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er halves

by. kiyaar (original link:  here)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전혀 몰랐다. 최근 사이에, 아니 이 세기에서 토니가 만들어 놓은 보안 프로토콜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어느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금요일, 비어있는 토니의 작업실을 발견한 것은 막 중국 음식을 손에 들고 돌아온 스티브였다. 손상된 100 테라바이트의 보안 코드들을 S.H.I.E.L.D.에서 복구시키는 데에만 5일을 버려야 했다.

퓨리는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 스티브를 안심시켰다. 그야 적의 손아귀에 토니를 넘겨주는 것은 여기 있는 그 누구에게도 그닥 좋은 신호는 못될 테니까. 그들은 아마도 토니에게서 얻고자 하는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예를 들면 발전소 같은 것. 스티브는 내장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언제던가 토니는 누군가가 제게서 뭔가를 만들어주길 원하는 것 같다며 넌지시 말을 꺼냈던 적이 있었다. 우리가 알아서 하겠네, 그것이 퓨리가 말한 전부였다.

스티브는 퓨리가 일부러 말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굳이 스티브가 직접 갈 필요가 없다는 것, 그야 S.H.I.E.L.D. 요원들의 임무는 테러리스트와 협상 따위를 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필요한 것은 철저하게 계산된 한 방이었다. 토니는 폭발물질이라든가, 보안 시스템, 그리고 여러 군사 기밀 기술들에 대해 알아도 너무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정부와 손을 잡고 일하고 있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면에서 퓨리는 토니가 가져야 할 책임감에 대해서만을 쉬지 않고 강조해댔다.

스티브는 더 이상 그 곳에 있을 수 없었다. 뱉어낼 수 없는 말들로 목구멍이 꽉 조여드는 것만 같았다. 토니는 책임감이라는 표지판 따위가 아니었다. 한 명의 인간이었고, 한 침대에서 온기를 주고받는 사람이었다. 아니, 다른 이유는 필요 없었다. 지금도 어쩌면 그는 고문당하고 있을지 몰랐고, 그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면서도 스티브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언맨, 아이언맨, 아이언맨, 타워로 돌아가면서도 계속이고 되뇌었다. 언제나 그곳에 있었던, 그리고 지금은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 없는 토니 스타크는 아이언맨이었다.

그 사실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이라면…, 그리고 그 순간 스티브는 지금까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공포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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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데,” 그것이 그들이 처음 토니에게 물었을 때에 듣게 된 첫마디였다.

어쩌면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었던 탓일지도 몰랐다. 그들은 토니를 끌고 왔고(빌어먹을 대낮에, 그것도 아주 뻔뻔하게 지하 작업실까지 내려와 보안 프로토콜을 엉망으로 뒤집어엎은 것도 모자라 목까지 졸라서는), 그 후는 희미했다. 하지만 곧 빛이라곤 들어오지 않는 박스 안에서 두 손은 묶인 채, 의식을 차렸다. 그 안은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추웠고, 고막으로는 거센 공기 덩어리들이 휘몰아쳤다.

그제야 상황이 파악된 토니는 속으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어떡해든 나가보려 손톱이 다 어그러질 때까지 박스 안을 긁어댔지만, 결국엔 얼마 지나지 않아 박스를 여는 그들과 마주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이 첫 번째 실수였다.

아마도 우스웠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조금쯤은 웃었을지도 모른다. 비행기에서 끌려 나와 좇같이 추운 밖으로 밀려 나뒹굴었을 때, 토니는 처음 그들에게 입을 열었다. 옷을 좀 돌려받을 수 있겠냐고. 이후야 어쨌든, 그들은 비밀리에 토니를 어딘지도 모를 지하 벙커로 데려갔고, 여전히 토니는 그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곳의 모든 표시들은 키릴(Cyrillic) 문자로 되어 있었고, 그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AR-74가 쥐어져 있었다. 러시아 특수부대인 스페츠나츠(Spetsnaz), 그들에게 토니는 거액의 돈다발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Yeah, 언제나 이 모양 이 꼴이지.

“간단한 이론이다,” 완벽한 영어로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양성자와 중성자의 연쇄 반응,” 그가 이 모든 일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얀 실험복을 걸친 그는 시대에 한참이나 뒤떨어진 외모를 전혀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거기에 블론드의 머리칼은 전혀 멋들어지지 않았고, 주먹으로 한 대 갈기고 싶은 것을 겨우 생각 끝에 그만두었다. “범죄라고 생각하나? 전혀 아냐.” 철제로 둘러싸인 휑한 방 가운데에 떡하니 위치한 탁자 위에 걸터앉으며 남자는 슬쩍 미소를 띠었다. 무엇이 들었는지 모를 머그컵 위로 혹처럼 툭 불거져 나온 손가락들이 감겼다. “그냥 손 좀 잡을 뿐이지. 넌 과학자로써 할 일을 하는 거고. 이 연구가 성공 한다면 전 세계 과학 업계에 큰 도움이 될 거다. 과학이란 건 원래 다 서로서로 좋자고 하는 짓이니 말야.”

“그건 내 특허가 아닌데,” 토니가 말했다. “미안하군.”

남자는 웃었고,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다시 움켜쥐는 남자들의 무식한 힘에 토니는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공포심을 억누르려 애써야 했다. 그들은 등 뒤로 토니의 두 팔을 꺾어 옴짝달싹도 할 수 없도록 압박했다.

“토니 스타크는 과학의 선구자 아니셨나.” 남자는 꽤나 그럴싸한 말투로 말했다.

“구체적으론,” 토니가 말했다. “돈이 되는 과학의 선구자지. 이봐, 난 핵 가지고 장난치는 취미는- 흐읏,” 그 순간 그들 중 한 명의 주먹이 정확하게 가슴 중앙에 와서 꽂혔고, 토니는 호흡과 함께 비틀린 신음을 내뱉었다. 가슴의 통증으로 보건데, 적어도 갈비뼈 서너 개는 나간 듯 했다. 숨을 헐떡이며 그 이상 움직이지 않으려 애썼다.

“합성하는 방법을 말해.” 남자가 명령하듯 말했다.

어떡해든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만 했다. 토니는 잠시 무릎을 내려다보다가 대답했다.

“싫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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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스티브는 지금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물론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정도는 알 수 있었지만. 퓨리는 이 계획에 그들 중 단 한 명도 개입시키지 않았다. 특히 스티브의 경우엔 더욱 그랬다. 건물의 근처에도 갈 수 없도록 철저하게 배제시켜 두고 있었다. 정확하게 그 이유에 대해 알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퓨리조차 알 수 없었던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그들의 행동은 모두 조심스러웠고, 안이 보이지 않는 창문처럼 외부와는 철저하게 거리를 두고 있었기에 상황에 대한 정보를 이곳저곳에서 마음껏 빼올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어떤 것도 스티브에겐 상관없었다. 어차피 임무를 받지도 못했으니까.

결국 스티브는 퓨리에게로 향했다. 그건 그가 내린 지시처럼 ‘어느 곳에도 가지 않겠다’라는 것을 눈앞에서 똑똑히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전략팀에게 지시를 내리며 지켜보았다. 지층의 30피트 밑까지 뚫어내는 굉음들이 끊임없이 고막을 울렸다. 마침내 그들이 건물의 안으로 들어섰을 때, 스티브는 스스로를 안심시켜야만 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들의 사격 실력에 대해 의심해본 적은 없었지만, 우연으로 토니가 총에 맞게 될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 역시 쓸모없는 의심으로 끝나고 말았다. 토니는 그 곳에 없었다. 그 곳엔 피로 얼룩진 철창과 토니가 입고 있었던(그것도 5일 전에, 어제도 오늘도 아닌 빌어먹을 5일이나 전에!) 옷가지들만이 바닥에 널려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미처 찾아내지 못했던 지상으로 향하는 좁은 터널만이 덩그러니 검은 입을 벌린 채 그들을 반기고 있었다.

그래도 수확은 있었다. 토니의 납치를 요구했던 그 과학자를 붙잡은 것, Cold War의 산물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어 보일 정도로, 심문1실의 의자에 묶여 있는 그는 거의 다 죽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스티브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멋대로 문을 열고 들어가 사정없이 놈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덕분에 그는 2시간 동안 구금되어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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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는 일어설 수조차 없었다.

그것이 어쩌면 그들의 목적인지도 몰랐다. 두 다리로 걸을 수 없도록 하는 것, 또는 그 비슷한 것이라든지. 뭣보다 그 고통은 지금까지 그가 겪어야 했던 모든 진기 명기한 고문들 중에서 가장 높은 순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로 끔찍했다. 가슴에 뚫린 금속 구멍의 타는 듯한 뜨거움도 아니었고, 감전의 아찔함도, 물고문으로 인한 현기증이 날 듯한 느릿한 고통도 아니었다. 그 격통은- 그건 너무도 생생했다. 이 무자비함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녀석은 아마도 신이겠지. 또는 무감증이거나. 사람의 발은 몇 개의 뼈로 이루어져 있었지? 토니는 입술을 깨물며 적어도 손이 아닌 것에 스스로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차마 발을 내려다볼 수 없었다. 물론 처음 한 번은 고통과 충격으로 저도 모르게 시선이 갔었지만, 상태는 참혹했었다. 그리고 지금,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터였다. 깊게는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지팡이 없이 두 발로 걷는다는 게 가능은 할는지, 혹 이제부턴 바닥에 앉아 샤워를 해야 되는 것은 아닐지, 터무니없는 고액의 구두에 발을 집어넣으며 사소한 변명들을 늘어놓은 순 있을지, 그야 파티에 갈 준비를 할 때면 스티브는 항상-

지금쯤이면 스티브도 오지 않았을까.

누군가가 시도를 하긴 했었지만, 어벤져스 팀은 아닌 것 같았다. 희미하게 들리던 소리로 예상하건대, 그건 군대에 가까웠다. 어쩌면 그들 사이에 로디는 있었을지도 몰랐다. 확실히는 알 수 없었다. 구조를 기다리고 있던 그 순간, 끌려 나가고 말았었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게 누구였든 재시도란 없을 거란 것.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란 걸 무엇보다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좋아’라고 대답할까도 생각했다. 그들에게 떠밀려 다시 한 번 철창에 갇혔을 때, 상황은 훨씬 악화되어 있었다. 고통이 너무 심해 제대로 앞조차 볼 수 없었다. 가슴 중앙에 박힌 금속이 비브라늄이라는 것을 그들이 알고는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조차 그들에게 뺏기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또한 궁금했다.

무엇보다 얼마나 이 상황을 더 견뎌낼 수 있을지, 토니는 확신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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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리가 그를 불렀을 땐, 이미 2주가 흐른 뒤였다.

“제가 가겠습니다,” 이번에야말로 몸값을 지불하고 스페츠나츠를 붙잡아 토니를 찾겠다는 퓨리의 설명을 들은 스티브는 채 5초도 지나지 않아 저도 모르게 내뱉었다.

“안돼.” 그리고 퓨리는 함정일지도 모르며, 그를 대비한 전략을 세워야 하느니 마느니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았지만, 스티브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엔 이미 토니의 몸값을 위한 돈을 어디서 어떻게 구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가득했다.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고 해도 스타크(Stark) 기업 쪽에선 회사 내 규율에 해당되지 않는 돈을 순순히 내놓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무슨 수로 페퍼와 연락을 해야 할지, 또 해피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그 생각만으로도 복잡했다. 법적으로 가능한 일이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다짜고짜 은행에 쳐들어가 2천만 달러를 신권으로 내놓으라한들 넙죽 받아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만약 그 일만이 토니를 다시 데려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한다면….

퓨리가 정말로 걱정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스티브는 사실 알고 있었다. 그건 한 명의 남자를 상대로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군사비용이었다. 피할 수 없는 재정적 문제. 그들은 이미 한 번 실패했었다. 하지만 다시 실패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방법을 모색하고자하는 낌새도 없었다.

스티브가 가장 참기 힘들었던 것은 수많은 전략들이 가능함에도 시도하지 않으려한다는 것이었다. S.H.I.E.L.D. 그들에겐 특수 작전팀(special ops)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제 아무리 흉악범에게 고용된 스페츠나츠라고 하더라도 범 앞의 하룻강아지였다. 지금 현재 토니를 거액과 맞바꾸고자 하는 시점에서 그들이 거래를 받아드리지 않는다면, 토니는 곧 다른 누군가에게로 넘어갈 터였다.

누구보다 먼저 스티브는 그 곳으로 가야만 했다.

“살아 있는 건 확실한 겁니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스티브는 스스로 감정을 죽이는 법을 터득해갔다.

“못들은 걸로 하지,” 퓨리의 그 말은 곧 yes를 의미했다. “시간이 좀 필요할 뿐이네, 생각보다 상황이 복잡하-”

스티브는 퓨리의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쳤고, 단단한 오크나무로 만들어진 책상은 너무도 손쉽게 반으로 쪼개졌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으로 클린트는 앉아 있던 자리에서 움찔 몸을 떨었고, 나타샤는 스티브를 붙들어야 할지, 아니면 그와 함께 퓨리에게 달려들어야 할지 두 가지의 선택지 중에서 망설여야만 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가슴 앞으로 팔짱을 낀 채,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게 아닙니다,” 스티브는 냉철할 정도로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허락도 필요 없습니다.”

“Yeah, 그렇겠지,” 퓨리는 말했다. “그래, 자네가 캡틴 아메리카라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네 마음대로-”

“실패한 처음은 누구의 마음대로였습니까.”

“군대가 자네 말을 들을 거라-.”

“물론 듣지 않겠죠,” 스티브가 말했다. “바라는 바입니다. 당신 뜻대로 움직이는 졸병들 따윈 필요 없으니까. 전 제 뜻대로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막을 수밖에,” 퓨리가 대답했다.

“언제든.” 이미 등을 돌린 스티브는 어깨 너머로 날카롭게 대답하며, 터무니없는 액수의 시리얼 번호조차 없는 신권 뭉치들을 구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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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의 요구는 이제 더 이상 이 방정식의 일부분이 아니었다.

그들 셋은 토니를 작은 박스 안에 밀어 넣었다. 저항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붙들면 붙드는 대로, 사지를 묶으면 묶이는 대로, 토니에겐 더 이상 저항할 힘은 남아있지 않았다. 발로 차거나, 또는 팔을 휘두르는 작은 행동도 불가능할 만큼 호흡이 힘들었다. 심지어는 일어 서지조차 못했다. 부러진 갈비뼈는 아직도 낫지 않은 채였다.

“널 경매에 올릴 거다.” 토니의 발을 짓이기기 보단 마치 샌드백처럼 그의 몸 여기저기에 주먹세례를 가하던 한 명이 대뜸 말했다. “그 토니 스타크라니 이거 어마어마한 가격에 팔리겠는걸,”

“내가 훨씬 좋은 가격으로 쳐주지,” 토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른 한 명이 토니의 눈썹 위를 피스톨 그립으로 내려쳤다. 끈적한 피가 이마를 타고 흘러 눈앞이 붉게 물들었다.

“수작부리지마라. 애초에 스타크 기업엔 기대도 안했으니.” 지금까지 거의 몇 마디 꺼내지 않았던 나머지 한 명이 말하며, 자칫 박스 안에 든 것이 폐기물이라도 되는 마냥 사정없이 뚜껑을 닫아 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토니는 어둠 속에 남겨졌다.

만약 그들이 토니의 비명소리를 들었다면, 어쩌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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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는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스티브는 새로운 극세사 소재의 티셔츠 위에 토니가 아끼던 조끼를 입고선 아우디(Audi)에서 내렸다. 토니의 상태를 알 수 없었기에, 최대한 빨리 병원에 가기 위해선 아우디 외엔 없었다. 그걸로 설마 불평을 하진 않겠지.

거래는 부룩클린 하이츠(Brooklyn heights)를 지나, 기차선로와 바다가 만나는 항구에서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다. 반쯤 녹슨 버려진 크레인들과 빈 화물 컨테이너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업무 시간 외엔 인적이란 없는 곳이었고, 스티브 또한 누군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도착했을 때엔,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채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최대한 애써본들 그에게 전략적으로 유리한 시간과 장소를 고를 권한 같은 건 없었을 테니, 시야가 밝다는 것만으로도 우선은 안심이었다.

차에 기대어, 나타샤가 곧잘 하곤 했던 것들을 따라 해보려 했지만, 위협적이긴 커녕 도리어 긴장만 더해졌다. 내장이 죄다 뒤집어진 듯 심지어 헛구역질까지 날것만 같았다. 토니가 살아있긴 한거냐는 제 질문에 퓨리는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않았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행동이 옳은 것인지 스티브는 더욱 알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 처음이었다. 이런 식으로 제멋대로 단독행동을 했던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팀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행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에겐 생소하기만 했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스티브가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을 지, 얼마나 자신의 무력함에 대해 채찍질을 하고 있을지. 그도 그럴 것이 스티브는 한 팀의 리더였고, 상황 속에 발생하는 모든 일들은 그의 책임이었다. 그는 팀원들의 안전을 살펴야 했다. 팀원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알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스티브가 침대에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가 잠에서 깼다는 것을 알아챌만한 유일한 한 사람은 더 이상 곁에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그가 지금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에 대해 그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설마 그가 이런 식으로 단 한 마디 말조차 없이 조용히 행동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까.

세단이 멈춰 섰다. 새까만 형체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유리창너머조차 암흑뿐이었다. 차문이 열렸을 때, 스티브는 갑작스레 치솟는 구역질과 같은 화를 억눌러야했다. 대신 그들에게 위협적으로 보이려 애썼다. 겨우 세 명뿐이었다. 운전석에서 한 명, 그리고 뒷좌석에서 AK-74를 손에 쥔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모두 어두운 색의 청바지에 티셔츠를 걸친 평상복 차림이었다. 그 순간 스티브는 너무나도 쉽게 그들의 거래에 응해버린 자신에 대한 수치심이 스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정말 우습게도 불쾌했다.

“이거이거, 캡틴 아메리카를 보냈구만,” 그 말투엔 러시아 억양이 진하게 묻어났다. 나타샤와 함께 오지 않은 것이 조금은 후회되었다. “조건은 알고 있겠지? 혼자인가.”

“보시다시피,” 누군가를 부르고 싶어도 차고에서 나올 때 이미 휴대폰은 두고 온 상태였다.

“돈은,” 셋 중 블론드의 한 명이 말했다. 그건 물음보다는 명령에 가까웠다.

“말한 대로,” 스티브는 대답하며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부츠 안에 숨겨둔 베레타(Beretta)와 등 뒤에 붙여둔 콜트(Colt). “그 전에 스타크가 먼저다.” 스타크. 그 이름이 이렇게 낯설게 들릴 줄이야. 마치 그 한 마디만으로도 이미 실패한 것만 같았다.

그들은 트렁크를 열고 그 안에서 토니를 끌어냈다. 그는 멍과 상처로 엉망이었다.

토니는 검은색 속옷 외엔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 애초에 피부색이 퍼랬던 것 마냥 멍들이 빈틈없이 번져 있었다. 물론 토니의 상태에 대해 스티브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토니를 바닥에서 일으켜 세웠을 때, 토니는 제대로 서지 못했다. 마치 다리에 뼈가 없는 사람처럼 곧바로 비틀거렸고, 어떻게든 발끝으로 서보려 주춤거리는 동안, 쉬어빠진 신음이 말라비틀어진 입술 사이로 고통스럽게 흘러나왔다. 두 손은 등 뒤로 돌려진 채, 박스 테이프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발목에는 보기에 처참할 정도의 상처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토니는 계속이고 두 눈을 깜박였다. 마치 몇 주 만에 처음 태양을 마주본 사람처럼(아마도 그게 맞을 테지만). 토니가 웃어 보이려 한다는 것을 스티브는 알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은 경직되어 있었고, 작은 움직임에도 말라버린 상처들이 벌어지는 듯 고통으로 인해 잔뜩 찡그리는 표정뿐이긴 했지만.

“Hey, 캡,” 핏물로 빨개진 이빨을 드러내며 토니는 겨우 한 마디를 내뱉었다. 하지만 곧 녀석들 중 하나가 불쑥 토니의 턱에 주먹을 날렸다.

토니의 고개는 힘없이 옆으로 꺾였고, 스티브는 이를 악물었다. 꽉 움켜진 손바닥 안으로 손톱이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저 바보 멍청이가, 젠장, 토니. 안 봐도 훤했다. 아무리 스페츠나츠라 해도 토니에겐 농담거리밖엔 되지 않았을 것이다. 토니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자기 보호’의 ㅈ조차도 모르는 고집불통. 토니는 몸을 웅크린 채 기침을 해댔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흘러내린 핏덩이들이 아스팔트 위로 떨어졌다.

스티브는 급히 트렁크를 열었다. 뭔가 다른 할 일을 찾지 않으면, 당장이라고 그들에게 달려가 단번에 모가지를 다 꺾어버릴 것만 같았다. 물론 그래선 안 된다는 룰따윈 없었지만, 어쨌거나 트렁크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3개의 장전된 총구가 그를 향했고, 토니의 목덜미 아래로 날카로운 칼날이 번쩍였다.

토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스티브는 그가 마른 침을 삼킬 때마다 목젖이 위 아래로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움직임에 따라 칼끝이 닿은 곳에서부터 가는 핏줄기가 토니의 가슴 앞으로 서서히 흘러 내렸다.

“돈 가방이다, 빌어먹을,” 스티브의 그 말에 심기가 불편한 듯 그들은 눈썹을 실룩거렸다. 며칠이나 밤을 샌 탓에 스티브의 긴장된 시야는 마치 안개가 낀 듯 흐렸다. 단 1시간만이라도 잠을 잤더라면, 또는 적어도 토니의 상황이 이렇게까지 좇같지 않았더라면, 그는 아마도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토니를 안전하게 구하기 위한 계획을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어떡해든 그에게 득이 될 만한 행동들을 찾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몸은 피곤했고, 머릿속은 복잡했다. 돈이 든 가방을 트렁크에서 꺼내 블론드의 남자가 서 있는 곳으로 던져놓았다.

“스타크를 이쪽으로 넘겨,”

스티브의 말에 그들은 토니를 보내기는커녕, 블론드 녀석이 앞으로 나오며 재킷 안에서 작은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아마도 Starktech의 물건 같았다. 그 외에는 그 누구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블론드는 그 물건을 가방 위에 두고 천천히 스캔을 하기 시작했다. 스티브는 초조하게 트렁크 위를 손가락으로 가만히 두드렸다. 물론 초조할 일은 없었다. 그 가방은 분명 제가 직접 확인한 후 준비한-  

삡삡- 기계로부터 소리가 울렸다.

스티브는 급히 고개를 들었다. 심장이 목구멍을 뚫고 튀어나갈 것 같았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체 언제, 어디서- 라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그들은 다짜고짜 토니를 바닥에서 끌어올렸고, 토니는 제대로 서지조차 못했다. 그건 이제 곧-

“혼자오라고 말했을 텐데,” 블론드가 굵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속임수였나.”

분명 혼자였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절대 그럴 리 없다 스티브가 말하려 입을 벌리는 순간, 수면 위로 드론(무인 비행기) 한 대가 치솟았고, 순식간에 그들 뒤로 있던 자동차는 시꺼먼 연기를 토해내며 폭발했다.

씨발.

경고하듯 쏘아대는 미사일에 스티브는 재빨리 트렁크 뒤로 몸을 숨겼다.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퀸젯(Quinjet)이 이 위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엔진이 공전하는 소리가 들렸고, 수평을 유지하려는 안정장치의 미세한 소음이 공기를 울리고 있었다. 가방에 GPS를 장치한 것은 보나마나 퓨리였을 게 분명했다. 이 일이 마무리되면 어쩌면 스티브는 팀에서 축출 당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 이번엔 자동 연사 미사일인가, 기가 막히네. 그는 재빨리 트렁크에서 쉴드를 꺼내들었다.

곧 실체화된 퀸젯으로부터 엄청난 소음의 발포가 시작되었다.

나타샤의 목소리가 스피커로부터 터져 나왔다. 러시아어로 말하는 그녀는 항상 평소보다 훨씬 더 거칠곤 했다. 아니, 어쩌면 그녀는 지금 스티브만큼이나 화가 나 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사이로 몇 마디의 러시아어들이 더 섞여 나왔다. 그건 아마도 스페츠나츠 녀석들일 게 뻔했고, 그들은 어떡해든 폭격을 피해 선착장 밑으로 몸을 숨기려 하고 있었다. 누구의 생각인지는 몰라도 우습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었다. 채 300m를 벗어나기도 전에 클린트가 곧 제거-

토니는 온 몸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아니, 저항이라고 하기엔 무척이나 빈약했다. 그의 두 발은, 스티브의 시선은 오직 토니의 발을 향해 있었고, 그 곳엔 온통 보라색의 멍들만이 가득했다. 토니는 제대로 된 중심을 찾지 못했고, 비틀거리며 발버둥을 칠 때마다 고통스러운 숨을 몰아쉬었다. 그것이 거슬렸던지, 토니를 붙잡고 있던 한 명이 토니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아마도 그렇게 하면 토니는 선착장 위로 쓰러질 것이고, 저항을 멈출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것일지 몰랐다.

하지만 토니는 선착장 끝에서 단 한발자국을 남기고 있던 상태였고, 바닥에 꼬꾸라지는 대신, 반대 반향으로 무너졌다.

스티브에겐 더 이상 녀석들의 생사여부 같은 건 상관없었다.

망설임 없이 쉴드를 던졌다. 어떤 방향으로 어떤 곡선을 타고 날아가든 지켜보고 있을 시간 따윈 없었다. 공기를 뚫고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살을 갈라내는 소리가 들렸을 때서야 비로소 제대로 던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녀석들을 무장해제 시키기 위함이 아닌, 머리통들을 잘라내기에 정확했다는 것을.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치 않았다. 토니가 물속에 가라앉고 있었다. 토니의 손은 뒤로 묶인 채였고, 토니는-

스티브는 곧장 강으로 뛰어들었다.






- - -





수면 아래로 떨어지자마자, 토니의 시야는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빛이라곤 없었다. 눈을 떠보려 애썼지만, 마치 화상과 같이 쓰라린 고통 탓에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필이면 허드슨 강이라니, 빌어먹을-

가라앉고 있었다. 끊임없이 밑으로 빨려 들어갔다. 수면 위로 떠올라야 함을 알고 있었지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안돼, 안돼, 이렇게는 -

숨을 쉴 수 없었다. 산소는 순식간에 차단되었고, 다시 한 번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 때 그 순간의-

추웠다.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추었다. 폐 속을 채우고 있던 공기마저도 갈기갈기 찢겨지는 것만 같았다. 숨을 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순식간에 떨어졌다. 가라앉는 순간, 어느 곳이 수면이고 어느 곳이 강바닥인지 조차 알 수 없었다. 박스 테이프로 단단히 감겨 있는 손목에 더해 두 발은 부러진 채였다. 손목을 이리저리 비틀고 뒤틀어도 좇같은 테이프는 벗겨지지 않았고-

“그만,” 토니는 가쁜 숨 사이로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입을 벌려 말을 한 것이 전혀 생각 없는 짓이란 걸 뼈저리게 느꼈다. 물이 가득 흘러넘치는 커다란 버켓 속으로 고개가 다시 쳐박혔을 때, 마치 송곳으로 가슴을 들쑤시는 듯한 고통을 느꼈을 때, 근육은 경련했고 토니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끊어진 와이어들이 곳곳에서 불꽃을 튀기고 있는 걸 봐서는 당장이라도 심장마비라도 걸릴 것 같았으니까-

어두웠다. 숨을 쉴 수 없었다. 온 신경이 얼어버린 듯 추웠고, 누군가 머리를 짓누르는 듯 했다. 그리고-

머리카락이 뽑혀나갈 것처럼 그들은 토니의 머리통을 붙잡아 사정없이 끌어 올렸다. 고막으로 몸속의 모든 피들이 몰린 듯 했다. 시야는 어두웠고, 어느 것 하나 선명히 보이는 것이 없었다. 가슴이 타들어갈 듯 고통을 호소할 새도 없이 질식할 것만 같았다. 또 다시 반복이었다. 코끝이 버킷의 바닥에 닿았을 때, 이대로 죽을 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바로 이 시간 이곳에서-

이대로 죽을지도 몰랐다. 목구멍까지 타고 오른 숨이 온 혈관을 막는 듯 했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라 그 안으로 남아 있는 공기들이 모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좋아,” 간신히 말을 꺼냈다. “좋아, 알았으니까, 알겠으니까, 이제 그만, 제발-”

돌연 가슴 앞으로 단단한 두 팔이 감겼을 때조차 저항할 수 없었다. 더 이상은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 - -





제발, 선착장 밖으로 간신히 몸을 끌어올렸을 때, 스티브의 머릿속엔 그 한 단어뿐이었다.

손이 묶여진 채의 토니의 몸을 최대한 조심히 돌려 눕혔다. 그제야 제대로 눈앞에서 보게 된 토니의 모습은 지독했다. 마치 밀랍인형처럼 차갑고 창백했다. 피부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토니,”

숨을 쉬지 않았다. 가슴의 움직임 또한 전혀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목덜미에 가져대 댄 손끝으로 박동이 느껴졌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아크 원자로라는 것에 CPR이란 게 소용이 있긴 한건 지, 만약 있다고 해도 과연 해낼 수 있을 지, 이대로 토니가 죽는 것은 아닐지, 그저 이대로-

아니, 집중해야 했다. 토니의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선 입술 사이로 흘러 떨어지는 구정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선 토니의 코를 막고 망설임 없이 입술 사이로 숨을 흘려보냈다. 평소와는 다른, 다듬어지지 않은 토니의 짧은 수염이 뺨을 스쳤다. 맞댄 입술 사이로 끊임없이 물이 차올랐다.

“스티브.”

클린트였다. 스티브는 어깨를 짚은 클린트의 손을 쳐냈다. 온 몸을 적신 물방울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무릎을 꿇은 채, 토니의 입술 사이로 귀를 가져다 대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피부는 얼어버린 듯 차갑기만 했고, 손끝 하나 조차 토니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실낱같은 심장 박동만이 희미해지고 있을 뿐이었다. 안돼, 안돼, 이렇게는-

“의료팀은?!” 목소리는 잔뜩 날카로워져 있었다. 두려웠다. 차라리 화에 삼켜지는 것이 공포에 떠는 것보다 몇 천배는 나았다. 클린트의 대답을 들을 것도 없이 스티브는 또 다시 토니의 입 안으로 숨을 불어 넣었다.

“오는 중이야,” 클린트가 말했다. “지금 곧, 으아, 으, 젠장-”

토니의 압박되어 있던 내장기관이 팽팽해지며, 토사물이 입 밖으로 쏟아졌다. 등을 대고 누운 채라, 물과 함께 쏟아진 이물질들은 그대로 뺨을 타고 흘러내려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조금만 더,” 스티브는 작게 속삭이며, 토니의 입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고 토사물을 끄집어냈다. 그리고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평소라면 멍청하다 여겼을 지도 모를 일이었고, 다른 누군가의 일이었다면 곁에서 말렸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금 그가 기꺼이 하고자 하는 일은-

“스티브,” 클린트의 목소리는 걱정으로 살짝 격앙되어 있었다. 스티브는 곧바로 그 변화를 알아챌 수 있었다. 불확실함에 의한 두려움, 토니의 호흡이 이대로 이어지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 “퓨리가-”

“지금은 아냐,” 스티브는 다시 한 번 토니에게로 숨을 불어넣었다. 퓨리가 무엇을 말하든, 어떤 행동을 취하든 상관없었다. 이번 일은 전적으로 자신의 탓이었다. 혀끝으로 토사물의 쓴 맛이 느껴졌다. 그 어떤 일이 벌어진다 해도 이곳에선 절대 발 끝 하나 움직이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 아무리 퓨리가 몇 백의 기갑 부대를 끌고 온다 해도-

아직까지도 물속인 듯 토니가 가쁜 호흡을 헐떡였을 때, 스티브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터뜨릴 뻔 했다.

“빌어먹을,” 어울리지 않는 욕설이 터져 나올 만큼, 그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토니의 얼굴을 감싸려 손을 뻗는 것이 자신의 손과 팔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몇 인치를 남겨둔 채 그대로 손을 내려야만 했다. 할 수 없었다. 이곳에선. 클린트가 보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몇 있었기에. 나타샤는 퓨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엔 또 다른 퀸젯이 착륙을 시도하고 있었다. 토니는 계속이고 기침을 해댔다. 제대로 뜨지도 못하는 두 눈을 힘겹게 깜박이며 스티브에게로 초점을 맞추려 하는 동안에도 토니의 입 밖으론 여전히 불규칙한 호흡들이 멋대로 터져 나왔다. 한 번 호흡을 삼키고 내쉬는 그 움직임만으로도 힘겨운 듯 토니의 온 몸은 사시나무와 같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토니는 입술을 깨물고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묶여진 두 손을 풀어주어야 했기에 스티브는 토니의 머리 쪽으로 가서 그를 일으켜 앉히려 했다. 클린트는 급히 그 자리를 떠났고, 토니의 피부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스티브가 토니의 가슴 앞으로 한쪽 팔을 두르자, 아직 제대로 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 토니로부터 얕은 신음이 미약한 저항과 함께 흘러나왔다.

“이제 괜찮아, 미안,” 스티브는 토니의 손목에서 테이프를 찢어내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진정해, 이제 괜찮으니까. 토니, 나야. 너와 나뿐이야.”

토니의 호흡은 천천히 제 박자를 찾아갔고, 테이프가 풀어지자마자 토니는 떨리는 가슴 앞으로 두 팔을 모았다. 그리곤 스티브를 올려다보았다. “더럽게 추운데,” 마치 아기의 옹알이처럼 웅얼거리듯 말을 내뱉는 그는 스티브가 지금까지 보아온 중 가장 힘겨워 보였다. 파랗게 질린 입술은 그 추위가 눈에 훤히 보일 정도로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정말이지,” 스티브를 향해 있던 시선이 파르르 떨리는 긴 속눈썹과 함께 바닥을 향했다. “진짜 싫군.”

“알아,” 스티브는 잊지 않고 있었다. 아니, 잊어선 안 되었다. 슈트를 입지 않은 토니가 얼마나 평범한 인간인지를, 얼마나 약하고 망가지기 쉬운 인간인지. 재킷은 입고 오지 않았었고, 그나마 입고 있던 셔츠도 물에 빠진 꼴이었다. 그렇기에 차선의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토니를 끌어당겨 조심스레 품에 안았다. 토니는 여전히 바들바들 떨고 있었지만, 호흡은 어느 정도 안정을 취한 듯 보였다. 스티브는 얼른 두 팔로 토니를 감싸 가슴 앞으로 가득 끌어안았다. 어깨 위로 고개를 파묻은 토니의 몸이 경직되는 걸 느꼈다. 이런 순간에조차 토니는 스티브에게 기대지 않으려 스스로 애쓰고 있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터져 나오려는 감정을 억누르려는 것처럼. 토니의 젖은 숨이 목덜미 너머로 느껴졌다.

“돌아가자,” 스티브의 목소리엔 걱정이 잔뜩 묻어 나왔다. 손을 올려 토니의 젖은 머리카락 아래로 드러난 뒷목을 감쌌다. “걸을 생각하지 마. 이대로 내가-”

“로저스!” 퓨리의 잔뜩 성난 외침이 들렸다.

“네 이름 같은데-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진 않네,” 토니는 스티브의 목덜미에 밭은 숨을 뱉어냈다.

“신경쓰지 마,” 스티브가 말했다. “그것보단- 아, 이런, 토니,” 피부 위로 닿는 토니의 떨리는 호흡에 스티브는 짐짓 토니가 울음을 삼키려 애쓰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 귓가에 속삭이는 토니의 목소리는 스티브만이 겨우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낮고 조용했다.

스티브는 울컥 치밀어 올라오는 덩어리를 삼켜 넘겼다. 어느덧 가까이 다가온 클린트의 온다, 스티브, 퓨리가 다가오고 있다고 라는 속삭임 따위는 들리지도 않았다. 그저 토니를 안은 팔에 더욱 힘을 줄 뿐이었다. “지금, 여기 이렇게 있잖아,” 그렇게 말하는 스티브의 심장은 마치 젖은 걸레처럼 이리저리 꼬이고 비틀려 끊어져나갈 것만 같았다. 토니의 말에 아니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었다.






- - -





주먹이 오가지 않은 건 솔직히 말해 놀라운 일이었다. 5분 전만해도 온 건물이 떠나가라 퓨리는 스티브를 향해 호통을 쳐댔고, 그들은 토니를 들것에 실어 퀸젯으로 옮겼다. 그리고 토니는 떠났다. 규율을 어긴 것에 대해 스티브와 퓨리가 여전히 입씨름을 하고 있는 그 잠깐 사이에. 그 규율은 제가 만든 게 아니라는 스티브의 말에 퓨리는 또 다시 눈알을 뒤집을 것처럼 보였다. 물론 체첸 공화국(러시아 남부의 자체 공화국)인지 뭔지 들어본 적도 없는 곳의 어느 거물급 미치광이에게 토니가 팔려 나가는 꼴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는 더욱 없었거니와.

한 시간 후(호송을 기다리느라)가 되어서야 스티브는 헬리캐리어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는 이론적으로 모든 군 임무에 대한 권한을 박탈당한 채였다. 우스웠다. 그 징벌성 박탈권이 부적절하다는 것에 토니의 변호인과 서류를 작성하고 있어야 함은 사실 더욱 웃긴 일이었다.

두 의료 시설 중 작은 곳으로 향했던 토니는 한 시간 만에 퇴원 수속을 마쳤다. 스티브는 홀에서(이 곳에선 연인이 아니라 캡틴 아메리카였으니까, 공과 사는 확실하게 구분해야만 했다) 토니를 기다렸다. 휠체어에 앉아 복도로 나오는 토니는 여전히 허름한 입원복을 입은 채였다. 스티브는 저도 모르게 두 눈을 감고선 타워에서 제대로 된 옷을 가져와 그에게 입히고 싶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선을 넘는 행동이었다. 물론 확실하게 그렇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토니에겐- 토니는 필요로 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토니,” 스티브가 말했다. “벌써 나가도 되는 건가,”

“나가라던데,” 토니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휠체어를 끌어주던 간호사는 곧 스티브를 보고선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고, 스티브는 마치 스프링처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토니에게로 걸어왔다. 지독했다. 토니가 진통제에 취해있을 거라는 건 굳이 묻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힘이라곤 없는 말투와 말려들어가는 듯한 흐린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했다. 상처투성이의 손가락으로 손목에 감긴 붕대 위를 만지작거리는 토니의 시선은 벽을 향해 있었다. 그 모습에 여전히 아픈 것은 아닌지, 스티브는 문득 걱정이 되었다. 손목보다 훨씬 두꺼운 붕대가 몇 겹이고 감겨 있는 발끝으론 발가락들이 톡 튀어나와 있었다. 그 중 성한 부분이라곤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멍으로 검게 부어오른 채였다.

스티브는 마른 숨을 삼켰다. 조금 더 일찍 결단을 내려야했었다.

“잘됐네,” 뭔가 토니의 기분을 낫게 해 줄만한 말이 필요했다. “집으로 가는 편이 낫겠지,” 그렇게 말한 후, 스티브는 바로 혀를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다. 집이라니, ‘타워,’ 라고 했어야 했다. 집이라는 건 보통 서로가 같이 사는 곳을 일컫는 말이 아니었던가. “괜찮다면,” 옆으로 서 있던 간호사를 향해 말했다. 어쩌면 조금 무례하게 들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 미소와 함께 다소 미안한 듯한 웃음을 보이며 선뜻 스티브에게 자리를 건넨 후, 복도로 돌아갔다. 그야 캡틴 아메리카의 부탁에 어느 누가 거절을 말할 수 있겠는가.

토니는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마치 자신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아니, 어쩌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지도 몰랐다). 심장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덜덜 떨고 있는 토니를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참을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그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이제는 괜찮다는 위로의 키스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토니의 발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놈을 다시 끌고 와 발목의 뼈를 전부 으깨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퓨리는 그 이유에 대해 물을 것이 뻔했고, 그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그야 모든 사람들의 눈에 그들은 그저 동료로만 비춰질 뿐일 테니까-

“토니,” 스티브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여기서부턴 클린트가 오기로 되어 있어.”

“네가 아니라?” 토니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난 보고할게 있어서,” 스티브가 말했다. “상황이 상황이니까. 오래 걸리진-”

하지만 토니의 기분은 순식간에 침울해졌다. 피부 위를 가득 장식한 멍들보다도 축 쳐진 어깨가 더 안쓰러워 보였다. “그런 건 안 가도 돼,” 평소라면 건방진 소리가 되었겠지만, 지금 토니의 목소리에선 전혀 그런 낌새를 찾을 수 없었다.

“그야,” 스티브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자신은 가지 않을 테니까. 물론 또 퓨리에겐 한 소리 듣겠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었다. “그래.”






- - -





“더 필요한 건?” 스티브가 물었다.

토니의 몸엔 거의 몇 십 개의 담요가 칭칭 감겨 있었다. 거실의 소파에 앉아 있는 건, 지하에 마련해 둔 푹신푹신한 소파보다야 훨씬 불편한 일이었지만, 클린트가 몰고 온 건 많고 많은 이동 수단 중 헬리콥터였고, 지금의 토니에겐 작업실의 근처의 근처라도 가고 싶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이 악몽이 시작된 그 곳에만큼은.

“떨리는 게 멈춰지지 않는데,” 토니의 시선은 그 어느 곳도 향해 있지 않았다. “멈출 수가 없어.” 돌연 호흡이 튀어 올랐고, 입술은 바들바들 떨렸다. 그 모습에 스티브는 당장이라도 그를 품에 안고 싶었다. 겁에 질린 어린 아이 같은 그 모습은-

“토니,” 스티브는 그 어떤 당혹스런 감정도 목소리에 드러나지 않도록 숨겨야 했다.

“물이 싫어졌어,” 토니가 말했다. “씨발, 물이 싫어졌다고.”

“알아,”

“거의 참을 수 있었는데,” 토니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서핑이 가고 싶을 땐 어쩌지? 서핑을 하려면, 젠장.” 꽉 깨문 아랫입술은 아무런 색도 띄고 있지 않았다.

“참을 필요 없어,”

“욕조에서 섹스는?” 세상이 버린 여주인공 마냥 더 없이 슬픈 토니의 표정에 스티브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 했다. 그 눈 꼬리에 매달린 눈물만 아니었다면 정말로 폭소를 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건 진짜 해야 하는데, 빌어먹을-”

“잠시,” 스티브는 토니가 꽁꽁 싸매고 있던 담요를 살짝 벌리고선 그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맞닿은 피부를 통해 직접 그 온기가 전해졌다. “좀 낫나,” 솔직히 그래도 되는 것인지 판단하기 전에 몸이 먼저 나선 일이라 확신할 수 없었다. “괜찮겠어?”

“Yeah,” 토니의 대답에 스티브는 등 뒤로 기대어 가슴 앞으로 토니를 끌어안았다. “훨씬, Yeah,”

괜찮아야만 했다. 축복받은 일이어야만 했다. 그만큼 스티브는 필사적이었다. 다시는 토니를 품에 안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었으니까. 어깨에 머리를 기대오는 토니의 떨리는 숨이 가슴 앞으로 느껴지고, 그의 시선은 그저 닿는 대로 머물 뿐이었다.

“토니,” 그 이름 외에 어떤 말을 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대체 어떤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나한테 화났겠지,” 토니가 물었다.

“아니,” 스티브는 대답했다. “그럴 리 없잖아, 토니, 그건-”

토니가 살짝 몸을 떼어냈을 때, 토니의 얼굴이 닿아있던 스티브의 셔츠는 젖어 있었다.

“말할 뻔 했어,” 스티브의 목에 고개를 파묻으며 토니가 말했다. “다 말해버릴까 생각했었다고. 젠장, 미안.”

“누구든 그랬을 거야,” 스티브는 조용히 타일렀다. 물론 그 말에 거짓은 없었다.

“넌 아니었겠지만.”

“나도야,” 스티브는 위로하듯 토니의 팔을 아래위로 쓸어주었다.

“아니, 너라면 거기 있던 녀석들 전부 때려눕히고 빠져나왔겠지,” 토니의 목소리는 다시금 잔뜩 풀이 죽어 있었다. “애초에 캡틴 아메리카는 어떤 상황에서도-”

“말했을 거야,” 스티브가 말했다. “네가 위험했다면.”

“견딜 수 없었어. 빌어먹을.” 토니는 손등으로 스윽 눈가를 훔쳤다. “괜찮았어,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이건 모르핀 탓이야.”

“아직도 통증이 심한가,” 스티브는 물으면서도 이 질문만큼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생각했다.

토니는 살짝 젖은 웃음을 터트렸다. 목 주변으로 흩어지는 작은 숨이 피부 위를 간지럽혔다. 행운이었다. 아니, 이건 거의 신의 기적에 가까웠다. “진통제라면 브루스의 연구실에 널렸을 텐데.”

“아니,” 스티브가 말했다. “이미 충분히 약에 심취된 듯 보이니까.”

“취해,” 토니는 웅얼거렸다. “취한 거야, 요즘 세상에 그런 노인네 같은 말은 아무도 안 써.”

“그렇군,” 스티브가 대답했다. “퍼코세트(Percocet;마약류의 진통제)를 처방했던데, 클린트에게 부탁해 놓아야겠네.”

“좋아,” 토니가 말했다. “이대로 일어날 생각하지 마.”

“언제까지 이대로 있을 순 없어.”

“안될 건 뭐야.”

“결과가 어쨌든 규정 상 원칙을 어긴 건 변함없으니,” 스티브가 대답했다. “지금 당장 문을 때려 부수고 쳐들어온다 해도 의심할 여지가 없지.”

“원칙 따윈 집어쳐,”

“그런 분노는 처음이었어,” 스티브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 퓨리가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어떡해서든 그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던 방법이 있었는지도 모른다(아니, 받아냈어야만 했다). 모든 것에 대해 애초에 털어놓았더라면 가능했을 수도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기 전에 필요하다 생각했던 것들을 끄집어냈어야 했다.

토니는 어떤 움직임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치 챘을까,” 토니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작았다.

“아니,” 스티브가 대답했다. “말할 수 없었으니까. 어쩌면 말하는 게 나앗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단독행동이었어.”

“알았더라도 퓨리는 허락하지 않았겠지. 특히 네 일에 관한 거라면.”

“적어도 그런 일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더라면,” 스티브가 말했다. “내가-”

“그만,” 토니가 말했다. “괜찮아.” 그는 팔을 들어 올려 스티브의 목에 감았다.

“어쨌든 퓨리라면 곧 알게 될지도,” 스티브가 대답했다. “클린트는 이미-”

“상관없어,” 토니가 불쑥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당장이라도 지붕 위에 올라가서 다 떠벌릴 수 있어. 너한테 안긴 꼴이라면 아무리 덜 떨어진 놈이라 해도 눈치 채겠지. FOX News에 연락이라도 할까? 뭐라 갖다 붙이든 그게 무슨 상관인데,”

“토니-”

“알게 뭐야,” 토니는 말을 이었다. “다시는 널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고. 내 시체를 갈기갈기 찢어서 너한테 보내는 것은 아닐지, 어딘지도 모를 러시아의 빌어먹을 벙커 안에서 뒤져서는 아무도 모른 채-”

“지나간 일이야,”

“알아, 하지만 그땐 현실이었지.”

스티브는 토니가 느꼈을 그 감정이 무엇이었을지 괴로울 만큼 잘 알고 있었다.

“죽였나?” 토니가 물었다.

“그래,” 스티브는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랑할 만한 일도 내세울 일도 아니었지만, 그 상황이 몇 번이고 반복된다 해도 같을 것임엔 망설임이라곤 없었다.

토니는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곧 입술을 열었다. “고맙군.”

“감사받을만한 일은 아냐.”

“허드슨 강에 버려두지 않은 점에 대해선 고마워해도 되겠지.”

“버려둘 수 있을 리 없잖아,” 스티브는 토니의 머리칼 사이에 입술을 묻은 채 속삭였다.

토니는 살짝 고개를 들었다. “사랑해,” 그 세 글자를 내뱉는 그의 피부엔 온통 상처가 가득했지만, 두 눈동자만큼은 언제나처럼 올곧았다. 중력과 같은 그 힘에 저항할 방도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스티브는 토니에게로 고개를 숙여 그 입술 끝에 키스했다.

단순했던 입맞춤은 곧 점점 더 깊어졌다. 그야 언제나 토니와의 관계에 가벼움이란 없었으니까. 천천히, 급하지 않게. 서투르고 피곤에 지친 입맞춤일지라도 지금 이곳에 있었다. 피부로 전해져오는 온기와 젖은 입술, 그리고 입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호흡, 그건 곧 생(生)의 신호였다.

“사랑해,” 입술을 떼며 스티브가 말했다. “미안. 미안, 토니. 난-”

“그만,” 토니가 말했다. “그냥 여기 있어주는 걸로, ok? 침대고 뭐고 다 필요 없고 그냥 여기서 곯아떨어지면 그걸로 끝. 이 이상 말하면 토할 것 같으니까 그냥 여기 있는 걸로 해, 제발?”

“그래, 네가 원한다면,”

“여기 있어,” 피부에 맞닿은 토니의 입술이 작게 움직였다.

“여기 있을게,” 스티브는 작게 속삭였다.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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