 훨씬. 이 얼마나 지독한 감정인가.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비극적이었다.

“토미, 오늘 아만다가 했던 말, 진심이었을 거라 생각해?”

갇혀있던 생각에서 빠져나와, 토미는 살짝 고개를 들었다. “무슨 말?”

아담은 허리를 숙여 그의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시험 삼아 나와 자보라는 것.”

그대로 얼어버렸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다시 호흡을 되찾았을 때서야, 토미는 고개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몰라. 취했었잖아.”

아담은 그대로 입을 다물어 버렸고, 그저 계속 손을 놀릴 뿐이었다.

그 고요함이 어쩐지 불안해졌다. 아담에 대해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는 분명 오늘 밤의 일을 계속이고 다시, 또 다시 되돌려보고 있을 것이다. 그 상황에 있었던 모든 세세한 것들을 잡아내려 하면서.  

“아담?”

그의 대답은 낮고 부드러웠다. “음?”

“깊이 생각하려 하지 마. 그런다고 항상 답이 나오는 건 아냐.”

아담은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토미의 옆에 드러누웠다. “나에 대해서라면 너도 지지 않지, 안 그래?”

“가끔씩은,” 토미는 대답하며 그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담은 등을 바닥에 붙이고 누웠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토미를 바라보며, 한 숨을 내쉬었다. “지금 여기서 작별 선물을 달라고 하면 내가 미친 걸까.”

토미는 그를 향해 표정을 찌푸렸다. “작별? 누구와의?”

“너…일단은.” 그는 눈을 감고, 말을 이었다. “지금 나, 널 안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토미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뭐?”

토미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아담은 조금 더 가까이 몸을 붙여 토미의 입술을 그대로 삼켜버렸다. 그를 밀어내는 대신, 토미는 키스를 받아드렸다. 어린 연인들의 가벼운 키스와 같이 짧은 입맞춤이었을 뿐이었지만, 그 한 번으로 그는 보다 많은 것을 원하게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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