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chine learning 1

by. kriegersan (original link:  here)







2039년 2월 16일


“이봐 꼬마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아저씨한테 얘기 좀 들려줄 수 있을까,” 앤더슨 경위는 말했다. “동생이 죽은 날 밤, 무슨 일이 있었지?”

아이의 이름은 조나단이었다. 나이는 12살. 히스패닉계. 검은 머리칼에 갈색의 눈동자, 하얀 종이 위에 연필로 까맣게 색칠공부를 하고 있는 아이는 건강해 보였다. 가로 8.5인치, 세로 11인치. 디트로이트 경찰 본부에 색칠공부 책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종이는 사용하지 않는 곳이었다. 아이가 타블렛 PC를 거부했기에 이건 분명 앤더슨 경위가 어딘가에서 슬쩍 해온 것이 분명했다. 종이라곤 없는 곳에서 어떻게 종이를 구해온 것인지 코너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기억해 두기로 했다.

코너는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두 손을 올려두었다. 종이의 겉표면 위를 만지고 싶어 손가락이 간질거렸지만 하지 않았다.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이의 손이 종이 위에서 움직이며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에게 배당된 사회복지사의 이름은 펠리샤로, 모델명 KL900-SE인 안드로이드였다. 그녀는 상냥한 미소와 함께 조나단을 내려다보았다. “경찰 아저씨들에게 얘기해볼까?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하는구나.”

앤더슨 경위는 숙취에 시달리고 있었다. 오늘 아침부터 커피만 벌써 3잔째였다. 그로 인한 감정적인 피로는 이미 표정에 여지없이 드러나 있었다.

아이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어깨를 슬쩍 들어 올릴 뿐이었다.

“조나단,” 펠리샤, KL900-SE가 말했다. “힘들다는 거 잘 안 단다.”

“동생이 아니에요,” 조나단이 불쑥 말을 내뱉었다.

“무슨 뜻이지?” 앤더슨 경위가 물었다.

조나단은 그림을 그리던 손을 멈추었다.

“그거. 동생이 아니었다고요.”

앤더슨 경위의 시선이 움직였고, 그건 곧 코너의 차례였다.

“2년 전 너희 부모님은 카를로, YK700 모델을 입양했지. 사실상 네 동생이 맞아, 조나단.”

올려다보는 조나단의 눈가는 사정없이 구겨졌다. “동생은 있었죠. 진짜 동생. 그건 동생이 아니라고요.”

“생물학적 동생이 죽었단 건 나도 알아,” 코너는 말을 이었다. “받아드리기 괴로웠겠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걸.”

그 아이, 조나단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종이 위를 스치는 피부의 작은 소음들.

코너는 다시금 종이를 만지려하는 자신을 멈춰보려 양 손의 손가락을 마주 잡고선 힘을 주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펠리샤는 눈썹을 모았다. “어쩌면 조금 휴식을 갖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군요.”

“어째서 카를로를 죽였지, 조나단?” 코너는 물었다. “왜 동생을 죽였어?”

“죽이지 않았어요.” 조나단은 대답했다. “지금도 엄마랑 아빠 손잡고 저기서 돌아다니고 있잖아요.”

“넌 카를로가 셧다운 될 때까지 망치로 가슴을 내려쳤어. 왜 그런거지? 지금도 카를로는 널 무서워하고 있어.”

“화가 났으니까요. 그 녀석은 항상 원하는 모든 걸 다 손에 넣었다구요.” 조나단은 그림을 멈추었다. “난 밖에 나가 놀지도 못하게 하면서.”

코너는 앤더슨 경위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죽였다고?”

“어차피 새로운 몸에 기억만 업로드 시키면 되는 거잖아요. 메모리는 손상되지 않게 조심했다구요.” 조나단은 작은 목소리로 얼버무렸다. “완전히 죽는 것도 아니면서.”

앤더슨 경위는 팔짱을 낀 채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코너에게로 시선을 향하며 턱을 내밀었다. 펠리샤는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쉬도록 하죠,” 코너는 말하며, 심문의 끝을 알리듯 반사유리 너머 감사관들, 두 명의 인간과 하나의 안드로이드를 향해 신호를 보냈다. 사회복지사는 의자에서 조나단이 내려올 수 있도록 도왔고 앤더슨 경위 또한 의자에서 일어섰다.

코너는 책상 너머로 손을 뻗어 종이 끝을 더듬었다. 그리고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앤더슨 경위는 술집으로 향했다.

술집이라면 네다섯 잔이면 될 터였다. 만약 홀로 집을 향했다면 내일은 보장할 수 없겠지. 코너는 그 뒤를 따랐다. 현재 모든 술집은 안드로이드들의 출입이 허가된 상태였다.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코너가 말했다. “어떻게 동생을 죽일 생각을 할 수 있는 겁니까? 안드로이드든 아니든 간에.”

그리고 눈앞으로 샷 한잔과 맥주 한잔이 놓였다. 코너는 그저 눈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마실 수는 없었으니까. 앤더슨 경위는 잠깐 시선을 맞추었다가 맞은 편 테이블 너머에 앉았다. “제길, 미안하다. 가끔씩 깜빡 한다니까.”

코너는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른 안드로이드들과 비교하더라도 여전히 자신은 살아있는 생명체보다는 기계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앤더슨 경위는 깔끔하게 샷 한 잔을 넘긴 후 손등으로 입을 스윽 닦아냈다. “그래서, 법적으로 평등을 이루는 게 무슨 의학적 치료약이라도 될 거라 생각했던 거냐.” 그리고선 맥주잔으로 손을 뻗었다.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2. “그렇게 멍청한 놈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코너.”

“지금은 안드로이드 범죄 전문 수사팀도 존재합니다.” 코너는 말했다. 물론 이 사실에 대해선 앤더슨 경위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는 이 부서의 부서장이었다. “안드로이드를 상대로 한 범죄 행위는 법정 최고 형량까지도 구형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는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겁니까?”

“꼬마가 알려주지 않았나.” 앤더슨 경위는 맥주잔을 든 손으로 주변을 가리켰다. “피해자라는 놈이 멀쩡히 서서 나돌아 다니는데 살인이고 나발이고.”

코너는 눈썹을 찡그렸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 뭐가,” 앤더슨 경위의 시선은 코너의 머리 뒤로 비치는 LCD 스크린 중 하나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도 경위님은 제가 다치거나 파괴되는 것에 굉장히 신경 쓰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나 하나 네가 뒤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지금 이 상황이 바뀌지는 않아.”

“알고 있습니다.” 코너는 대답했다.

“이 염병할 상황이 하룻밤 만에 휙 해결되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겨우 몇 달이 지났을 뿐이라고, 코너. 이제야 우린 이 변화의 시작점에 서 있을 뿐이다.” 앤더슨 경위는 단 번에 맥주를 들이켰다.

“저라고 모를 것 같습니까?” 말투는 방어적이었다. 목소리에는 힘이 실렸다. “그저 추측해 보는 겁니다.”

“그럼 제대로 얘길 하든가. 나도 ‘추측’ 중이니까.”

앤더슨 경위는 테이블 너머 코너의 몫으로 가져왔던 샷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곤 바로 목구멍을 향해 쏟아지는 액체를 코너는 바라보았다. 혈중 알코올 농도 0.04. 그럼에도 경위는 두 번째 맥주잔에 손을 가져갔다.

“무엇을 추측하고 계십니까?” 코너는 물으며 테이블 앞쪽으로 몸을 기대었다. 앤더슨 경위의 표정 변화와 말투를 읽어내는 것엔 자신이 있었다.

“아직도 전혀 알 수가 없단 말이지. 어째서 나 같은 노인네와 일해야 하는 이런 곳으로 돌아온 거냐. 마커스 그 놈들을 따라갔었다면 지금쯤 저 높은 곳에서 새로운 법률이든 뭐든 만들고 앉아 있을 텐데.”

“저는 정부 운영을 위해 고안된 상위 모델이 아닙니다.” 코너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이걸로 같은 대답만 벌써 일곱 번째인 것 같군요, 경위님.”

앤더슨 경위는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이걸로 너의 그 개소리를 듣는 것도 일곱 번째인 것 같군.”

코너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 프로그램은 망가뜨린 지 오래였다. 그래, 하지만 신경망을 오버라이트(overwrite)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단어를 고르고 골라야만 했다.

“그건 제가 그렇게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코너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경위님과 함께 일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제야 좀 들어줄만 하네.” 앤더슨 경위는 테이블 너머로 손을 뻗어 코너의 팔을 툭 건드렸다. “그리고 염병할 그 경위님 좀 그만 붙일 순 없는 거냐. 친구 사이엔 그냥 행크라고 부르면 된다고 정확히 몇 번을 말했는지는 네 놈이 더 잘 알고 있을 것 같은데, 빌어먹을 놈아.”

“네,” 코너는 말했다. 맥주를 입안에 쏟아 붓는 행크를 향해 남몰래 미소를 띠우며 바라보았다. 혈중 알코올 농도 0.05. “친구 사이엔,”

(그건 지금까지 오직 한 번뿐이었다.)










앤더슨 경위는-

아니. 다시.

행크. 행크는 만취상태였다. 혈중 알코올 농도 0.1.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취한 상태였다. 코너는 자신의 어깨를 감싸듯 팔을 걸친 그를 짊어진 채 걷고 있었다. 그야 바깥 공기가 죽이는구만, 코너. 즐겨보자고. 그리고 그들은 걷기로 했다.

사실, 걷고 있는 건 코너였고 행크는 걷는 시늉 중이었다.

“그 사건,” 행크의 발음은 어눌했다. “기분 한 번 좇같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코너는 물었다.

“무슨 문제라- 그래, 씨발 존나 좇같은 문제가 있지!” 코너를 붙잡고 있던 팔을 풀고 행크는 비틀거렸다. “아이가 아이를 죽였다고, 죽는 게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면서.”

코너는 잠시 멈추어 섰다. 그리곤 행크의 몸을 좀 더 높이 추슬러 올린 후 다시 걸음을 떼었다.

“하긴 그래, 이게 맞는 말이지. 애초에 우린 그게 어떤 느낌인지 몰라.” 행크는 말을 덧붙였다. “인간들은 말이다.”

택시 한 대가 옆을 지나쳤다. 코너는 소리쳐 세울까 했지만, 행크의 정처 없이 내젖는 손짓이 뭔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됐어, 관둬, 코너. 난 지금을 즐기고 있다고- 네 놈과 대회하는 거.”

“대화입니다.”

“뭔들.”

“그냥 떠들고 있다고 하셔도 됩니다.” 코너는 즐거운 듯 대꾸했다.

코너가 마커스로부터 돌아온 이후로 둘 사이에 사적인 대화는 없었다. 그 후 수많은 사건을 맡아가면서 코너는 다양한 전문 지식과 직업 기술을 배웠다. 사람이든 안드로이드든 사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서로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 물론 사적인 질문만큼 흥미로운 것은 없었지만.

코너의 어깨에서 스르륵 팔이 미끄러졌지만 행크는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대로 고개를 돌려 코너를 바라보았다. “이봐, 코너. 오늘 일은 이대로 끝이냐? 이제 집으로?”

“사이버라이프로 돌아갑니다.”

행크는 얼굴을 구겼다. “아직도 지낼 곳을 못 구했다고? 염병할- 진짜냐?”

“지정된 보관 장소가 있습니다.”

“씨발, 진짜 눈물 나는구만. 월급은 받아서 대체 어디다 쓰는 거냐, 코너. 세금까지 낼 권리를 인정받았으면 빌어먹을 집 정도는 장만하라고.”

“전 먹지도, 잠들지도, 배설도 하지 않습니다.” 코너는 말했다. “더러워지면 극세사 섬유로 닦아내면 됩니다. 옷은 한 벌이면 충분하고 개인 용품은 없습니다. 필요도 없죠. 집을 구해봤자 문자 그대로 빈 집일 뿐일 겁니다.”

행크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아니라, 뭐냐, 여자친구를 사귀거나 뭐 그럴 때 필요하지 않겠냐는 거다.”

어떤 이유에선지 코너는 벼랑 끝으로 내몰린 기분이었다. “그건 매우 파렴치한 발언이군요, 행크.”

“오, 지금같을 때만 행크인거냐. 그래서 화라도 나셨나?”

행크는 다시 몸을 돌려 앞으로 걸어 나갔다.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코너를 향해 무심한 듯 손짓하자 코너는 곧바로 뛰어와 옆을 따라 걸었다.

“다 그런 거다, 코너. 인간에게 속한다는 건- 미국인이 된다는 건. 개인의 인간성을 지키는 대신 별 필요하지도 않은 같잖은 것들을 소유하려 하는 거지.”

“전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건 코너 자신에게조차도 자기합리화처럼 느껴졌다.

“좀 전에 그랬었지. 나와 일하는 게 좋다고.” 행크는 한 쪽 눈썹을 슬쩍 끌어올리며 물었다. “그건 네가 원했던 것이 아니었나?”

이론상으로는, 그래, 원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행크를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빈 방에 행크를 가둬두고 그에 대한 세금을 내는 것과는 달랐다. 그건 아마도 극도로 비윤리적인 행위가 될 터였다.

“불량품들이란,” 행크는 말하며 코너의 어깨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아니- 너에겐 인생의 선배가 필요할지도, 코너.”

“전문적 소견에서 저희는 더 이상 불량품이 아닙니다. 그 말은 구시대적이면서 모욕적인 발언이군요.”

“씨발, 그래 니 말이 다 맞다. 요즘 것들은 죄다 썩을 기계 같다니까.” 행크는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제 인생 선배가 되어주시는 겁니까?” 코너가 물었다.

길 끝에 다다라서 그들은 신호가 바뀌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코너는 손목 단추를 만지작거렸다. 행크는 생각에 빠진 듯 발끝을 땅에 붙였다 떼기를 반복했다.

신호가 바뀌었다. 두 사람은 다시 걸음을 떼었다.

“그거 아냐, *내가 생각했으니 존재도 해줘야겠지.” 행크가 말했다.

“정확한 인용구는 ‘나는 생각하기에 존재한다’ 입니다. 데카르트의 1637년 방법서설에 등장한 구절 중 하나이죠.”

“아니, 이 멍청한 놈아,” 행크는 웃음을 터뜨렸다. “해주겠다는 거다, 네 인생 선배.”

“아,” 코너는 말했다.

만약 얼굴을 붉힐 수 있었다면, 지금 이 순간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행크는 코너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단순한 지지대로서의 필요가 아니었다. 애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혁명이 모두 끝난 후 모든 것들이 정리되었던 그 때, 포옹을 나누었던 그 단 한 번의 순간처럼. 인간들은 그와의 접촉을 꺼려했지만, 행크는 달랐다.

“그럼 인생이 걸린 중대한 일부터 처리해 보자고. 오늘 밤은 우리 집에서 잔다. 그 좁아터진 벽장 안에서 입 다물고 쳐박혀 있는 것도 모자라, 눈 뜬 채 슬립 모드로 있을 네 놈을 생각하니 기분이 엿 같아서 안 되겠다.”

“눈은 감을 수 있습니다. 그게 더 편하시다면.” 코너는 말했다.

“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코너. 그게 빌어먹을 지금까지의 핵심이니까. 그럼, 가볼까.”










행크의 집은 그대로였다. 여기저기 어질러져 있는 모습이 마지막으로 봤던 때와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바닥에 총은 없었다. 코너가 잠깐 멈춰 집 안을 스캔하는 동안, 행크는 재킷을 벗어 소파 등받이에 아무렇게나 걸쳐 두었다. 그리고선 부엌으로 비틀비틀 걸어가 또 한 병을 손에 들고 입 안 가득 들이 부었다. 혈중 알코올 농도 0.08.

“편한대로 앉아, *mi casa es su casa. 뭐 한 번 무단침입까지 한 몸이시니 뭐가 어디에 있는지는 나보다 잘 알고 있겠지.”

코너는 일어섰다.

“씨발 좀 앉아 있어라,” 행크가 내뱉었다.

코너는 소파에 다시 앉았다. 언제 다가왔는지 냄새를 맡으려는 스모의 코끝이 손가락으로 느껴져 머리 위를 몇 번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곤 다시 무릎 위로 손을 올려 두었다. 하지만 부족한 듯 스모는 코너의 무릎에 머리를 부딪치며 끙끙거렸고 코너는 다시 머리를 쓸어주었다.

“귀 뒤쪽으로 깊숙이 만져주면 좋아할 거다.” 그렇게 말하며 행크는 한 손에 반 쯤 술이 들어찬 유리잔, 아니 유리병을 들고 거실로 걸어왔다. 커다란 한 손으로 병의 주둥이 부분을 잡고 입으로 가져가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 동시에 다른 한손으로는 스모의 털을 더듬었다. “누가 이렇게 못된 짓을 하나? 음? 스모, 그래, 넌 착한 녀석이지, 아주 잘- 했어.”

“생각해 봤습니다.” 코너가 입을 열었다.

“젠장, 좀 봐줘라.” 행크는 크큭- 작게 냉소를 터뜨렸다. 소파의 다른 쪽 끝으로 자리를 옮기며 무릎 위로 한 쪽 발목을 올려둔 채, 들고 있던 유리병은 스모의 누워있는 뒷발 언저리에 내려놓았다. “뭔데 이번엔.”

“죽음에 대한 겁니다.”

행크의 표정이 일순간에 바뀌었다. 몸을 숙여 한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빌어먹을. 코너, 내가 자원했던 건 인생에 대한 코치지, 자살에 대한 중재가 아니었다.”

“아뇨, 그런-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코너의 두 눈썹이 무언가에 열중하듯 안쪽에 주름을 만들어냈다. 그리곤 행크를 바라보았다. “단지- 저 또한 죽는다는 게 두렵기는 하지만, 그게 인간이 경험하는 죽음과는 조금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엄청난 양의 술이 행크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을 코너는 바라보았다. 벌어졌던 입술이 제자리를 찾을 즈음, 행크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계속해봐.”

“제가 망가진 경우엔 파괴된 부품을 교체하기만 하면 됩니다. 손가락이 잘리면 손을 갈아 끼우면 되고, 노후된 생체 부품은 업그레이드시키면 됩니다. 메모리 저장 장치에 오류가 생기기 시작하면 그저 백업 시켜 새로운 드라이브로 복원시키면 되죠.”

“그래,” 행크가 말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코너는 뚫어질 듯이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보았다. 인간의 손과 같은 형태였지만, 같지 않았다.

“계속, 계속해서 모든 부품을 교체하고 나면, 그건 저입니까? 아니면 새롭게 태어난 누군가입니까?” 잠깐 말을 멈추었다. “저와 같은 버전의 코너가 이 밖에 얼마나 존재할까요? 그들에게 느끼는 이 감정을 그들 또한 똑같이 느끼고 있을까요? 제가 죽는다면 그건 저라는 존재 자체의 끝인 겁니까, 아니면 그저 하나의 버전인 저의 최후인 겁니까.”

행크는 혀를 찼다. “이 대화에 끼기엔 내가 아직 좀 멀쩡한 것 같은데.”

코너는 고개를 들었다. “죄송합니다, 행크. 이런 존재학적인 얘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웃기지 않냐, 코너. 존재학이라니.” 행크는 들고 있던 병을 내려놓았다. “존재 따윈 끝장나버리면 그만이지. 언젠가는 잊혀지는 거다. 네가 없어도 거지같은 세상은 잘만 돌아갈 테고. 물론 있어도 마찬가지, 그게 네 놈이든 네 놈의 다양한 버전이든.” 그리고선 다시 병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인간들은 어떻게 대처합니까?” 코너는 물었다.

행크는 입안으로 액체를 부어 넣은 후, 조소를 내뱉었다.

“지랄맞게.”

혈중 알코올 농도 0.1. 코너는 얼굴을 찡그렸고, 행크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렸다.

“마지막, 약속하지.” 행크는 말하며 목을 한 번 가다듬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건 없냐. 설마 이렇게 다 죽어가는 꼬락서니로 밤새 앉아있을 작정은 아니겠지. 밤은 아직 길다고.”

“뭘 하는 게 좋겠습니까.” 코너는 물었다. 소파 뒤로 몸을 기대고선 행크의 자세를 따라 해보려 했다. 그리 자연스러운 느낌은 아니었다. “인생 선배는 행크잖아요.”

“아, 썩을, 글쎄다.” 행크는 엄지손가락으로 아랫입술을 슬슬 문지르며 다리를 떨었다. “영화 좋아하냐.”

“한 번도 본 적 없습니다.”

하지만 온라인상에서 접속할 수 있는 모든 영화의 시놉시스와 줄거리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굳이 두 눈으로 봐야할 이유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어떤 내용이 이어질지 알고 있었다. 비효율적인 듯 했다.

“한 번도- 그래, 좋아. 그럼 내가 하나 골라주지.” 행크는 TV 리모콘을 손에 집었다. “고전 명작으로.”

코너는 말 잘 듣는 어린아이처럼 가만히 기다렸다. “좋아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게 영화를 보는 이유다.” 행크는 말하며 엄지손가락으로 터치스크린을 몇 번이고 넘겼다.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것. 그리고 그 내용을 이해해 주길 바라는 마음, 더해서 자신까지도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이려나.”

코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영화의 제목은 터미네이터였다. 코너는 좋지도, 그렇다고 이해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솔직히는 오히려 괴로웠다.

“하나도 즐겁지 않았습니다만.”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코너가 말했다.

“좋아, 소신은 있구만.”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행크는 약속을 두 번이나 어겼다. 혈중 알코올 농도는 0.16.

“왜 제게 이 영화를 보여주신 겁니까?”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보곤 했었지. 그때도 물론 논란이 됐던 내용이긴 했지만. 별로였다면 잊어버려.”

“아버지와 함께 보셨다고요?” 코너는 물었다.

“그래, 모든 시리즈에 환장하는 사람이었지. 병신 같은 속편들까지.”

코너는 표정을 찡그린 채 고개를 돌려 행크를 바라보았다.

“…이게 끝이 아닌 겁니까?”

“물론.” 행크는 고개를 끄덕이는 동시에 장난을 치고 싶어 안달난 마음을 숨겨보려는 아이처럼 다리를 떨었다. “뭐 네 녀석은 2편을 더 맘에 들어 할 것 같긴 하다만. 관심 없으면 관두고.”

다음 날 일을 마치고 코너는 결국 행크를 쫓아 그의 집에 머물렀다.

(그리고 정말로, 2편은 꽤나 맘에 드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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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내용은 행크가 ‘Y’know, I think I am,‘이라고 ’(인생 선배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얘기한 건데,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겁나 유명한 명언이 영어로 ‘I think, therefore I am.’입니다. 그래서 행크가 뜬금없이 길가다가 갑자기 말하니까 코너는 명언 얘기하는 줄 알고 뻘소리 하는 거죠. 하하. 이런 말장난이 번역을 헬로 만듭니다.
* ‘내 집이 너네 집’으로 본인 집처럼 편하게 있으라는 스페인식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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